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암호보다 어려운 레시피 해석

by 깔깔마녀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원제: The Pedant in the kitchen

출판사: 다산책방

옮긴이: 공진호


책으로 요리를 배운다는 데.


요리잡지, 요리책 많이 읽었다. 실은 사진을 열심히 봤다. 그리고 정작 궁금한 것은 인터넷 검색을 다시 하거나, 현실의 전문가-엄마- 찬스를 쓰고 있다. 지금 그 요리책은 서재에 잘 모셔두었으니, 뭐가 문제일까? 요리책만 보면 셰프의 맛있는 디저트도 레스토랑의 고급 요리도 부럽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여기 세계적인 대문호도 부엌에 들어가면 당황하여 흥분하고, 투덜대긴 마찬가지였다.



부엌의 현학자, 레시피를 제대로 지적하다.


원제대로라면 <Pedant in the kitchen > 부엌의 *현학자. 잘난척하는 부엌의 꼰대란 말로 이해해도 되려나? 이랬다간 저자의 품격을 떨어뜨리게 될 것 같다. 그가 스스로를 '현학자'라 부르고 있지만, 그간의 저서들을 본다면 '현자'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요리책은 왜 수술 지침서처럼 정교하지 못한가"부터 시작된 그의 이의제기가 워낙 논리 정연해서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고, 현란한 문장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져도 소음으로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빈정대는 말투는 유머와 재치가 넘쳐나 유쾌하였다.


수학공식보다 어려운 레시피 풀기


예전에 오븐 없이 마카롱 만들기란 레시피를 본 적 있다. 레시피에는 분명 프라이팬에서도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고, 재료도 빠짐없이, 순서도 그대로 따라 했는데, 결과는 완벽한 실패였다. 마카롱의 외형이 부풀지 않고 타버린 체 허무하게 끝나버렸고, '머랭 치기가 얼마나 힘든데!', 다시 레시피를 미로 헤매듯 꼼꼼히 되짚어 보았으나 발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레시피 제공자에게 따질 수도 없고, 다시는 마카롱을 '만드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누가 봐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었다. 아니면 두루뭉술하고 애매한 설명들, 가령 '적당히 넣는다.' 같은 초보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문장들 탓일 지도.

다행히 줄리언 반스의 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니 반가울 따름이다.


간단한 단어부터 문제다. 한 ‘덩어리(lump)’는 얼마만큼이지? 한 ‘모금(slug)’ 또는 한 ‘덩이(gout)’는 얼마만큼이지?~~~ ‘컵(cup)’이라는 말은 편리한 대로 대충 쓸 수 있는 용어인가 아니면 정확한 미국식 계량 단위인가? 포도주 잔은 크기가 다양한데 왜 단순히 ‘포도주 한 잔’ 만큼이라고 하지? 잠시 잼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두 손을 합쳐 최대한 덜어낼 수 있을 만큼의 딸기를 넣으시오”라는 리처드 올니의 레시피는 어떤가?~~~ 어린이가 잼을 만들려면 어떡하란 거지? 서커스단의 거인은 어떻게 하지? (본문 부분 발췌)


모든 요리를 직접 할 필요는 없다.


레시피를 두고 고민하느니 차라리 사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모든 요리를 직접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도 편하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순 없지만, 정해진 맛, 즉 대중적으로 표준화된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레시피를 따질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그가 초대한 손님들을 위해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는 손수 준비했지만, 라자냐는 식당에서 산 후 포장을 뜯고 식기만 바꿔 내놓았는데,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다른 것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라자냐만큼은 최고였다.'라며 칭찬일색이었다나?



레시피는 레시피, 정답은 아닌 듯


결국 레시피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각자의 몫일 듯하다. 눈대중, 손맛, 감으로도 멋지게 요리를 해낼 날이 오면 다행이고, 아무래도 어렵다면... 내가 만든 결과물에 '창의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바로, 나만의 레시피.


예쁘고 귀여운 일러스트와, 그림 속 남자의 표정이 저자를 떠올리게 만들어 읽는 재미가 더했다.

이번에도 줄리언 반스의 책에 대한 기대와 '예감은 틀리지 않았구나.'


그나저나 나는 '또 이따위 글이라니!





*여기서 현학자란, 스스로 자기 학문이나 지식을 뽐내는 사람이라기보다 " 실속 없는 이론이나 빈 이론을 즐기는 깐깐한 공론가"를 의미한다. (책의 해설 인용)

*줄리언 반스의 또 다른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주 사적인 미술관> <연애의 기억>

<시대의 소음> 등

*맨 부커상




*책을 읽으며 떠오른 영화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의 <트립 투 스페인> <트립 투 이탈리아> <트립 투 잉글랜드> 시리즈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쉴 새 없이 떠들며 미식가임을 자랑했던 영화.

책과 영화는 크게 관련이 없다. 입담을 자랑하는 두 남자의 수다가 생각났을 뿐.


IMG_9081.JPG 실제로 주방도구를 모두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소금 한 꼬집, 오일 넉넉히, 잣 한 움큼, 버터 한 덩이, 간장 적당량, 물은 손등까지... 그렇다면 손이야말로 최고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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