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문장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장들___

“아픈 가을”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맑은 가을 하늘은

손으로 쥐어짜기만 하면 금세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

참으로 곱고도 아름다웠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작년과 올해는

맑은 가을 하늘을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이제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란 말도

옛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쨍쨍 모래알을 굽듯 가마솥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이글거리는 태양이 오늘따라 무척 그리워진다.

세상 만물이 모두 태양을 먹고 살아가는데,

태양은 먹구름에 가려 두 달 동안이나

햇볕을 구경도 못하고 여름을 보냈다.

들녘의 오곡들은 중병을 앓는 환자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급기야 채 영글지도 못하고 사경을 헤맨다.

어디 오곡들만 아픈가?

산천 초목들도 한창 눈부시게 푸르러야 할 때

푸르름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가

울긋불긋 단풍들 틈도 없이

잎사귀가 누렇게 변해 한 잎 두 잎 허무하게 떨어져

길바닥을 뒹군다.

벌과 나비 또한 잦은 비에 일을 하지 못해

부지기수로 굶어 죽는다고 한다.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_____________________

아버지의 가을은,

단순히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이 아니었다.

세상의 병든 징후를 조용히 알아차리는 시선,

그리고 그것을 슬퍼하고 아파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고,

태양을 기다리며,

시름시름 아파하는 초목과 곡식, 벌과 나비까지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에는

"살아 있음에 대한 연민과 책임"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자연을 더 깊이 사랑하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가만히 되새기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골의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