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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을 각별하게 여기게 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훨씬 뒤였다. 책 편집 때문에 우주 관련 자료를 찾으면서 수도 없이 많은 천체 사진을 보면서부터이다. 예술 작품에 반하듯 멋진 천체 사진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문을 열고 보니 밤하늘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아울러 과학에도 관심이 열리기 시작했다. 과학은 인문학적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특히 천문학은 워낙 오래된 학문이고 밤하늘의 일은 인간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에 천문학에 별 관심 없이 살았다고 해도 내가 들어온 많은 이야기와 지식이 밤하늘과 연결되어있었다. 내가 알던 이야기와 새로 알게 된 지식이 연결되고 빈틈이 채워졌다. 천문학과 물리학이 발달하며 별빛과 무지개의 비밀을 파헤치고 시적 정취를 깨부수었다고 한탄하는 예술가도 있었으나 나는 반대였다. 과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탄탄히 설명해주었다. 그 견고함과 보편성에 감동이 더 차올랐다. 고대, 아니 그 전부터 이어지는 밤하늘 탐구의 행렬에 끼게 된 것도 낭만적이다.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우주의 탄생부터 시작하는 빅히스토리로 향하다가 우주 천체, 천문학자에 대한 개별 관심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천문학에서 더 불거진 관심 대상이었다.
내가 천문학에 관심을 두는 이유를 실용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학자가 되거나, 과학 분야 행정가, 과학책 편집자 같은 실제 목표를 두지 않는 이상 천문학에 관심을 두고 공부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밤하늘에 대한 관심은 실용적 관점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폭넓고 깊고 어느 정도는 본능적인 끌림이 있는 것 같다. 우주, 더 친근하게는 밤하늘에 대한 궁금증은 시대를 불문하고 세상에 대한 근본적 관심과 호기심 중 하나이다. 나는 밤하늘에 대한 관심이 인간 유전자에 어느 정도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밤하늘의 질서를 읽으려 했고 그 시대의 문화와 과학 수준으로 설명하려 했다. 밤하늘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의 길고 집요한 노력, 그것이 대물림되며 계속 이어지는 탐구의 양상에 주의를 기울여 읽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고 그런데도 오류를 발견하면 오랜 연구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탄복한다. 내가 천문학에서 무엇보다 좋아하는 부분은 인간의 이런 서사이다.
사실 이것도 많은 답을 알고 있는 시대에 살기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내가 천동설의 시대에 살았다면? 신화의 시대에 있었다면, 내가 앞선 지동설 학자의 이론을 이해하고 옹호할 수 있었을까? 그 시대에 있다면 나 역시 그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볼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고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우주망원경과 우주탐사선, 행성 탐사 로봇이 찍어 보낸 자료를 보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우주는 계속 넓어졌다. 태양 이외에도 많은 별이 있음을 알았고 지구가 유일한 행성이 아님도 알았다. 아직 다른 행성에서 문명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모를 일이다. 문명의 모습도, 존재의 모습도 우리가 상상하는 기준과는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상상하고 상상하려 해도 우리의 기존 이성과 논리로 상상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도 있다.
지구가 우주의 한 부분이라는 공간 감각 또는 물리 감각을 여전히 체감하지 못하지만, 지구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 이곳은 드넓은 우주의 어느 한 곳이라는 사실을 애써 인식하거나 상상해보려 한다. 상상의 세계는 더 커져도 되는데 나는 머릿속에서도 나의 지난 경험과 일상을 벗어날 줄을 모른다. 내 경험에만 갇힌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내 세상 말고도 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서, 우주를 인식하며 사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우주의 일이 내게 실질적 효용이 되는 건 이런 부분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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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밤하늘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어서 우주 탐사선을 만들고 우주로 내보냈다. 1977년 8월, 보이저 2호가 우주 항해에 나섰다.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 1호는 그해 9월에 항해를 시작했다. 처음에 두 우주선은 5년간 항해하며 목성과 토성, 이 두 행성의 위성을 촬영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성과 토성 미션을 성공하자 보이저 호의 항해는 연장되었다. 그리하여 목성과 토성뿐 아니라 천왕성, 해왕성을 지났고 위성 48개와 행성의 고리를 탐험했다. 두 보이저 호는 행성계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더 많은 미션을 재설정하며 성간 공간으로 나아갔다. 우주선의 원래 예상 수명인 5년은 진작에 넘어섰다. 지금도 연료를 아껴가며 지구와 교신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 교신이 예상된 것은 2026년이다. 교신이 끊기더라도 보이저 호들은 각 다른 방향으로 우주를 떠돌게 된다.
