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가 전해주는 선물

히가시노 게이고 ㅡ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고 (독서일기)

by 깔깔마녀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편지> 그리고 2020년 <녹나무의 파수꾼>까지.

나는 감히 이 세편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희망 3부작(트릴로지)'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못에 대한 회개와 반성, 용서와 화해 같은 인간 본연의 선한 모습들이 그려져 있고, '인간성의 회복'과 '치유'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대가라는 별명답게 이들 세편 모두 장르적 특성이 내재돼 있고,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는 기분이 들어 읽는 내내 결말이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편지>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는데, 덕분에 <녹나무의 파수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녹나무의 파수꾼 (줄거리 요약)

의도치 않게 유치장 신세가 된 청년 레이토는, 할 수 있는 일도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구상도 마땅히 없다. 잃을 것 없는 인생이라며 자조적 태도를 일신하던 그에게 의뢰인으로부터 '녹나무를 지키는 일을 맡아달라.'는 메시지를 전해받는다. 전언의 당사자인 치후네는 레이토가 제안을 받아들이면 감옥에 가지 않도록 변호사 비용을 일체 부담하겠다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가진 녹나무. 이를 지키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녹나무를 찾아오는 이들을 보니 어쩐지 낌새가 수상쩍다. 영험한 기운을 받고자 기도드리러 오는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음 직했고, 녹나무의 신비를 파헤치려는 또 한 사람, 유미와의 만남은 레이토의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녹나무 파수꾼일이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업무의 막중함을 깨닫게 되는 레이토. 과연 그는 녹나무가 가진 시간의 궤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난 후

<녹나무>는 따뜻하고 습기 많은 토양에서 자라는 상록 활엽수로, 키 20미터에 기둥 둘레 8미터 이상까지 자라는 일본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성분이 방부, 방충 역할을 해주고 목조 불상, 악기, 고급가구의 재료로도 쓰인다.(옮긴이 후기 인용)

책에 나오는 녹나무는 일종의 파워 스폿(power spot)이다. 영험한 땅, 정기를 받는 곳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계룡산이 그런 기운이 강하다고 들었다. (도 닦기 좋은 곳이란 말이 있을 정도니.) 파워 스폿은 일본 여행을 하면서 종종 본 적 있는 데, 실제로 사가현 다케오 시에도 몇 백 년 된 녹나무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를 보면 외관만 봐도 숙연해지는 데, 이는 몇 백 년이라는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강인한 생명력에서 비롯된 것 같다.


녹나무의 영험한 기운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더라도, 찾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버팀목" 역할로 보인다. 녹나무에 소원을 비는 행동은 종교에 대한 믿음과도 비슷한 것 같다. 항상 선한 행동으로 일관하지 못했더라도, 진실한 뉘우침을 한 자들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간절한 믿음은 통한다는 것, 이게 바로 녹나무가 주는 메시지일까?




녹나무를 지키는 일에 대한 레이토의 마음가짐 또한 초반부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경건하고 강건해지는 걸 보니, 실은 그 일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란 생각이 든다. 이는 주변의 여러 인물들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레이토와 또래인 유미의 등장이 그랬다. 녹나무에 염원하는 아버지의 행동이 심상찮아 보여, 미행을 시작하고 레이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마치 탐정소설을 보는 듯했다.

끝으로 레이토의 후견인 격인 치후네의 절제된 행동과 말투, 격조 있는 행동은 살아온 세월이 어떠했는지 짐작케 해주었다.


나는 종교든 사상이든 어떤 하나를 맹신하고 추종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마음속에 녹나무 같은 파워 스폿 한 점찍는 것도,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가는 데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녹나무의 강력한 힘이 내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하면 떠오르는 책* ( 식물도감 아님)


<슈베르트와 나무>-고규홍

<나무 1,2>-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추리소설(스파이, 스릴러물 등도 포함)의 대가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의 작품은 비정한 세계를 하드보일드 한 스타일로 담아내기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물론 일부만 읽은 나의 무지와 부족함에서 비롯된 편견-아는 것만 보인다, 아는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이지만, 몇몇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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