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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에서 프랑수아 플라스는 26개 새로운 장소를 만들면서 현대화된 세계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온전한 세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진정한 탐험과 모험이 가능한 세계 말이다. 과거로 눈을 돌리면 개발, 세계화, 획일화로 훼손되지 않은 신비롭고 다채로운 세계가 있다. 프랑수아 플라스의 이야기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많은 상상 나라의 이야기와도 닮은 부분이 있는데, 사전 속 이야기 중 다수가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쏟아져나왔다. 지구와 타민족에 대한 지식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때이다. 인류학, 박물학, 민속학이 발달하고 과학 기술의 수준도 높아졌다. 새로운 사회 체제를 주장하고 사람의 마음을 연구했다. 세계는 모든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사람들은 앞다투듯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지구 어딘가 있을 만한 곳에 자신이 사는 세계를 비유적으로 옮겨 놓거나 새로운 사회 체제를 그곳에서 펼쳐놓았다. 각각의 장소는 기이하고 비현실적이지만 교묘하게 현실의 제도나 관습을 닮았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곳도 있다.
모든 것이 급격히 팽창되던 저 시대는 큰 전쟁을 겪으며 막을 내렸다. 그 뒤로는 도시, 상업, 인공이 퍼졌다. 타잔이 날아다닐 숲은 줄고 용과 거인은 숨을 곳이 없다. 하지만 괜찮다. 용은 TV에 나오고 세계를 구하는 모험은 게임에서 할 수 있다. 오히려 게임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이제는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게임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한다. 우리에게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주고 상대를 저주해줄 마법사가 없을 뿐이다. 옛 마법의 세계가 끝났다니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전설과 상상이 조합된 이야기를 펼쳐놓고 싶다면 그 무대로 과거를 택하는 편이 설득력이 커진다. 도시의 생활은 편리하지만 그 편리함 안에 갇힌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유와 활동 반경이 인간과 도시로 축소되었다. 자연 속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이 살았던 사람의 긴장감과 경이로움이 지금 사람들이 자연에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자연의 영역은 줄어들고 도시의 영역은 계속 늘어갔다. 앞으로도 계속, 현대인이 도시에 스스로 갇히는 현상은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세대가 거듭되면 자연에 대한 그리움도 옅어질 것이다. 대신 인공으로 조성된 자연에 익숙해질까. 황폐해질 때는 분노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된다. 그 모든 것은 나름 자연스러워지고 생활 환경으로 자리 잡게 되니 말이다.
현대에도 탐험 겸 모험은 있다. 대중에게는 여행이 적당한 모험으로 자리 잡았다. 인류 전체로 보면 세계에 대한 전반적 경험과 지식은 훨씬 높아졌으나 개인에게는 여행과 다른 문화는 여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옛사람들의 모험만큼 긴박하거나 위태롭지는 않으나 개인이 느끼는 호기심, 경이로움, 벅찬 감정은 비슷할 수도 있다. 다만 미지로 떠나던 탐험이란 말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SNS로 스스로 노출하고 경험을 보여 준다. 공유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중계하고 소비의 흔적을 남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구에서의 탐험은 이미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근대식의 탐험, 낭만주의자의 탐험, 제국주의자의 탐험이 막을 내렸다. 오르배 섬 이야기에 나오는 탐험들이다. 그것은 이미 지난 시대의 탐험이었다. 탐험에서 정복으로 이어지는 방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이 현대에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지구는 샅샅이 밝혀졌다. 해저 말고는 지구에 미지가 있을까? 파악하지 못한 자연환경과 부족이 있을까?
