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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냥이 Oct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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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 기간보다 부모님 집에 같이 산 기간이 더 길다. 지금도 부모님 집에서 이 글을 쓴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매일 방이 바뀌는 날들도 있었고 몇 개월이고 한 집에 머물며 살림하며 살 때도 있었다. 직장이 멀어졌을 때는 직장 옆에 작은집을 마련하고 생활했다. 출퇴근 시간 아껴 글 쓴다고 했지만 1순위는 직장생활, 2순위는 살림, 글쓰기는 늘 다른 일 마치고 난 뒤였다. 통금시간 때문에 식구들과 오래 다투었지만 정작 나가 살 때 나는 저녁 약속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카페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나면 혼자 쉬고 싶었다. 

한때 머물렀던 내 작은집은 정말 작고 조용했다. 작은집 생활을 시작할 때는 야무지게 살림할 생각이었다. 깍두기를 만들어 엄마한테 갖다 주겠다며 굵은 소금에 스테인리스 볼에 새우젓도 작은 병으로 챙겼지만 무 한 통도 산 적이 없다. 새우젓은 냉동실에서 나온 적이 없다. 제대로 밥을 해 먹기도 쉽지 않았다. 퇴근하고 간단히 청소하고 밥 한 끼 해 먹는데 시간은 어찌 그리 후딱 지나버리는지. 가장 작은 망에 든 양파도 다 쓰지 못했다. 물러버린 양파를 버린 뒤에는 본가 갈 때마다 감자 한 알, 양파 한 알씩 가져왔다. 

그 사이에 직장을 옮겼다. 작은집은 본가에서도, 새로운 직장에서도 먼 곳이 되었다. 오가는 거리가 생기고 친숙한 사람들과도 멀어지자 내가 모르던 외로움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아주 잘 즐긴다고 생각했고 글 쓰는 시간으로 채울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나는 내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작은집 이후 나에 대한 진단도, 나의 목표도 바뀌었다. 나의 사계절치 짐을 다 싸들고 나오는 완전독립을 꿈꾸지 않는다. 나한테는 작업실이나 반독립 형태가 적당하다. 세컨드하우스, 아니 세컨드룸을 꾸리고 싶다는 게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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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았던 그림책에서 나의 작은집과 가장 닮은 곳은 『허먼과 로지』에 나오는 허먼과 로지의 작은 아파트이다. 허먼과 로지의 집처럼 창밖으로 도시의 빌딩 풍경이 보이지는 않았고 주방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도시의 한켠에 있는 작은 공간이라는 점, 혼자라는 자유와 고독을 다 누리는 곳이라는 점이 그렇다. 

허먼의 집과 로지의 집은 비슷한 모습이다. TV, 낮은 테이블, 1인용 쇼파, 1인용 침대, 복잡한 도시를 향한 창. 이 배경 안에 성향이 닮은 다정하고 여린 두 사람이 살고 있다. 작은 아파트는 안락한 쉼터이지만 바깥 세상에서 그들을 단절시키는 역할도 한다. 둘이 절망에 빠졌을 때 그들의 작은 아파트는 그들을 감싸주는 동시에 그 안에 그들은 혼자 고립되어 버린다. 허먼과 로지는 도시의 소음, 활기, 다양함을 즐긴다. 이런 도시가 좋을 때도 있지만 늘 그렇지는 못하다. 허먼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로지는 자신의 무대였던 곳이 문을 닫자, 그들에게 도시는 어둡고 쓸쓸한 곳이 되어 버리고 만다. 둘은 각자의 작은집에 머물며 쓸쓸히 상실감을 견디거나 더 파고들 뿐이다. 아마도 지긋지긋하게 각자의 상실감에 파묻혔던 둘이 드디어 밖으로 나와 도시를 산책하고 서로의 음률을 마주쳤을 때, 도시는 다시 즐거운 이벤트와 리듬이 넘치는 곳이 되었다. 

