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뮤지엄, <딜쿠샤>에서 만난 동서양의 옛 모습

책 이야기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by 깔깔마녀

집에도 이름이 있다. "딜쿠샤"


딜쿠샤(Dil Kusha)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에 있는 오래된 서양식 벽돌집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서양인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터를 닦은 곳 -1923년 정초석이 세워지고 1924년 완공-으로 약 100년 전에 지어진 집이다.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테일러 부부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신혼여행에서 봤던 폐허의 성이 바로 딜쿠샤였고, 나중에 집을 지으면 같은 이름을 붙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딜쿠샤는 1926년 화재로 처음 모습을 거의 잃어버렸고 실내의 물건들도 대부분 사라졌다가 다시 복구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 때문에 앨버트와 메리 부부는 딜쿠샤를 떠나야 했고, 앨버트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는 바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 후 딜쿠샤는 여러 세입자를 거쳤고, 본모습도 많이 훼손되었다. 2016년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이 복원을 결정했고, 2021년 새 단장을 마친 모습이 공개되었다.


마침 지난 3월 어느 방송사의 모 프로그램에서 딜쿠샤를 보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화면에 담긴 실내를 보니, 유럽 여행을 다닐 때 들렀던 '하우스 뮤지엄'이 떠오른다. 직접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지금 만나러 갈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다행히 딜쿠샤 재현에 관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우선 책으로 만나보자.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지은이 최지혜
펴낸 곳 혜화 1117


딜쿠샤, 동서양의 만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딜쿠샤는 공적인 공간이 아니다. 서양인 부부가 살았던 살림집이다. 언급된 주요 살림살이로는 “테이블, 테이블 의자, 테이블 보, 삼층장, 은촛대, 은제 컵, 종, 꽃병, 화로, 가문의 문장, 거울 , 놋그릇, 초상화 등”인데, 테일러 부부의 심미안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동양에 거주하는 서양인의 집과 물건이라니. 이야말로 동서양의 만남이 이뤄진 곳이나 다름없었다. 각각이 갖는 사연은 남달랐고, 물품 하나하나에 담긴 배경을 알게 되니 딜쿠샤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책에 소개된 소품들 중 유독 인상적이었던 것은 “비연호(鼻煙壺)”라 불리는 코담배 케이스와 우산꽂이였다. 비연호는 코담배 가루를 담는 작은 병인데, 유럽에서는 주로 상류층이 사용했던 것으로, 화려한 세공이 아름다워 예술품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푸른빛의 우아한 색감과 정교한 문양이 아름다웠던 긴 원통형의 도자기가 우산꽂이로 쓰였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 외에도 귀족의 집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고가구와 다양한 장식품이 가득했다. 마치 수집가가 되어 골동품 가게나 경매장에 들러 흥정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미술관이나 유명 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다양한 명화와 장식품을 볼 수 있어, 안목이 절로 높아질 것 같다. 사진만 봤는데도 ‘궁전’이란 이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퍼즐 풀기 같았던 딜쿠샤 복원


복원에는 애로사항도 많았다. 달랑 흑백 사진 6장(1,2층 거실을 담은 사진)만으로 기억을 더듬어야 했기에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메리의 유고를 모아 펴낸 책 <호박 목걸이>와 메리의 메모(현재 서울역사박물관 소장)가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재현을 위한 실내 소품을 구하는 과정을 보니,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떠오른다. 그만큼 힘든 일임을 알게 해 준 일화가 있다. 접이식 탁자를 구하기 위해 미국의 소장자와 구매를 확정했지만 갑자기 연락이 끊겼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19가 발생, 연락이 두절되어 결국 물건을 포기해야 했다. 대체품을 찾아냈기에 망정이지, 어려움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은 이야기


이쯤에서 딜쿠샤 복원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근대 서양 건축을 살리는 것 외에도, 한국 독립운동을 도운 이들의 행적을 돌아보게 했다는 점이다. 구한말 부친을 따라 조선에 온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와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또, 오래된 건물을 무조건 철거하지 않고 되살려낸 점은, 옛것의 보존과 공존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파괴된 자연과 도시미관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딜쿠샤를 심폐 소생해낸 과정을 살펴보니, 이 일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노고가 그려진다. 복원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애정을 갖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을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덕분에 딜쿠샤라는 공간에 대한 역사적‧인문학적 배경을 배우게 되었고, 재현된 공간이 주는 ‘새로움’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은, 복원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어 과거로 돌아가 “시간 여행”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테일러 부부의 기억이 담긴 이 공간 또한 내 기억 속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앞으로 50년, 100년이 지나도 딜쿠샤의 모습이 온전히 유지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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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지혜

:미술사학자. 근대 건축 실내 재현 전문가.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 (Sotheby's Institute)에서 장식미술 전공으로 디플로마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국민대학교 미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에는 『앤틱 가구 이야기』, 『영국 장식미술 기행』, 국외소재 문화재재단ㆍ국립 고궁박물관ㆍ덕수궁ㆍ창덕궁 서양식 가구와 실내 장식에 관한 자문위원을 거쳐 지금은 앤티크 연구소 ‘수택’의 대표이자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저자 소개- 책날개 발췌)


*<호박목걸이> 메리 린리 테일러 지음


*(본인이) 지면에 실었던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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