이 생각이 최근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볼리비아의 모소스Moxos 평야 사바나 지역에서 대규모 정착지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이다. 이 지역에 유적지가 개별적으로 발견되기는 했으나 큰 도시라고 증명할 결정적 자료가 부족했다. 그런데 헬리콥터에 원격 관측 장치Lidar를 달아 이곳을 촬영하자 나무에 가려진 도시의 구조가 드러났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사바나 기후에 적응한 형태의 도시였다. 저수지와 운하를 만들어 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옥수수 농사를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물과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커다란 정착지를 운영할 수 있었다. 정착지는 몇 구역으로 나뉘는데, 사람들은 중심지에서 쭉 뻗은 둑길로 걸어 다녔다. 인구 규모와 사회 구조가 어떠했는지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도시의 기획과 설비로 보아서는 이곳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정착지이며 성벽이 조정된 흔적으로 보아 도시는 처음보다 커졌을 것이라 했다.
물론 아직 연구할 부분이 많다. 유적을 찾았다고 해서 이곳의 이야기를 다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이곳은 외부의 침입 흔적 없이 갑자기 거주민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원인은 가뭄이라고 추측하나 아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뉴스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인류가 아직도 모르는 곳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위의 경우처럼 짐작은 하되 실제로는 모르는 곳도 있을 것이나 아예 모르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아예 모르니 모른다고도 말할 수 없는 곳 말이다. 파묻힌 세계가 없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하겠는가. 반대도 있다. 전설이라고 생각했고 인공 구조물이라고 추측했으나 새로운 기술, 새로운 과학 발견에 힘입어 살펴보니 자연 현상의 하나일 수도 있다.
현대에 모험과 탐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는 곳이 모르는 곳이 될 수 있어서이다. 인구 밀집 현상과 위태로운 문명에 따른 추측이다. 큰 도시로 인구가 밀집하다 보니 군소 도시나 도시 외곽에는 버려지고 빈 지역이 생긴다. 사고가 크게 나서 사람들이 떠난 곳도 있다. 오랜 시간 뒤에 이 지역들은 인공의 폐허와 자연이 섞여든 곳으로 모습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자료가 남아 있으나 그것으로는 다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미지가 되는 것이다. 이색 관광 코스가 아닌 탐험 코스로 소개되어야 할 만큼 경계심과 기대가 공존하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우리의 현재 문명이 과거 유적이 되고 추리와 탐색의 대상이 되는 희한하고도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보고 싶거든 『미스테리 모텔』을 권한다. USA가 우사 문명으로 둔갑하는 과정이 피라미드와 트로이 발굴 이야기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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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물론 탐험가가 있다. 그중 한 명인 빅터 베스코보는 지구의 양극점을 다녀왔고 7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올랐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서는 푸에르토 리코 해구 탐사를 시작으로 오대양의 심해 잠수 탐험을 마쳤다. 오대양의 가장 깊은 곳을 모두 다녀온 데 대해 인류 처음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848m)와 가장 낮은 마리아나 해구(10925m)에 닿았다. 탐사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빅터 베스코보는 지도 위의 빈 곳에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 욕망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모소스 평야의 탐사를 이끈 학자 하이코 프뤼머Heiko Prümers도 그곳은 ‘고고학적으로 거의 빈 곳이었다’며, 빅터와 비슷한 말을 했다.
지도의 빈 부분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그곳을 걸어 보고 싶어 한다. 빅터가 말한 ‘마음 깊은 곳의 무엇’은 탐구심, 도전 정신, 호기심이라고 할 그 어떤 마음이고 이 마음이 탐험가들을 재촉한다. 자신의 지도에서 아직 그려지지 않은 부분을 탐사하고 채우려 한다.
인류가 이어지는 한 이런 탐探의 과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탐험이든 탐사든 탐구든 이것은 인간이 어떤 답을 찾는 과정이고 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활동은 작든 크든 본능이고 그만둘 수가 없다. 지리적 탐험에서 범주를 더 확장해서 미지의 영역에서 무엇을 찾아낸다는 의미로 보면 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탐의 과정은 본능이다. 탐험, 탐구할 미지의 영역은 남아 있고 그러므로 탐의 과정은 계속된다. 더불어 지도를 만드는 일도 끝나지 않았다. 오르배 섬 지리학자가 개미와 구름의 지도를 만들었다는 것처럼, 지리 탐험이든 뇌 탐험이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물의 패턴에 대한 탐구이든, 탐의 과정이 멈출 수는 없다. 탐구 본능이 억제되고 탐구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라면, 그곳이야말로 갑갑하고 위태로운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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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탐험이 지도의 빈칸을 확실히 채우고 설명하는 것이라면, 지도 자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시대도 있다. 세상을 파악하려는 갈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한편으로는 미지를 두려워하고 한편으로는 기대하며 그 과정과 감정을 즐겼다.
