우리 인연은 여기까지~

읽기를 보류한 책/포기한 책

by 깔깔마녀

내게, 책은 만남의 공간이자 만남 그 자체다. 저자를 직접 찾아갈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소통하거나, 책 속 주인공을 상상할 때 또 하나의 인연을 맺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인간관계처럼, 책과의 인연도 언제나 성공적으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내 취향과는 다른 혹은 내 기대와는 상반되는 책이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루한 책, 시간 핑계 대고 차일피일 미룬 책 등이 해당되겠지. 열흘 전쯤, 잔뜩 기대를 품고 만났던 책이 있는 데,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바로, 이 책.


<13.67>

저자인 찬호께이 (홍콩 태생)는 홍콩 중문 대학 컴퓨터과학과를 졸업 후 재미 삼아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 2009년 공모전에서 1등- <푸른 수염의 밀실>-을 하고, 2014년 <13.67>으로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천재추리소설 작가', '추리소설깨나 읽는 사람들은 다 안다.' '6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다시 앞으로 돌아가 사건의 전말이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책을 소개해 준 사람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강 이랬다.



✏나는 1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설정은 흥미롭다. 오랜 파트너 사이인 관전둬와 러샤오밍이 함께 사건을 수사하는 데,

간암 말기로 혼수상태인 관전둬는 병원에 누운 체 특수기계장치로 의사소통을 한다.

13.67의 숫자는 연도를 의미하며, 1967년부터 2013년까지 벌어진 6건의 범죄사건이 각 장의 이야기를 이룬다. 이 정도는 책을 읽지 않아도 표지에 이미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1장을 읽는 데, 눈만 글자를 따라갔는지, 머릿속에 저장된 게 없다.

다시 첫 페이지로! 비긴, 어게인~


추리소설인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

문장이 어렵지는 않은 데, 혀에 달라붙지 않는다.

생소하다. 홍콩의 경찰 직급, 해당 연도의 사건에 대한 해설, 총기 설명 등 분위기가 너무 낯설다. 결국 소화하지 못한 문장들로 인해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결국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사람들의 한 줄 평을 찾아보았다.

읽지 않은 책의 상세한 정보는 상상을 파괴하거나, 읽은 후에도 감상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어 멀리하는 편인데,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홍콩의 역사와 변화상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추리소설" "사회파 추리소설~~"

그럼 다시 격변의 홍콩, 그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봐야겠다.


다시 책으로 돌아갔을까?

결국, 내가 이 책을 이해하려면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말인데...

다 읽지도 못한 주제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몰입했던 추리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책 두께가 문제일까?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도 800페이지 가까운데, 분량은 문제도 아니었다. 초반부터 섬찟하고, 서늘한 공포를 체험했으니, 방대한 양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스노우맨은 스릴러적 요소가 훨씬 강하다.) 애거서 크리스티야말로 서론이 장황한 편인데, <나일강의 죽음>도 처음엔 지루했지만 갈수록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추리소설이야말로 독자를 밀고 당기며 긴장감을 유지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허를 찌르는 결말에 탄복하는, 바로 그 맛에 찾는 게 아닌가?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지만, 오히려 독서를 방해할 것 같아 혼자 생각했다.

왜 이렇게 집중이 안될까.

천재 작가의 작품을 이해 못했으니, 나는 결국 똥 멍청이...?

아니면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책만 읽었나? 그건 훌륭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모독이다.

나처럼 이해 못한 사람은 없을까? '나는 이 책이 이래서 어려웠고, 포기했다.'라고 굳이 이유를 밝힐 필요는 없겠지. 모르니까 답답하고 그래서 말이 더 많아졌다.


문득 풀다 만 시험 문제가 떠오른다. 숙제와 문제는 답을 찾아야 하지만, 책은 그만두면 되는 데 별일도 아닌 것에 자꾸 마음이 간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같은 건 몰라도 당당하면서, 왜 이럴까?

책 내용을 모른 체 살아가도 된다. 책 안 보면 눈도 덜 나빠지고, 허리도 안 아프고 얼마나 좋아?

1장을 넘기면 다음은 또 이어나갈 것 같은 데,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인가?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지 못한 탓? 아니면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

아, 반납일이 다가오는구나.

Out of sight, Out of mind... 안 보면 마음 쓸 일 없지.

그냥 보내자. 누군가에겐 멋진 인연, 걸작 추리소설로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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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사람들은 탄복하는 책, 그럼에도 찬호께이의 책은 스쳐가는 인연으로 남았다. 이름은 기억하는 걸로~. 영화나 오디오북에는 있으려나...


*명품 추리소설/ 내 어린 시절의 한 시기는 추리소설이 점령했다. (10대 초반~20대 초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빅포>- 추리소설이지만 첩보소설을 능가하는 서스펜스와 긴박감,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연민 가득했던 명작. 스포일러가 될까 말할 순 없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던... 공포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꼈고,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작품.


*영화

<나이브스 아웃>

<리플리>를 먼저 본 후, 아빠의 권유로 알게 된 오~~ 래된 영화 <태양은 가득히>도 웰 메이드!


*추리소설이 재밌는 이유는 등장인물, 주인공의 명석한 두뇌, 사건 해결 후의 명쾌한 설명 덕분. 대부분 범인은 붙잡히니 현실과 달리 미제사건은 없다. 잘난 척 해도 밉지 않은 셜록 홈스와 거칠어도 매력 있는 해리 형사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장미의 이름>에 나왔던 수도사 윌리엄, 탐정 미스 마플, 드루리 레인 등은 아직도 생각난다. 보고 싶다. 베니의 셜록 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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