그림책 『밤하늘을 수놓은 약속』은 보이저 2호의 독백을 듣는 설정으로 이 우주탐사선의 탐사길과 소회를 들려준다. 보이저 1호는 목성과 토성 탐사를 마치고 성간 우주로 향했다. 보이저 2호는 처음 계획된 목성, 토성에 이어 해왕성, 천왕성 탐사까지 마치고 성간 우주로 향했다. 더 멀리 간 것은 보이저 1호이나 보이저 2호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2호가 목성형 행성 네 개를 모두 지나며 더 많은 장면을 보아서일 것이다. 멀리멀리 나아가는 보이저 2호는 어느 순간에는 점이 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 존재를 알 뿐이고 우주 어딘가에 보이저 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보이저 호는 아무 감정 없을지라도 그 외로운 항해를 따라가며 나는 왠지 서글퍼진다.
이 책은 글도, 그림도 단순하다. 보이저 호의 탄생과 지구인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은 지면에 새까만 밤하늘, 그러니까 우주의 모습을 그렸다.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아름답게 그 모습을 보이나 그보다 더 많은 지면이 허허한 공간에 홀로 위치한 우주탐사선에 초점을 맞춘다. 작고 외로워 보이는 보이저 2호만큼이나 이 그림책의 배경도 인상 깊었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떠 있다. 실제로도 별은 아주 많다. 별의 실제 크기는 아주 크다. 태양은 보통 크기의 별일 뿐이다. 그러나 그 큰 별도 우주에서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우주 공간에서 별들은 아주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별이 아무리 커도 우주를 채우지 못하고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것처럼 가깝지도 않다.
그림책의 배경은 이 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우주는 새까맣고 별들이 점점이 이어진다. 그런데 까만 바탕에 하얀 점을 찍는다고 우주의 모습이 표현되지는 않는다. 우주는 별들이 모인 은하, 은하가 모인 은하군과 은하단, 은하단이 모인 초은하단으로 이루어진다. 이보다 더 큰 구조는 거대구조라고 부른다. 별들이 빽빽하게 모여 가느다란 그물 모양을 이루고, 그 사이에 빈 공간이 있는 모습이다. 우주의 거대구조는 불규칙하면서도 그물망 같은 모양을 만들어낸다. 『밤하늘을 수놓은 약속』의 배경이 되는 우주 공간은 이 구조를 그려내고 있다. 별들의 그물 사이의 빈 공간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빈 것은 아니다. 별이 적거나 멀리 있을 뿐이다. 더 먼 곳의 별빛이 희미하게, 그보다 더 먼 곳은 더 희미하게 보인다. 별의 크기와 나이에 따라, 별과의 거리에 따라, 별의 밝기는 밝거나 희미하게 그곳에 있다. 그림책에서는 이런 우주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온다. 의미 없는 허공이 아니라 거대한 실재이다.
본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 바랐다면 더 많은 설명을 담았을 테지만 이 그림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작가인 제레미 드칼프는 메이킹 노트에서 칼 세이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칼에게 배운 것은 과학 지식뿐 아니라 우주와 우주 탐사를 시적으로 읽어내는 감각이었던 듯하다. 읽는 사람은 이 단순함과 여백을 그대로 두고 즐길 수도 있고 반대로 각 행성과 우주 공간에 대한 주석을 가득 채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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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보이저 2호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 목성, 목성의 위성, 토성, 해왕성을 거치고 태양권계면을 지나 태양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지금까지는 지구에 데이터를 보내고 있지만 이 신호는 머지않아 끊길 것이다. 우주 탐사 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이 탐사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탐사선에 담긴 금색 레코드를 우주의 다른 존재가 발견하고 판독도 해서 지구를 상상할 수도 있다.