개인 맞춤의 집도 있다. 『꼬마 발명가 앤드루의 모험』에는 특색이 뚜렷한 집들로 작은 마을이 생겼다. 숲속 공터 작은 마을에 있는 아홉 아이의 집은 제각각이다.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앤드류가 제일 먼저 이곳을 찾아와 집을 지었다. 그뒤, 아이들이 한 명씩 앤드류를 찾아와서 집을 지어주기를 요청한다. 앤드류는 새를 좋아하는 앨리스에게는 나무 위의 집, 물과 놀기를 좋아하는 조지에게는 물 위의 집을 만들어주고,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마곳의 집은 남들한테 방해받지 말라고 집에 들어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아이들이 자기 집 또는 자기 공간을 갖고 싶은 이유에는 공감해보았을 것 같다. 소리 걱정 없이 마음껏 악기를 연주하고 싶어서, 공주처럼 온갖 옷을 입어보며 놀고 싶어서, 좋아하는 동물이랑 같이 지내고 싶어서, 엉뚱한 요리를 하고 싶어서, 물장구치고 흙장난하고 싶어서… 동물이랑 같이 지내고 싶은 바람 말고는 나도 이 이유에 공감해보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나의 장소가 필요했고 필요하다. 작업실을 꾸리고 싶은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글이든, 음식이든, 공간 운영이든, 늘 나만의 실험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집과 공간은 앤드류와 친구들의 것처럼 특별나지는 않다. 그렇다고 다 똑같지도 않다. 비슷한 구조라고 해도 각자가 살림하기에 편하게 해놓았다. 자신의 취향으로 물건을 채우고 가구를 배치한다. 보편적 살림 스타일이 있으나 유난히 취향이 돋보이는 집도 종종 있다. 앞으로 말할 책들은 그렇지는 않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집들이다. 우리가 사는, 여러 모습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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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는 산책하다 보면 고층 빌딩, 아파트 단지, 연립주택 단지, 다세대주택을 다 볼 수 있다.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에 나오는 아파트 단지, 『한이네 동네 이야기』에 나오는 주택과 골목길, 『모두 모두 안녕하세요!』에 나오는 한 동네의 복합적인 주택 형태도 있다. 『만희네 집』의 마당 있는 양옥집은 안 보이는데, 이미 다른 주택 형태로 바뀌었거나, 이 동네는 양옥전성시대를 건너뛴 지도 모르겠다. 일 때문에 자주 다니는 동네에는 여전히 양옥이 눈에 띈다. 나무가 잘 관리된 집도 있고 사람이 살지 않나 싶을 정도로 나무가 거칠게 방치된 양옥도 보인다. 그중 한 집은 얼마 전 담장을 뜯어냈고 곧 카페로 바뀌었다.

동네와 집 같은 어린이의 현실 생활 반경이 뚜렷이 드러나는 그림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현실 공간 말고도 상상 공간, 숲, 바다가 주요한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때도 있고, 그 배경이 동네와 집이라고 해도 보편적 특성만 살린 채로 단순히, 어스름이 그려낼 때도 많다. 아이의 동작과 표정, 사건의 발생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에서는 배경의 특색까지 자세하게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림책마다 효과적인 방식은 다르다. 