『지구를 상상하다』는 판형이 큰 그림책이다. 제목을 수식하는 말까지 합쳐서 ‘신화부터 과학까지 지구를 상상하다’라는 전체 제목으로 책의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구에 대한 상상이 과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지식 그림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곳곳의 부족이 상상한 지구의 모습을 그리고 요점을 설명한다. 플랩(날개처럼 들추어 보게 만든 방식)을 이용해서 지구의 속 모양을 보여주는 구성은 이 책의 내용과 무척 잘 어울린다. 플랩을 들추면 눈에 보이는 세계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위아래 플랩으로 지면을 확장한 부분에서는 상상 속 지구의 모습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배치하여 꽤 많은 내용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한 펼침면에 여러 내용을 소개했어도 헷갈림이 없다.
모두 5개의 장으로 내용을 분류했다. 기상천외한 상상의 지구, 다각형 모양의 지구, 원 모양의 지구, 탐험과 과학으로 관찰한 지구를 거쳐 마지막으로, 관측과 탐구로 알려진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펼침면에서는 책 전체에서 다룬 내용을 연표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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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과 2장에는 고대 신화 속 지구의 모습이 나온다. 아프리카의 폰 족이나 고대 인도의 힌두교도는 뱀이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고 했다. 이 뱀들은 ‘아이도 흐웨도’, ‘아난타’라는 이름이 있는 존재였다. 고대인들은 세계의 근간인 뱀이 움직이거나 하품을 하면 지진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물고기-알-물소 또는 뱀-거북이-코끼리가 지구를 받치고 있는 위태로운 모형도 있다. 이누이트는 바다 밑에, 은가주 족은 땅 밑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상상했다.
4세기 인도의 바수반두는 인간 세계의 모습을 실제 인도 대륙의 모습처럼 삼각형으로 상상했다. 땅 밑으로 이어지는 세계는 매우 입체적인데, 지하 깊은 곳에 지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옥은 또 다른 지옥으로 연결되어 무려 128개나 되었다.
아프리카의 피그미 족, 러시아의 타타르 족, 아마존 숲의 와야피 족 등의 신화를 설명하며 ‘20세기’라고 적어 놓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신화가 현대에 성립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인류학자들이 이 신화를 수집한 시기가 19~20세기였기 때문이다.
각 부족의 신화에 대한 인식은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려는 치열한 노력이었다. 현대의 과학과 비교하면 투박한 옛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탐험 정도, 그들의 종교를 집대성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를 이어오며 지식을 보강하고 그들의 이미지 세계를 형성한 결과이다. 다만 신화가 구축되자, 그때부터는 그들의 탐구를 신화라는 가설에 꿰맞추었다. 이런 사고 방식이 사회에 나름의 합리성과 통일성을 부여했으나 탐구와 모험을 방해하고 구속하고 미신과 두려움에 시달리게 했다.