지구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태양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태양도 하나의 별이라는 독백은 참으로 상대적인 깨달음으로 들린다. 1조 개의 은하 중 하나인 소용돌이은하에서 천억 개의 별 중 하나인 태양은 아주 크지도 않고, 아주 밝은 별도 아니다. 이것도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하는 말이다. 더 많은 은하, 더 많은 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인에게 생명과 질서의 원천이자 강렬한 빛을 선사하는 별은 태양 하나이다. 그러니 지구인에게는 태양이 강력한 신성의 상징이었다. 지구도 그렇다. 지구인의 절대적 고향이자 절대적으로 유능한 터전이기에, 그리고 지구 외의 세계는 모르기에, 지구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천문학이 발달하고 과학이 지구의 긴 역사와 진화를 밝혀낼수록, 인류의 지위는 강등되었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말이다. 그리고 정말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우주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났다. 밤하늘의 신비를 잘 모를 때 인류는 우주의 중심에 있었건만, 하늘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자 지구가 속한 우주는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고, 지구는 그 은하에서도 변방의 나선팔 부분에 있었다. 게다가 지구에서 숭배하던 태양이란 별은 우주 전체에서 보면 크기도, 나이도, 그저 그런 특별할 게 없는 천체였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은하계 변방의 종족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아쉬웠다. 태양과 지구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니, 약간 충격도 받았다. 지금 내 생활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사실이 달라질 수는 없다. 천체는 인간 감정의 아쉬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구 안에서도 이런 상황은 생긴다.
인간은 뇌의 지능을 내세우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생명체는 뇌가 없는 박테리아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다. 박테리아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도 적응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완보동물도 그렇다. 진공에서도, 강렬한 방사능 환경에서도, 우주에서도, 물이 없는 곳에서도 살 수 있으며 지구의 5번의 집단 멸종에서 이기고 5억 년 동안 살아왔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지만 개체수와 적응력에서는 완보동물이 더 뛰어나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어마어마한 영향력만을 인지하며 살고 있으나, 외계인이 보면 지구는 그 수와 적응력에서 완보동물의 행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를 다 헤아리며 살 수는 없다. 인간 세상에서는 인간이 중심인 것도 맞다. 다만, 세상은 수없이 많은 생명체로 이루어졌고 우리는 그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장점은 있으나 우리가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 천문학이 그랬듯, 시야가 넓어지고 그에 따른 지식이 알려지면 하나의 제왕적 우월함 대신 상대적 가치와 존중을 배울 때이다. 새로운 것 하나 알았다고 해서 그게 바로 내 인식에 자리 잡지는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배우고 애써서 추론하고 경험하는 과정이 뒷받침되면 조금 더 빨리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으나 기존의 내 지식, 가치관과 충돌할 때도 있다. 새로움의 수용에서 판단력, 융합력은 필요하다. 이 능력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대‧장소‧사람의 자존감과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존감이 적당히 채워지면 우월의식도, 열등감도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보고 판단하여 수용하거나, 기존의 것과 통합한다. 일부만 받아들이기도 한다. 거부하든 통합하든 맹목적이지 않다. 내가 알던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고 세상을 조금 더 키운다. 이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나아간다.
중심이 되어야 하고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과 조급함을 포기하면 한순간 차분해진다. 그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포기가 쉽지 않고 때로 혼란스럽지만 그마저 진정되면, 그제야 새로운 세계 앞에 서게 된다. 우주에 대해, 지구에 대해, 사람에 대해, 많은 생물에 대해 무한한 탐구와 탐험의 원천이 그곳에 있다. 이 과정을 거친 과학자들 덕에 우리는 지금 지구와 우주에 대해 이만큼 알게 되었고 더 큰 세계를 상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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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와 이 책은 각각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와 보이저 2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설정이다. 보이저 2호가 매우 간결하게 전한다면, 오퍼튜니티 이야기는 훨씬 풍부한 감정으로 힘이 다할 때까지 해내는 모습을 대입시켜 감정을 고양한다.