일상 배경을 잘 보여주는 그림책 중에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가 있다. 지원이와 병관이네 가족은 아파트에 산다. 이 가족이 사는 동네는 대도시 서울 어딘가의 대단지 아파트이다. 인도는 널찍하고 양옆으로 가로수가 고르게 잘 자란 모습이 일시에 조성된 동네 같다. 아이들이 학원을 오갈 때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을 익숙히 지나치고 장을 볼 때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형마트를 이용한다.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에는 복합 놀이기구가 들어서 있다. 골목길에 들어선 문방구는 위치도, 모습도, 요즘에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 1권이 나온 것은 2006년인데 아파트와 대도시의 생활 공간을 시원스럽고 선명하게, 거기에다 밝은 색채로 그린 점이 신선하고 무척 반가웠다. 김영진 그림작가는 자신이 만든 그림책의 시작은 다 주변에서 나온다고 한다.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도 그랬고 워킹맘과 아이의 마음을 그린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나 이후의 그림책도 모두 현재 생활에서 일어나는 보편적 이야기가 시작점이 되었다. 여기에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모습을 반영하고 무엇보다 실제 사는 동네, 집, 아이들이 다니는 곳을 꼼꼼히 취재하여 배경으로 그린다. 이것이 작가의 생활 배경이자 나의 활동 범위에서도 쉽게 보이는 동네 모습이어서 더 반갑고 특별하다. 평범한 배경으로 평범한 이야기를 그렸다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가고 특별해졌다. 

『만희네 집』은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주로 짓던 양옥을 배경으로 한다. 많은 양옥이 2000년대 들어 허물고 다세대주택이나 상가 건물로 다시 지어졌으나 지금도 골목길을 걷다 보면 드문드문 남아 있다. 시멘트로 바르거나 벽돌로 쌓아 올린 담, 철제 대문, 대문 안의 작은 마당, 때로 그 마당에는 큰 나무가 가지와 잎을 무성히 드리우고 있어서 집 안에 햇빛이 들까, 싶은 집도 있다. 나무가 잘 다듬어진 곳은 봄이면 목련이 아름답고 늦가을이면 홍시가 탐스럽다. 2층의 테라스와 테라스를 둘러싼 튼튼한 시멘트 난간도 특징이다. 어린 시절 외갓집은 양옥이었다. 나무 마루가 넓었고 마루 주변으로 여러 개의 방, 욕실과 부엌이 둘러있었다. 욕실과 부엌이 큼직했다. 커다란 창으로 마루 가득 햇빛이 들었지만 겨울에는 추웠다. 지금 새로 지어진 주택이나 아파트와 비교하면 더 춥거나 불편한 점은 있을지 모르나 지난 시대에 유행하던 주택인 양옥이 주는 낭만이 있다.

만희네가 이사 가는 곳이 바로 그 양옥이다. 만희는 연립주택에 살다 할머니네로 이사를 간다. 이삿짐을 높다랗게 싣고 끈으로 튼튼하게 두른 파란 용달차가 문이 활짝 열린 할머니네로 향한다. 꽃나무가 가득하고 파란색 대문이 있는 양옥집이다. 

할머니네는 집도 넓고 마당도 있고 개도 세 마리나 있다. 파란 대문에 하얀 담벼락, 담벼락 위에는 뾰족뾰족 창살이 돋아있다. 만희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가방도 벗지 않고 들른 곳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안방이다. 안방에는 옛날 물건이 많다. 안방에는 자개로 장식된 장롱과 수납장이 있고 벽에는 작은 다락이 있다. 안방 옆 부엌은 널찍하다. 맛있는 냄새가 나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있어 개들이 가장 들어오고 싶어 한다는데, 그림에서도 세 마리의 개가 부엌 문턱에 기대어있다. 부엌 뒷문으로 보이는 계단은 광 위 장독대로 가는 계단이다. 광 옆으로는 가마솥을 걸어놓은 부뚜막도 있다. 

마당에는 꽃이 가득하다. 마당을 돌아 만희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온다. 대문 밖으로는 퇴근하는 아버지가 보인다. 친구들과 온갖 장난감을 늘어놓고 노는 만희 방을 지나, 작은 타일이 촘촘한 목욕탕을 지나,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넓은 가로 판형의 그림에는 안방이든, 부엌이든, 하나의 공간을 메인으로 보여주고, 그 언저리에 다음 향할 장소를 예고편처럼 보여준다. 