3장은 원 모양의 지구이다. 여기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지도가 등장한다. 중세 유럽과 이슬람의 지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을 그렸는데, 당시의 탐험 결과를 반영한 모습이다. 그래도 여전히 지구 모양을 신화와 종교관에 끼워 맞추었다. 세계의 중심은 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이나 메카이고, 지도 한쪽 끝에 지상낙원의 자리를 두었다. 자연은 인간의 상상 세계에 영향을 주어 우주관과 신화를 만들게 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천체와 신화가 다시 인간이 자연을 보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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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 이르면, 과학과 탐험으로 지구를 알아내려는 시도가 나온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 학자 크라테스는 일종의 지구의를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에라스토테네스는 막대와 그림자의 각도를 이용하여 지구의 크기를 쟀다. 두 학자는 고대 도서관의 관장이었다. 크라테스는 소아시아 지역 페로가몬 도서관의 관장이었고, 에라스토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이었다. 역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2세기에 당시 사람들의 지리 지식을 종합하여 지도를 제작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이론과 지도는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기까지 천 년이 넘도록 큰 영향을 이어갔다.
지구의 모양을 과학적 탐구로 기록하려는 시도는 여기에서 멈췄다. 이 시도가 다시 시작된 것은 한참이나 지난 뒤인 16세기가 되어서였다. 바야흐로 르네상스 시대였고 탐험의 시대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땅에서 바다 생물의 화석을 보고 먼 옛날에는 지구가 물로 덮여 있었다고 생각했다. 콜럼버스 같은 탐험가가 유럽인의 시야를 넓히고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튀코 브라헤, 케플러가 나타나 우주에서 지구의 위치를 재정립했고, 뉴턴을 비롯한 걸출한 과학자가 등장해서 보편적 자연 법칙으로 우주와 자연의 현상을 설명했다.
탐험으로 세계가 넓어지고 천문학과 물리학 수준이 도약했다고 해서 지구에 대한 가설이 다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에드먼드 핼리는 혜성의 주기를 알아낸 명석한 천문학자였으나 지구 구조에 대해서는 지구 속에 핵과 핵을 둘러싼 두 겹의 껍질이 있고 그 사이는 비어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 속이 비어 있다는 가설은 꽤 흥미로웠는지 그 뒤에도 약 200년이나 유행했다.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도 이 가설을 바탕으로 했다.
4장의 내용에 덧붙여 상상이 과학이 되는 과정을 더 설명하자면, 세상을 신화로 설명하려는 방법이 과학으로 바뀐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였다. 이오니아 출신 자연철학자들은 각자의 이론으로 세상의 기원과 구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6세기였다.
소크라테스 전의 철학자들Pre-Socratic philosophy 또는 자연철학자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신화의 상상력을 과학의 설명으로 변환시켰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히포크라테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같은 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을 신의 의도로 설명했으나 이오니아의 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물질의 상호 영향으로 이루어진 결과로 설명하려 했다.
탈레스는 ‘신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는 세상의 근본이 물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은 바빌로니아의 신화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탈레스는 신의 이야기는 빼고 세상을 설명하려 했다. 고대 의학의 전통을 세운 히포크라테스의 말에서도 신에게 의존하는 대신 실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간질을 신이 내린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그 병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신이 내렸다 여긴다면, 그 목록에 어디 끝이 있겠는가?”
약 200년 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시절에도 합리적 가설과 관측을 근거로 세상을 탐구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에라토스테네스가 관측과 수식으로 지구의 둘레를 계산했고, 그 조금 전 시대에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고 추론했다. 그러자 훨씬 큰 물체가 작은 물체 주변을 돈다는 데에 의문이 생겼고 탐구 끝에 지동설까지 알아냈다. 고대 사회에서 지동설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은 컸다. 사람들은 지동설보다 기하학적 완벽을 추구한 피타고라스의 가설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지동설은 16세기가 되어서야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리스타르코스가 BC 200년대에 밝혀내고 나서 약 1800년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서도 과학의 발견과 사람들의 선입견이 충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7세기 초에 셰익스피어가 쓴 『리어왕』을 보면 미신의 허점을 비웃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미신에 맡기는 협잡꾼이 등장한다.
