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자신'과도 이별하는 일

회곡 <아버지>

by 깔깔마녀



앙드레의 아파트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다.

앙드레(아버지)와 안느(딸), 그들은 서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앙드레는 시계를 찾고 있다. 그 여자가 자신의 시계를 훔쳐 갔다고 말한다.

딸은 납득이 되지 않아 계속 질문을 하지만, 결국 대화는 허공을 맴돌고 서로의 생각은 교차점을 찾지 못한 체 끝나버린다.


앙드레는 딸의 남편이 누구인지 헷갈린다. 피에르라는 남자는 왜 갑자기 나타났으며, 누구이기에 딸과 함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앙드레는 치매 환자다.

그는 아파트에서 살며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간병인과도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다.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시계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실 시계가 사라진 것조차 사실인지 의문스럽다.

인지 기능이 저하된 아버지의 발언을 신뢰하는 이는 없는 것 같다. 극을 읽는 이들도 헷갈린다. 앙드레와 안느의 대화마저 진실인지(앙드레의) 상상인지 의심하게 된다.


가끔 앙드레는 딸을 손님으로 착각할 때도 있다. 딸은 아버지의 이런 모습에 당혹스럽고 심란하다. 가족의 의무를 다하기엔 많이 지쳐 보인다. 자신의 인생을 찾아 런던으로 가겠다는 딸과 이를 반대하는 앙드레.

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은 늘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끝나 버린다.


결국 홀로 남겨진 앙드레.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앙드레에게 약을 먹으라고 한다.

앙드레는 여전히 시계를 찾고 있다. 그리고 딸의 부재를 인식하게 된다. 흰 가운을 입은 이가 딸이 런던에서 보낸 엽서를 보여주자, 앙드레는,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상황이 달라졌음을 감지한다.




앙드레의 아파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요양병원에서 막을 내린다.

집의 가구 배치가 달라지고, 점점 덩그렇게 빈 공간으로 바뀌더니, 침대만 단출하게 놓여 있는 장면에서, 앙드레의 삶의 터전이 바뀌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오랫동안 머물던 자신의 집을 떠나, 가족과도 단절된 체,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의 보호 하에 지내야 한다.

대부분의 치매환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내 의지와 내 의사결정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과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앙드레는 자신이 치매임을 깨닫게 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저 나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아가 시키는 대로, 그리고 이유도 모른 체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치매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치매는, 한 사람의 인생을 리셋시켜버린다. 컴퓨터처럼 복원하고 복구할 방법이 없다. 한 사람의 역사를 그렇게 허망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저 앙드레의 병이 더 이상은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작가는 치매환자의 삶을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드라마에서 자주 보여주는 광포한 행동이나 피폐한 일상으로 치닫는 묘사는 없다, 읽는 이는 벌써 슬픔의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치매환자의 삶을 동정하거나 폄하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을 위로의 수단으로 삼는 싸구려 감상에 빠지지 않았다. 담담한 분위기 덕분에 감정에 휩쓸림 없이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오히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절절히 스며들듯 여운이 남는다.




* <아버지 Le Père> 플로리앙 젤레르/ 임혜경 옮김/ 지만지 드라마/ 2021.4.

원작인 희곡은 2012년에 지은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 연극에 수여되는 몰리에르 작품상을 수상, 202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더 파더>의 원작.


* 관련 영화: <더 파더> 2021.4 개봉/ 앤서니 홉킨스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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