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맛은 재미~

무라이 겐사이의 <식도락- 봄>을 읽고 (독서일기)

by 깔깔마녀

먹방, 쿡방, 푸드 트립……. 사실 이제는 어떤 방송을 봐도 식욕이 생기거나 관심이 가지 않는다. (보자마자 패-스!) 너무 많은 음식 프로그램과 인터넷에 쏟아지는 사진들로 인해 지칠 때 즈음, 한 권의 재미난 책을 발견했다. 바로 무라이 겐사이의 <식도락_봄>이다.

원래 이 책은 저자가 일본 <호치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인데-지금부터 110여 년 전인 1903년(무라이 겐사이 1864~1927)― 인기에 힘입어 소설로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식도락_봄>을 필두로 여름 •가을• 겨울 편까지 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식도락.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고 즐기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답게, 책 이름만 봤을 때는 유명한 맛집이나 숨겨진 장인의 솜씨를 찾아 떠나는 스토리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기대 없이 시작한 책인데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문장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싶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장이 혀에 감기듯 잘 넘어가고 내용도 소화하기 쉬운 재미난 책이었다.




주인공인 오하라 미쓰루는 소문난 대식가다. 새해 인사차 친구인 나카가와의 집에 방문했지만 실은 혼인 대상을 물색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나카가와의 여동생 오토와의 뛰어난 외모와 출중한 요리 솜씨에 반한 오하라는 그녀와의 혼인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토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대놓고 표현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철저히 거리를 둔다. 오토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준비한 선물은 실패로 돌아가고, 어울리지 않는 선물로 인해 더욱 마음을 닫게 되는 오토와. 결국 오하라의 지인인 고야마가 지원군으로 나선다. 고야마의 청산유수 같은 칭찬은 나카가와를 설득하고, 오토와도 오하라의 진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든든한 지인들(고야마 부부)의 도움으로 결혼 승낙까지 받게 된 오하라는 한껏 들떠있는 데...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사촌 여동생과의 혼담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오하라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 주던 백부의 딸, 바로 오다이의 존재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사촌 여동생과의 결혼은 곧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오하라가 살던 곳은 부모가 전적으로 자식의 혼사를 결정하는 분위기였으니,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 관건이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도쿄로 상경하겠다고 하니, 오하라도 이 기회에 오토와의 진면목을 보여줄 기회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오토와도 오하라 부모님과의 첫 대면을 위해 36품(가짓수가 36개)의 메뉴가 담긴 진수성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드디어 도쿄 역에 부모님과 백부 일행을 마중 나간 오하라는 그들과 반갑게 재회하는 데, 별안간 누군가가 인사를 하는 데... 바로 사촌 여동생이다. 눈앞에 나타난 오다이를 본 오하라는 기겁하고 도망친다.


이것으로 <식도락-봄> 편은 끝이 난다. 마치 일일드라마를 보듯, 가장 중요한 클라이맥스에서 화면이 정지한 것 같다. 얼른 뒷이야기를 읽고 싶은 데, 아직 책이 나오지 않았으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추측하건대, 오하라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상황을 정리한 뒤 결국 오토와를 아내로 맞이할 것 같다. (극의 분위기상, 행복한 결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오토와는 남편을 대식가에서 미식가, 아니 절식을 할 수 있는 경지로 바꿔놓지 않을까? 왠지 다음 편에는 건강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책에서 언급한 ‘식사 처방전’이 보여주듯, 그 당시에 이미 칼로리에 대한 인식을 갖고 과식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었으니, 오토와야말로 오하라의 영양사이자 다이어트 전도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300페이지가 넘는 내용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요리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소설에 나오는 요리의 가짓수는 600여 개에 달한다고 하니(후기 설명), 저자는 요리에 대한 관심을 넘어 음식문화에 대해 통달한 사람이 틀림없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항상 요리에 대한 그의 팁이 제공되어 요리를 실제로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재료의 손질법, 재료가 갖는 특성, 원산지, 영양학적 분석까지, 요리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한 일종의 <식문화 보고서> <식문화 대백과 사전>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없는 소설이었다. 예를 들면 [당근은 단백질 1.25퍼센트, 지방은 0.35퍼센트, 탄수화물 7.5퍼센트, 섬유질 6.8퍼센트, 그 외에는 수분이다.], [보통의 재료로 대략 계산해 보면 된장국 한 그릇에 밥 세 공기는 약 350칼로리 정도다.] 등 이렇게 요리와 재료에 대한 성분분석을 수치로 일일이 보여준 책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설명 방식이었다.


그 외에도 식품 섭취 시 가려야 할 주의사항 [위장병에 자극적인 음식을 금해야 한다. ~오징어, 문어, 새우, 게 등은 금해야 하는 식품이다.] 도 꼼꼼하게 기술하고 있어, 작가의 해박한 지식은 끝이 없어 보였다.

또 다른 특징은 책을 통한 음식문화의 변화상을 추측하게 되었던 점이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상황이었지만, 음식을 통해 시대의 변화상을 상세히 보여준 책도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육식의 수용 같은 일본 식문화의 변화상) 고야마와 나카카와의 대화에서 ‘조리 도구의 선택과 주방 위생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도 이와 같은 흐름에 대해 좀 더 디테일을 살려준 장면이었다. 시를 쓰고 풍류를 즐기는 데 돈을 탕진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 안전과 건강을 고려한 주방 도구를 구매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니 그때 이미 위생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는 ‘건강과 웰빙’을 중요시하는 오늘날의 트렌드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소설임에도 식문화에 대한 상세한 접근은 눈길을 끌었다. 일식, 중식, 양식에 대한 요리를 설명하고 36 품(가짓수가 36개)을 준비하는 이야기에 주목해보았다. 지금이라면 서양과 동양의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요리법도 잘 알려져 있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100년 전에는 모험이나 다를 바 없지 않았을까?( 모르는 음식을 먹는 것도 일종의 두려움) 이러니 오토와의 요리에 대한 ‘썰’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이 전무후무하고 설명이 전부라 오히려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기 좋았던 책이다.


한 번 더 장점을 열거하자면, 맛과 영양을 골고루 갖춘 음식과 같은 소설이라고 할까? 건강식인데도 맛까지 있다면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정보, 교훈, 재미까지 주는 책.

일본은 오래전부터 구루메(식도락가, 미식가) 문학이 발달했다지만, 이 책이야말로 미식가의 취향을 반영한 책의 원조란 생각이 든다.



번지르르한 외관과 달리 알맹이가 없는 소설에 속은 기분이 들 때도 있는 데,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를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상세한 해설 덕분에 어렵지 않았으니 문장을 소화 흡수하기도 쉬웠다. 맛있게 먹고 소화도 잘되는 코스 요리를 먹을 때가 떠오른다. 다음에 나올 음식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듯, 책도 벌써 후속 편이 기대된다. 오래된 소설임에도 지금의 건강, 웰빙 열풍을 반영하고 있는 시대를 앞서갔던 책, 읽는 재미 한가득한 소설 <식도락_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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