“참 우습구나. 운수가 나빠지면 자기 자신의 어리석은 소행은 생각지 않고, 재앙의 원인을 태양이나 달이나 별의 탓으로 돌리거든. 이건 마치 인간은 필연적으로 악한이 되고, 천체의 압박으로 바보가 되고, 별의 세력으로 악당이나 도둑이나 모반자가 되고, 별의 영향으로 주정꾼이자 거짓말쟁이나 간부가 되는 셈이나 같다. 이건 호색한에게는 그럴 듯한 책임 회피책이지. 음탕한 기질은 병 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에드먼드는 야비한 속임수로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보려는 인물이다. 일식과 월식을 불길한 징조라 말하는 아버지를 비웃지만 그러면서 그 시간에, 그 별자리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은 그런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아득히 멀리 있는 천체에 자신의 약점을 내맡겼다. 에드먼드는 일식이나 별자리 같은 천체현상이 한 인간을, 세상을 좌지우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합리적 사고를 할 줄 아나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기 위해 미신과 불합리한 사고로 돌아선 것이다. 세상에는 미욱한 인식이 만연해있고, 모략꾼은 그에 부합하여 불합리한 미신을 요리조리 이용했다.
5장에 이르러 과학으로 정착된 지구를 보여준다.
현재 지구의 모습은 탐사와 관측으로 외부도, 내부도 밝혀졌다. 이로써 지구의 모양은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그곳에서 모시는 신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사실로 확정되었다.
이 그림책에서 상상이 과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신화와 고대인의 상상을 미개한 문화 단계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 또한 인간의 상상과 문화의 풍부한 결과물이기에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더 많은 문화권과 부족의 지구관과 우주관이 궁금해진다. 또 그들의 상상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알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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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 탐험의 의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탐험은 땅을 설명하고 우리의 인식을 넓히는 행위이다. 과거의 탐험은 호기심을 채우려는 동시에 영토와 자원을 지배하려는 목표로 이루어졌다. 수많은 원주민이 그 과정에서 죽었고 문화는 사라졌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것이 그 시대에 필요한 정복의 방식이었을까, 싶지만 모든 일은 벌어졌다. 많은 사람이 죽고, 그곳이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문화는 사라졌다. 스스로 알을 깨지 못한 이들에게는 두고두고 우울함, 무기력,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 지난 시대에 겪은 폭력의 응어리는 유전자에 각인이라도 되는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탐험의 거대한 부작용을 보며 현대 인류는 세상의 주인공이 하나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성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계기이자 학습 재료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속한 문화의 아집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편견 없이 타인을 순순히 바라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말로 후천적 학습이 필요하다.
작가인 기욤 뒤프라는 글과 그림을 모두 작업하는 그림책 작가이자 스스로 ‘우주지리학cosmologik’이라는 이름 붙인 프로젝트를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연구자이다. 우주지리학 프로젝트는 ‘다양한 문화 안에서 세계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연구’한다.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한 『지구를 상상하다』와 같은 컨셉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작가는 수피파의 신비주의자, 도곤의 샤먼, 고대 이오니아의 자연 철학자, 이집트와 마야의 성직자 등 세계 곳곳의 문화권에서 인간이 우주와 지구를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가는지 알려주는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우주, 하늘, 지구, 낙원에 대한 신화와 그림을 활용하여 여러 책을 만들었다. 우주론을 다룬 첫 책이 나온 것이 2006년이고 『지구를 상상하다』처럼 우주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다룬 Univers, Des Mondes grecs aux multivers(우주, 그리스 세계에서 다중우주까지)가 2018년에 나왔으니 짧지 않은 기간을 독립연구자로서 이 주제를 탐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책만이 아니다. 그가 옛사람의 지도를 재현하거나 재구성한 이미지는 영상, 전시, 게임으로도 소개되었다. 방대한 자료를 데이터화하여 다른 프로젝트에도 제공했다.
기욤 뒤프라는 응용예술을 전공하고 아프리카 기니비사우의 문화원에서 군 복무를 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의식에도 참여하며 그는 ‘다름’과 다름이 주는 ‘풍성함’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이때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지식 체계 사이에서 상대적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한 듯하다.