화성도, 태양계 저 먼 곳도, 아직은 인간은 갈 수 없는 곳이니 기계에 인간의 목소리를 맡겼다. 동물도, 기계도, 그들의 질서를 갖고 그들의 방식대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많은 경우 인간의 기준으로 그들의 모습, 표정, 목소리를 바라보고 해석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간의 시선으로 타존재의 행동에 애정을 갖기도 하고 애칭을 만들고 호감이나 여러 감정을 보인다.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버릇은 인간에게 본능처럼 작용한다. 로봇이나 우주선에 꼭 인간의 마음을 대입하고 우주선의 활동을 인간처럼 해석해야 할까 싶지만, 나는 이런 의인화가 인간의 본능이자 한계 아닐까 싶다. 인류애나 상대 존중과는 좀 다르다. 다른 존재를 인간의 이해 체계 안으로 데리고 온다. 자신을 벗어나지는 못하니 자신의 감정과 몸짓을 기준으로 타존재를 해석하려고 한다. 사람의 이해 능력은 한계가 있고 다른 종보다 우위에 서려 하거나 다른 종을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줄기차게 자신을 기준으로 다른 존재에게 말을 건다. 지나친 자기중심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계속 말을 거는 본능이 애처롭다. 사람은 다른 종을 이해하기는커녕 자기 옆의 인간도 이해하지 못해서 괴로워한다. 이 모양인데 우리의 이해 능력으로 어떻게 타 종을 아우를까. 그런데도 끊이지 않고 의인화를 하고 타존재에게 나를 대입하며 내 방식에 따른 감정을 준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하지만 나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챗봇은 이것을 인간다움이라고 했다.
『밤하늘을 수놓은 약속』은 보이저 호에 인간의 목소리를 맡기되, 최대한 간결하게 말한다. 만약 우주 탐사선의 선장이나 함장이 사람이라면 훨씬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과학 탐사가 보여준 행성의 풍경, 땅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또 다른 문명의 모습을 상상한다. 지구에서 탐험이 한창이었던 18세기~19세기에 기괴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듯이, 지금 시대의 기술과 탐험을 기준으로 신선하고 오묘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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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보이저 2호의 유영을 따라 점점 더 깊은 우주로 향한다. 우주 관련 그림책은 지구에서 나아가는 방식으로 시야를 넓히는 방법을 잘 사용한다. 지구에서 출발하여 지구를 둘러싼 태양계를 둘러보고 별과 여러 천체가 모인 은하, 은하가 모인 은하군 식으로 나아가며 점점 더 큰 우주를 보여주는 구성이다.
우주의 시간을 탐색할 때는 반대의 구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먼 우주에서 시작한다. 아주 오래전인 빅뱅에서 시작한 우주의 일이 은하에서 별로, 별에서 태양계로 좁아지며 현재의 나에 이른다. 우주의 구름 먼지에서 태양이 생겼고 태양에 합류되지 않은 물질이 모여 뭉치면서 점점 커져 지구가 되었다. 지구에서는 긴 지질시대와 생명의 진화를 거쳐 지금의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 이 방식은 우주와 지구와 나를 함께 아우르며 큰 시각으로 보기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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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우주 어딘가로 떠나면 복귀하지 않을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곳으로 이주하여 터전을 만들고 그곳에 머물 때가 올 수도 있다. 지금은 돌아와야 할 곳인 집, 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먼 미래에는 어떤 모습일지 알 수가 없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 지구의 기준으로 여행, 모험, 탐험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완료된다. 집이라는 강력한 안식처로 돌아오는 것까지 하여 탐험은 완성된다. 떠나고 탐구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집에 돌아와 안주하는 것은 더 강력한 본능이자 탐험의 동기이고 탐험을 비로소 완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 궁극의 목적지는 정서적 기능도 중요하나 물리적 공간, 틀, 형태도 중요하다. 후자도 전자 못지않게 중요하며 내가 지금 바라보는 지점도 공간으로서의 집이다. 집은 안식처이고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터전이다. 피난처이고 나만의 취향으로 꾸민 하나의 소우주가 되기도 한다. 집이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그림책이 있다.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주 배경으로 등장하는 여러 그림책도 생각난다. 살림살이도 다 다르고 가족 형태도 다르고 집 형태도 다르다.
그 집을 말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