이 책은 1995년에 나왔다. 살림 형태, 살림 도구, 가구, 하며 창살 무늬, 작고 촘촘한 타일, 이불 무늬, 수도꼭지와 형광등 버튼까지, 정말이지 기억 속의 소품과 집 안 모습을 충실하게 그렸다. 이로부터 30년이 되어간다. 주거 양식이 변화하기에는 긴 시간도 아닐 텐데, 그 사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이 책을 보면 알게 된다. 

나의 외갓집은 90년대를 지나며 완전히 달라졌다. 몇 년 만에 가 보니 외갓집은 주소는 똑같되 집의 형태는 옛 구조를 알아볼 수 없이 바뀌었다. 만약 양옥 형태에 대한 기억이 없는 세대가 이 책을 보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들의 기억에 닿을 듯 말 듯한 이 구조의 집과 살림과 지난 시절 유행한 무늬에 다시 흥미를 일으키고 재현할 것 같다. 지금도 자개장을 가게의 특별한 인테리어 품목으로 배치하거나 구름무늬 유리가 달린 찬장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즐거운 책이고 같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집이 사람살이의 공간이라는 점이 따뜻하게 드러나는 점이 정말 좋다. 집과 사람이 맺는 이상적 모습을 담았고 사람의 온기와 살림의 흔적이 배인 공간을 온화하게 그려냈다. 딱히 빛을 표현하지 않았는데도 오후 햇살이 잘 드는 집을 보고 있는 듯하다. 누구 하나 무기력하지 않고 자신의 살림과 놀이를 하는 풍경이 소중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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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집 모양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 계기는 현실과 그림책 속 배경의 불일치 때문이다. 특히 아파트에 대해서 그렇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산다. 그림책의 주 독자층인 어린이를 포함하여. 통계로 보자면, 2020년 사회지표에서 아파트 거주자는 50%가 살짝 넘고, 주거만족도도 높았다. 이렇게 보면 분명 많은 어린이가 아파트에 살고 있을 텐데 그림책에서는 그런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야기 자체에 동네와 집이 일상 배경으로 드러나는 그림책이 아주 많지는 않다. 그 점을 참고해서 보아도, 그림책은 주택과 시장이 있는 동네를 보여주는 데 더 익숙했다. 아파트를 칭찬하거나 치켜세움이 아니다. 대도시와 아파트는 많은 사람의 현실 생활 공간이다. 우리의 많은 에피소드는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이 이유만으로도 그림책에 아파트가 생활 공간으로 등장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림책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책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생기는 이유가 궁금했다. 설마 그 많은 작가가 모두 주택이나 마당 있는 집에 살까, 하는 생각도 한때는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어쩐지 현실과 균형이 맞지 않았다. 낭만은 시골에 맡기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와 아파트는 공기 나쁘고 쓸쓸하고 소외되는 곳이 되고는 한다. 대형마트는 더하다. 대형마트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물욕이 생기는 장소이자 물건이 인간을 압도하는 몹쓸 곳으로 나온다. 이 점은 다른나라 그림책에서도 그렇다. 그것을 이용하여 경제 관념을 공부하는 곳으로서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고는 한다. 

