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고구마 100 가마니의 꿈”
드럼통 속에서 맛나게 익어가는 고구마를 바라보다
젊은 날, 고구마 농사를 짓던 일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고구마를 수확해
토굴에 저장했던 기억이다.
한 해는 성공했지만
다음 해는 욕심이 지나쳐 낭패를 봤다.
1973년, 군 제대 후
고구마 재배로 성공을 꿈꾸며
고구마만 재배하기로 작정했다.
가을 수확 땐 값이 싸지만
겨울을 잘 견디면
봄에는 두 배의 값을 받을 수 있기에
저장고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른 봄, 새벽 5시에 일어나
집 앞 야산에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바위를 파는 듯한 고생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열흘, 보름, 한 달이 지나며
요령이 생기고 굴도 깊어졌다.
가을 수확까지 땅굴을 팠다.
높이 2m, 너비 3m, 깊이 15m.
고구마 100 가마니를 저장할 수 있는 크기였다.
바닥엔 구들을 놓듯 골을 파
숨 쉴 공간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발을 엮어 깔았다.
입구엔 문을 달고
환기구도 만들었다.
겨울이 왔다.
기온은 영하 20~30도.
고구마가 얼어 썩지 않을까
매일 저장고를 찾았다.
그러면 언제나,
환기구멍에선 마치 “잘 있다”라고 하듯
하얀 김이 기차 화통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지만
그 겨울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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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 이야기는
그냥 ‘고구마’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의지와 인내, 청춘의 기록이다.
봄부터 매일같이 땅굴을 파고,
뿌리 하나에 기대어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시간.
그 속엔 땅을 믿는 마음,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담겨 있다.
기차 화통처럼 연기를 내뿜던 땅굴은
아버지의 심장이자
그 시절 청춘의 상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