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같은 사람

행복의 최소 단위를 떠올려봅니다

by 깔깔마녀

어제 숙대입구역 3번 출구를 지나, 남영동 우체국 쪽으로 400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앞에는 여학생 서너 명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차는 길이었지만, 급한 일도 아니어서 앞서가던 그들을 제치거나 일부러 인기척을 내지는 않았다.

그때 뒤쪽에서, 그들 일행 중 한 명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앞에 가던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앞서가던 여학생이 뒤를 돌아보자, 이름을 부른 여학생이 옷깃을 끌어당기듯 하며 길 한쪽으로 붙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덕분에 가던 길이 훨씬 편해졌고,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를 전한 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어제 일이 다시 떠올랐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는데, 그 여운이 아침까지도 남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살면서 우리는 고마운 순간을 종종 경험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엘리베이터에서 의도적으로 문을 빨리 닫기도 하고, 특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남들보다 먼저 타려고 줄을 무시하고 끼어드는 이들도 많다. 너무 흔한 일이라 일일이 지적할 수도 없다. 이런 것도 경쟁인가 싶다가, 결국 그러려니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양보를 해 주면, 정말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 사실 버스나 지하철을 먼저 타면 자리를 확보할 확률은 높고, 바쁘면 길을 먼저 지나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해의 폭이 깊지 못한 나는 다음 상황에선 달라지고 싶다.

출퇴근 시간의 버스나 지하철에서 거리 두기를 기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만 닿아도 크게 반응하는 게 무섭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지만, 자칫하면 악연으로 변하기 일쑤다. 지하철 좌석에 앉다 보면 잠시 닿을 수 있고, 옷자락도 엉덩이에 깔리기도 한다. 실수인데 눈살을 찌푸리고, 대놓고 옷을 홱 잡아당기거나, 마치 무언가 묻기라도 한 듯 탁탁 털어내는 사람들의 과한 몸짓 앞에서 나는 다시 실망한다. 무서운 세상이니 그저 고개를 조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제 그 여학생은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래 양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만 바쁘고 경황이 없어, 잠시 배려와 양보를 잊을 뿐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악함 때문은 절대 아니다.

요즘 세상은 다들 바쁘고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며 살 여유가 준 것 같다. 우영우 변호사가 최수연을 두고 봄날의 햇살 같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내게 그 여학생은,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로 같은 사람으로 남았기에, 글로나마 기억하고 싶었다.


숙대입구 3번 출구에서 1월 31일 토요일 오후 2시 30분쯤(시각은 정확하지 않다), 모직 코트를 입은, 체구가 아담한 까만 단발머리 여학생. 이 역시 기억이 조금 왜곡되었을 수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