아파트가 지닌 자연에 반하는 인공화와 도시화, 네모난 건물에 다 똑같은 구조라는 획일성, 콘크리트 덩어리 같은 상징성 때문이라면 아파트는 실제 편리성에서 이런 거부감을 넘어섰다. 현재는 아파트가 재산 가치의 척도로 과열되는 점이 사회적 문제이기는 하나 여기에 몰두하느라 도시에 사는 우리의 즐거움, 물건을 대하는 건전한 경험까지 외면하거나 수준 낮게 여기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으면 좋겠다.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 이후로도 한참이나 도시와 아파트를 전면에 드러내고, 거기에 밝고 건강한 분위기로 채운 그림책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근래 들어서는 상황이 다르다. 그림책에서도 대도시 풍경과 아파트 모습에 더 자연스러워졌는데, 시간이 갈수록 도시가 더 익숙한 생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과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일상 터전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런 변화를 끌어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허먼과 로지가 그랬듯, 도시는 활기차고 다양하고 리듬감 넘치는 멋진 곳이다. 반대로 모든 것의 격차가 심하고 물건은 넘쳐 흐르고 소비를 조장하고 사람이 많아 별별 모습을 보고 듣게 된다. 길거리를 걸으며 성공한 듯한 기분을 즐기기에 좋으나 소음과 북적임에 금세 피곤해지고 움츠러든다. 사람한테 거리 두고 싶어지기 딱 좋은 곳이다. 모든 장소가 그렇고 모든 사람이 그렇듯, 도시는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다. 그런데 여러 단점에도 도시에는 무척이나 많은 사람이 살고 또 많은 사람이 오려 한다. 이렇게 도시에 모인 사람들이 빌딩을 오가며 활동하고 아파트에 살며 대형마트를 이용한다. 있는 그대로의 이 모습에 먼저 애정을 주면 좋겠다. 도시 밖의 낙원을 찾는 모험 대신 도시를 더 쾌적하게 만드는 기획을 담아도 좋겠다. 또한 집의 편안함은 오랜 시간을 거쳐 이루어졌고 그것을 기분 좋게 누리는 건 잘못이 아니다.

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시를 좋아하는데, 이곳에서는 꾸준히 물질문화를 다루고 민속의 개념을 계속해서 정립해나간다. 나는 민속박물관에서 쌓아가는 민속의 정의에 감응하고 자극을 받는다. 특히 시대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 시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그 시대의 민속이라 하는 부분에 주목한다. 정의하는 과정에서 특정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 수도 있고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이들은 시대정신의 해석보다 시대성을 보여주는 물건과 이것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기획해서 방향을 만들어가기보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며 현재를 인정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모든 것을 아울러버린다. 시장만 민속이 아니라 마트도 민속이 된다. 그 속에서 물질문화를 누리는 방법과 수준이 어떠한지 같은 문제들은 연구하고 분석하고 지향과 지양이 필요하나, 지향점을 찾는 연구와 삶의 현장 자체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며 한쪽을 외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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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실에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를 배경에서 제외하는가 하는 데에 실컷 의문을 표현했지만, 주택을 그리는 이유를 이해할 때가 있다. 시각적으로 더 재미있다. 골목길, 한 화면에 그릴 수 있는 낮은 높이, 조금씩 다른 집 형태, 커다란 고무통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식물, 빨래, 엉뚱한 곳에 놓인 살림살이에 골목길 저편의 평상, 햇빛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나물 등은 정돈되지는 않았어도 정겹다. 이런 점이 잘 드러나서 골목길과 주택이 있는 동네는 아파트보다 다채롭고 정답고, 소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보인다. 도시의 주거 공간을 골고루 보여주며 정감 있게 표현한 그림책이 있다. 홍선주 작가의 『모두 모두 안녕하세요!』이다. 

현재 도시 주거 열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현재 도시의 일상 주거 공간이 잘 드러난 책이다. 원룸, 다세대주택, 옥탑방, 반지하, 아파트, 변형된 양옥 등 현재 도시에서 일반적인 거주 형태에, 1인 가구, 9명의 대가족, 외국인 친구들의 옥탑방, 모녀 3대로 구성된 가족, 재혼가정 등 가족 형태도 다양하고 가게 운영, 부업, 아르바이트, 직장인 등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며 장애인, 연습생, 외국인 등의 인물들이 분방하게 등장한다. 건강하고 활달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인물들의 특징이 뚜렷해서 각각이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대표 인물로 나올 수도 있으나 이 책에는 독보적 주인공이 없다. 많은 등장인물, 여러 집과 집 안 살림살이가 나오다 보니 누구 하나에게 집중하게 되지 않고 다 어우러져 사는 장면으로 포착된다. 이야기는 진하의 하루와 진하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지만 진하마저도 주인공으로 돋보이지는 않는다. 동네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을 보여주는 매개체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건강하고 활발한 분위기에다, 홍선주 작가의 둥글둥글 운율 섞인 선과 편안한 톤의 채색에 어울려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도시의 바쁜 일상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 흥겨움도 흘러나온다. 그런데 가만 보면 꽤 혁명적이다. 재혼 가정, 아르바이트를 일곱 개나 하는 아저씨, 밤새 음악 연습을 하는 청년들, 옥탑방에 사는 외국인 젊은이들 – 이런 모습이 도시에서 아주 드문 삶의 형태는 아니나 어른이 아이에게 권하는 미래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에서 이들의 모습은 다양한 삶의 모습 중 하나이고 모두 성실히 자신의 삶을 산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판단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삶이 두루두루 섞여 있는 장면을 즐겁게 담아냈다. 

