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 말린 사랑 한

음식은 추억이고, 사랑이다.

by 깔깔마녀

분식집 앞, 내 시선은 김밥을 말고 있는 아주머니의 손에 머물렀다. 김과 밥 위에 각종 재료를 올리고 돌돌 말아내는 손길이 빠르고 능숙하다. 은은한 참기름 향이 코끝을 스치자, 어린 시절 새벽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다.


세 형제의 소풍날이면 늘 그랬다. 세 사람의 도시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점심 식사까지 준비해야 했으니, 부엌에는 찬합과 은박 도시락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은박 호일 도시락에 가지런하게 담아낸 김밥이 전부이지만, 선생님용은 둥근 찬합에 담긴 모양새부터가 확연히 달랐다. 1층엔 김밥, 2층엔 과일과 밑반찬, 마지막엔 보자기로 묶고 따끈한 된장국을 담은 보온병까지. 선생님의 미소 가득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풍을 다녀온 후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에 남은 김밥이 식탁 위에 고이 덮여 있었다. 점심으로 이미 먹었음에도, 손은 자연스레 김밥을 향하는 게 신기했다. 특히 우엉의 달콤하고 은은한 향, 오이와 달걀지단의 고소한 냄새가 어우러져 엄마의 손맛이 느껴졌다. 김밥은 그렇게 우리 가족을 연결하는 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입맛은 외식에 길들었다. 김밥은 더 다양해졌고, 요즘은 냉동 김밥까지 등장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먹고 나면 늘 뭔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배가 고파 빨리 편하게 찾은 김밥이지만, 이내 기억 속 엄마 김밥의 담백한 향이 떠올라 비교하게 되었다. 결국, ‘힘들어도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홀로 밥을 차려 먹으며 흉내를 내 보았지만, 결과는 늘 옆구리 터진 김밥이었다. 모양새를 보면 김밥이라고 이름 붙이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밥과 재료는 충분히 갖추었는데도, 돌돌 말리는 속도와 힘, 재료의 간이 섞이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어긋난 듯 아쉬움이 컸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내 김밥은 늘 옆구리가 터질까? 분명 완벽했는데, 도무지 그 모양이 나오질 않네.”
엄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재료를 적당히 넣고, 김밥이 식은 다음 썰어야지… 나는 요즘 김밥 쌀 힘도 없네. 귀찮아.”

요즘 엄마는 두부 한 모와 김치만 밥상에 올려놓고 “이거면 됐다”라며 숟가락을 드신다. 예전처럼 재빠르던 손놀림은 사라지고, 그저 한 끼를 채우는 정도였다. 작은 체구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재료를 준비하며 김밥을 말던 날들이 까마득하게 멀어진 듯했다.

엄마의 김밥을 먹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위해 김밥을 말아야겠다고. 비록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그대로 흉내 내진 못해도, 연습하면 분명 닮아갈 것이다. 딸은 엄마의 손맛을 닮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미 다 만든 달걀지단, 당근 채, 우엉조림 세트가 잘 나와 김밥 싸는 시간도 줄여준다. 하지만 엄마의 김밥과 비교할 수는 없다. 소금에 절여 물기 뺀 오이, 꼭 짠 김치에 살짝 묻은 참기름 향, 노랗게 겹겹이 부쳐진 계란 지단, 적당히 짭조름한 우엉조림까지. 김 위에 차곡차곡 올라갈 때마다 우리 집만의 김밥이 완성되었다.

수많은 음식이 있어도, 결국 떠오르는 건 엄마의 김밥이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김밥을 모두 섭렵한 뒤에도 늘. 최종 승자는 엄마의 손에서 탄생한 김밥이다.

그 신공을 따라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만, 언젠가 내가 만든 김밥이 엄마의 웃음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엄마, 이제는 제가 솜씨를 발휘할 테니, 엄마는 그저 즐기기만 하세요. 오래도록.


P20151231_183922000_DE8E8633-4FCB-4928-9F11-D3FB90F88D0F.JPG **초밥집_가족과 함께, 그리고 혼자 각각 한 번씩 방문했던 곳, 전국 김밥지도를 작성 중이다.
IMG_0554[1].JPG 내가 만든 김밥: 김밥이 좋은 건, 먹고 싶은 재료를 넣으면 된다. 다 품어주는 김이야말로 포용력 갑 중의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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