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될 때

베르너 헤어초크의 <얼음 속을 걷다>

by 깔깔마녀



"죽어가는 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 무작정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간 한 남자의 이야기" 여기까지 읽었는데, 적잖이 충격이었다.

죽어가는 이를 만나러 가는 데, 왜 걸어갔을까, 한시가 급하지 않았을까.

호기심이 극에 달한 체 책의 저자를 확인하는 순간, ‘아, 이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하며, 곧바로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베르너 헤어초크 (Werner Herzog)의 <얼음 속을 걷다>는, 서문에 나와 있듯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적은 글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정제되거나 순화된 느낌보다는 의식이 흘러가는 데로 기록한 흔적이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두서없다는 말과는 다르다.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혼재되어 꿈꾸는 듯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은사이자 영화 평론가 로테 아이스너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곧바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야 할 곳은 파리. 어떤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않고 걷기 시작, 약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두 사람은 만났다. 기적이 일어났을까. 그 후 그녀는 위기를 넘기고 8년을 더 살았다.


뮌헨에서 파리까지는 ‘직선거리’가 대략 690km라고 되어있다. 동네 한 바퀴도 아니고, 별다른 채비도 없이 달랑 나침반 하나에 의지한 체 길을 나섰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 정확한 길을 안내하는 것도 아니니, 나침반은 유일한 내비게이션이다.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길 위에서 인생의 조력자를 만나는 일을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접어두길 바란다. 습하고 추운 유럽의 겨울을 온몸으로 맞서야 했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마주하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초라한 행색을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모멸 가득한 시선을 대할 때는, 선택에 대한 회의가 들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혹독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가 잘 살아난 다큐멘터리가 연상된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천로역정>이 떠오른다. 고난의 연속이다.


결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했지만,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런 무모한 행동을 두고 '무엇에 씌었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도 나올 것 같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에만 빠져있었으니, 생각에 ‘미쳐있었음’에 분명하다. 걸어가면 그녀가 살 수 있다는 믿음에는, 실은 어떤 근거도 없다. 불확실함만이 존재한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견뎌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적도 있다. 여관 앞에서 문전박대 당했던 일,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창문을 깨고 몰래 남의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냈던 일, 땅콩만 먹으며 버텼던 날, 발이 아파도 계속 걸어야 했던 상황을 따라가다 보니, 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 1) 800km 가까운 거리를 걸어 한 달여 만에 도착한 파리의 병실에서 두 사람이 만났고, 그녀가 의자를 건네주었을 때, 비로소 한시름 놓게 되었다.


책은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 위압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지만,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 읽으니, 이 모든 일의 결과는, 기적이란 말보다는 의지의 발현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간절함에 부응하듯, 그녀 또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가능했음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결정한 모든 일에 명확한 근거나 이유를 제시할 순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저자) 자신은 ‘내면의 소리’에 응답한 것은 아닐까. 여전히 그의 여정이 믿기지 않는 이들을 위해, 타인의 문장을 빌려서라도, 이 판타지 같은 이야기의 매력을 알려야겠다.

* 2) “... 나는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책에 끌린 것도 아마 그런 연유라고 본다. 고로, 나와는 다른 시선을 가진 이들에게도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어떤 행보는 그 자체로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 1) 책에는 그가 1974년 11월 23일에 출발, 도착한 날짜는 12월 14일이라고 되어있다.

* 2) 로맹 가리가 쓴 소설 <그로칼랭>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빌려옴.


• 베르너 헤어초크(1942~ ) 뮌헨 태생, 영화감독, 제작자, 작가, 배우로도 활동

「아귀레, 신의 분노」「노스페라투」 등 주로 거대한 자연에 맞서는 광기 어린 인물 혹은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을 주로 표현

• 로테 아이스너 (1896~1983) 유대계 독일인, 영화평론가



<얼음 속을 걷다> 베르너 헤어초크/밤의책/ 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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