삶의 모습을 판단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책 중반부 이후에 나오는 대가족이 사는 집도 그렇다. 이 집은 식구가 늘어날 때마다 집을 확장하고 조금씩 바꾸었고 집의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요즘 하는 생각이 좀 다른데, 요리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냉장고를 둘 자리를 마련하고 싶고 할머니는 서재를 꾸미고 싶다. 할아버지가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부엌 세간살이 계획을 맡긴 점이 좋았다. 한때 공식처럼 여겼던 할아버지에게 서재, 할머니에게 냉장고를 맡기는 집안의 역할 구도를 바꾼 게 아니라, 아예 성역할이라는 이념과 판단에 얽매인 적도 없이 합리적이며 단순하다. 사람살이 현장에 어느 정도의 시대 기획이 누그러졌는데, 그것을 일부러 알아채지 않아도 될 만큼 연마된 상태로 담겼다. 

반지하에서 세 청년이 밤새 음악 연습을 할 때면,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을까 쿠키 봉지를 걸어놓는다고 한다. 이 문장을 보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언제 가족을 꾸리고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 오르고 언제 얼마만큼의 부를 이루어야 하는지 하는 식의 일반적 생애주기나 획일적 가족 형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매너와 상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청년의 우려에도 그들의 음악소리는 이웃에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소리가 타인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기에 저 태도마저도 다행이다. 소란스럽고 바쁘고 북적대나 무례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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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두 안녕하세요!』는 디테일이 빼곡한 책이다. 다양한 주택의 형태, 그에 따른 생활 공간의 디테일을 알차게 담았다. 꽃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할머니가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은 아마도 「6시 내 고향」이나 그와 비슷한 류의 방송 같다. 할머니는 아직도 브라운관 TV에 유선전화를 쓴다. 그런가 하면 대형 평면 TV와 공기청정기 등 최신 가전이 많이 설치된 집도 있다. 집마다 다른 집 구조와 거실 풍경을 보는 재미에 천천히 책장을 넘기고 그러다 앞으로 돌아가서 또 보았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김환기 화가의 그림을 떠올렸다. 짙은 파랑에 하얀 점이 별처럼 찍힌 그림처럼, 파란 밤을 배경으로 집집마다 불빛이 별처럼 반짝인다. 모두들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고 어떤 이야기를 안고 살고 있을까?

