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사계를 담아낸 “통영 밥상”이야기
여행의 맛은 다양하지만,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중 음식문화에 대한 체험이야말로, 지역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거라 믿는다. 상상했던 현지 음식을 직접 맛보고 느낄 때, 찾아간 곳에 대해 좀 더 친근한 기분이 들고, 비로소 그 지역을 온전히 만난 것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랬으니, 맛있는 음식이야말로 여행의 큰 재미가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어디서 무얼 먹기가 두렵다.
상상만 해도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식도락 여행”은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외식은커녕 테이크아웃 커피조차 맛본 지 오래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잠깐이나마 대리 만족하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통영의 풍광과 맛깔스러운 음식 사진을 보니, 마음은 이미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어느 유명 맛집에 당도한 기분이다. 신선한 제철 재료로 만든 밥상을 보면 중간중간 허기가 올라와 군침을 삼켜야 했지만, 음식이야말로 인생의 맛을 살려주는 소중한 존재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건강이 더욱 중요시 여겨지는 요즘, 책을 따라 상을 차려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재료 손질법도 간단하게 나와있으니, 어렵지 않다. 당장 여행은 못 가더라도, '통영의 밥상'은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의 특징은 각 시기마다 재료가 갖는 가장 최고의 맛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계절의 맛을 골라주니, 이는 곧 중요한 정보가 된다. 같은 재료라도 언제 먹느냐에 따라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통영 사람들은 동지와 정월대보름 사이 도다리쑥국을 꼭 먹어야 한 해를 건강하게 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도다리도, 쑥도 서로 비슷한 시기에 만나 어우러질 때 맛도 영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봄기운이 느껴지는 3월에는 무엇이 좋은지 살펴봐야겠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이럴 땐 통영 사람들은 무얼 먹으며 건강을 챙기는지 궁금하다. 책에 의하면 멸치와 김이 한창이라고 한다.
마른 멸치만 먹어본 나로선, 멸치조림, 멸치볶음, 멸치 육수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통영에서는 회 무침으로 먹고 젓갈도 담고 멸치조림도 끓여 먹는다고 한다. 건조한 멸치와는 또 다른 신선한 맛을 상상해본다. 손질한 생멸치에 우거지와 양파, 다진 마늘, 된장, 간장, 고추 등을 넣고 끓여내면 멸치조림 국이 탄생한다.
그리고 향기로운 미더덕도 제격이다.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좋아 씹다가-뜨거운 내용물로 인해- 입천장을 데기도 했지만, 그 맛을 알기에 식욕이 돋기 시작한다.
이렇게 열두 달마다 소개되는 재료와 음식을 보면, 통영이야말로 자원이 풍부하고 요리법 또한 발달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통영의 사계와 통영의 음식을 보니 <한국인의 밥상>을 책으로 보는 것 같다. 갖은 재료로 잘 차려낸 음식 사진 덕분에, 또 다른 통영의 밥상이 궁금해져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분명 아는 맛이고, 통영이 아닌 곳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요리들인데, 왜 이토록 특별해 보일까. 그건 아마 '계절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통영을 찾게 될지는 모르더라도, 미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계절에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상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은 ‘*통영 다찌’도 '통영 *너물 비빔밥'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작가처럼 통영 시장 구석구석을 돌며 조촐하게 차려진 한 그릇 음식이면 어떠랴. 지역의 제철 음식만큼 건강에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매일 새벽시장을 돌며 자연의 맛을 연구한다. 통영에서 제철 재료를 연구하고 40년 가까운 시간을 시장과 섬 구석구석을 다니며 음식에 대해 촬영하고 기록하며 연구했다. 통영음식문화연구소 대표로 ‘유네스코 국제심포지엄’ 만찬을 진행했고, ‘한국인의 밥상’ ‘한국기행’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고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철 음식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고, 식재료에 대한 연구와 지역 음식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다분히 느껴다.
책이 의미 있는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남해의 봄날이라는 로컬(지역) 출판사가 기획, 출간했다는 점이다. 현지, 통영의 매력을 담아낸 책은 많지만, 해당 지역의 출판사가 발행한 책인 만큼 지역사랑을 실천하고 상생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봄에는 입맛이 없다는 사람도, 책을 읽으면 가출한 입맛이 돌아오지 않을까?
*통영 다찌: 제철 해산물을 한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통영의 음식 문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전채부터, 초장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회와 해산물, 조림, 구이, 탕, 후식으로 마무리된다. 겨울이야말로 해산물이 풍부해, 다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11월 음식-본문 발췌, 요약)
*통영에서는 나물을 너물이라 부른다.(책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