“내가 관심을 두는 점은 우리가 아는 것을 해체하려면 반대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내가 평평한 지구관을 가진 세상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사물을 어떻게 볼지 상상해보세요.”
기욤은 기니비사우 생활 이후로 몇 년 동안 인도, 말리, 일본 등을 여행하면서 그곳을 관찰하고 스케치했다. 파리에 정착하고 출판사의 예술 부장으로 일한 뒤로는 관련 글을 읽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았다.
우주지리학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는 『지구를 상상하다』를 진행하며 인용한 자료의 출처를 게시했다. 앞선 연구자들이 없었다면 이 책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50개 정도 되는 자료 목록에는 다양한 책 자료와 더불어 프랑스국립도서관, 바티칸도서관, 독일의 게르마니아국립박물관, 베네치아의 마르차나도서관 등 유럽 여러 도서관의 지도 기록물이 포함되어 있다. 13세기의 이슬람 지도는 프랑스국립박물관에 있는 복제본을 참고했고, 서양배 모양의 지도는 콜럼버스의 탐험 일지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를 곳곳의 도서관에서 찾아내어 참고했다. 기욤의 작업이 옛 자료에서 설명을 모으고 그림을 재구성하는 방식이기에 아무래도 고대 그리스와 지중해 문화권, 유럽의 나라들, 또는 중국이나 인도처럼 큰 문명권의 신화와 이야기를 모으기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그래도 작가는 적지 않은 비중으로 인류학자나 민속학자가 채록한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부족의 신화를 설명하고 그들의 이미지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내며 문화 간의 상대성을 유지하려 했다.
기욤 뒤프라는 2013년에 『동물은 어떻게 세상을 볼까요?』라는 큰 판형의 그림책을 냈는데, 이 책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시각 차이를 다룬다. 생물종 간의 상대적 차이를 깨닫게 되는 책이다. 앞서 이야기한 책과 소재는 달라도 자신을 세상의 다른 존재, 다른 문화 사이에 두고 상대성을 인식하게 하는 점은 일관된다. 이런 시도는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절대적 우월함으로 여기는 데서 벗어나 상대적 존재로서 재정립하는 기회를 준다. 물론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로 나타났다면 오히려 곧 잊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모이고 모여 생각이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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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보여주는 책과 이야기와 영상물이 쏟아져나오는 현대 사회에서도, ‘내가 평평한 지구관을 가진 세상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사물을 어떻게 볼지 상상해보세요.’라며 세상을 넓게 보고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려는 기욤 뒤프라의 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상대의 환경과 관점에 서서 경험하고 바라보는 것은 어렵다. 같은 곳에 살아도 자신의 생활 반경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생활 방식은 합리적이고 타인의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정의하고 잣대를 만드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상대에 대한 예의와 그들의 지식 체계에 담긴 가치, 합리적으로 탐구하고 판단하는 법 등은 교육으로 익힐 부분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양성이란 말을 내세워 타인과 다른 문화에 관대해지고, 다른 생물과 공존하고 살자며 애를 쓴다. 다양성, 관용, 포용은 전세계적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인종 차별 금지, 소수자와 이방인 존중, 생물 다양성 존중, 문화유산 보호 등 여러 방향으로 20세기 중반부터 활발해졌지만, 이 개념이 개개인의 행동과 사고에 자연스레 장착되고 균형 잡힌 행동으로 자리 잡힐 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를 돕는 수단 중 하나가 책이다. 책은 내 현실 밖에, 혹은 내 세상 안에 가슴 뛸 만한 뭔가가 있다고 자극하고 끌어당기며 끊임없이 탐험을 고취하고 탐험을 이어가게 한다. 책들이 모인 도서관은 정적이지만 격렬하고 가지런하지만 제멋대로이다. 책과 도서관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이들도 있으나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랑하고 찬미한 이들도 많다. 다음은 작가들이 갖고 놀 자료를 제공했던 곳이자 세상을 바꾸어가거나 바꾸려 했던 사람들의 생각과 시도와 이야기가 집단 서식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