집은 모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곳이자 그 나름의 소우주이다. 그 안에서 놀이와 작은 탐험을 할 수 있고 많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엄마의 옷장은 내게는 보물창고 같아서 나는 식구들이 모두 외출하고 혼자 있을 때면 엄마의 옷장부터 열었다. 좀 더 컸을 때는 아빠의 서랍 속 물건이 궁금했는데 시간이 더 지나자 아빠는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아빠의 물건은 어른 세계의 엄격한 규칙이자 역사의 흔적처럼 보였고 한때는 아빠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방. 내 지난 시간을 담아내고 있는 물건이 가득하다. 아무리 정리하고 버려도 여전히 많이 있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집만 해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늘 깨닫는다. 물건과 집이라는 대상은 그저 무생명체로서 나를 지배하는 게 아니다. 이야기가 담긴 나의 흔적으로 여기에 있고 그 모든 것을 이 집은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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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탐험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곳에서 다시 모험과 탐험을 상상한다. 작가들은 아예 집이나 그들의 작업실에서 모험을 떠났다. 괜히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제목이 나오는 게 아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 제목을 쓰고 싶었지만 이미 있어서 ‘밤의 도서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나는 2부 내내 몇 작가들의 그림책을 톺아보고 그 이야기 중 일부를 끌어냈다. 그림책 하나에 여러 개의 긴 주석을 달 듯 읽는 이 방식은 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작은 이야기를 모아가기에 적합하다. 동시에 나의 세계를 넓히고 내가 그릴 지도의 재료를 모으기에도 좋은 방식이다. 만약 탐구 결과의 지도가 아닌 상상의 지도를 그리고 싶다면, 지도부터 그리는 방법도 있다. 톨킨은 복잡한 이야기일수록 지도를 먼저 그려야 한다고 했다. 르 귄도 그랬다. 

작가들이 몰두하여 만든 허구의 지도도 실제 지도를 구성하는 요소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창의적이고 깊이 있을지 몰라도 지도 자체는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지도와 이야기가 결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도를 볼 때는 그림책처럼 이미지 해석 체계가 작동한다. 그러면 우리는 지도에서 크고 작은 이야기를 읽어내게 되고 심상은 풍부해진다. 르 귄이 그린 어스시의 지도는 꼬불꼬불한 선으로 그려진 크고 작은 섬이 전부다. 지도만 봤을 때는 복잡하면서도 단조로운 그림이지만, 어스시 이야기와 함께했을 때 이 지도는 생생한 장소로 펼쳐진다. 지리적 특징이 다르고 기후에 따라 사람들의 관습과 성격도 다르며 위치에 따라 이야기에서 맡은 역할도 다르다. 등장인물의 모험에 동행하다 수시로 앞면지에 그려진 지도를 펼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자꾸 말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보고 확인한다. 그러면서 어느새 이 세계의 지리와 특징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읽게 된다. 르 귄은 어스시 시리즈를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지도부터 그렸다고 한다. 6권으로 시리즈를 마칠 때까지 작가는 이 지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보면 상상 세계의 지도는 이야기의 개요이자 이야기의 기반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도의 목적지를 향해 갔을 것이다.

남들이 만든 세계의 이야기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동시에 내 자료를 모으는 일, 남들이 지도를 만드는 과정을 보며 내 허구의 지도를 만들려는 욕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내 행동의 동기를 안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갖고 싶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모으고 싶다. 한 과학자가 과학 안에 시가 있다며 단순하고 침착하며 명확하게 설명하면 된다고 했듯, 나는 글이란 것이 논리적 배열을 제대로 따르면 재미는 우러나온다고 확신해왔다. 지식이 재치있게 배열되어 읽기 좋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아놓고 싶다. 

언젠가 그릴 나의 지도는 지금껏 관심을 두고 찾아왔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그다지 유별나지는 않을 것이다. 상상에서도 고지식한 나는 지도에 마을, 계곡, 해안, 섬을 그릴 예정이다. 육지와 바다가 위치하는 모양새도 이미 나온 많은 지도와 닮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지도를 언젠가 만들 나의 작은 도서관 벽에 붙이고 거기에서 이야기가 펼쳐나가도록 두고 싶다. 

빵은 부족하나 지도로 견뎠던 시절도 있고 빵이 충분하지 않아도 장미로 서로를 위로하며 생활을 끌어나간 이야기도 있다. 그림책의 감상 영역을 계속 나누어서 볼 필요는 없으나 가끔 한 번씩 빵, 장미, 지도의 영역을 나누어 살펴보며 내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정도는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빵을 만들 줄 아니 지도를 만들어봐야겠다. 장미는 그 사이 어디든 피워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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