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마음에 마주할 용기

여덟 번째

by 쿠키

고맙다

(순우리말)

1.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맙다'라는 감정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마움의 정도가 정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때로는 고마운 마음을 말로 다 전하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마움을 받는 마음이 커져서 부답스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고마움은 표현보다 이를 감당할 용기가 더 필요한 감정인 것 같다.


시험 결과 발표가 있던 날

저번 주 수요일은 내가 기대하던 시험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발표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았다. 합격할 것 같아 설레다가도, 불합격이 떠오르면 금세 괴로워지는 감정이었다. 약 2년, 27개월 정도. 감정평가사 수험생활을 하였다. 수험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을 먹은 날부터,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는 시험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험에서 나는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22일 오전 9시, 시험결과를 마주하는 내 모습을 기록하고자, 핸드폰 동영상 촬영도 켜놓고, 시험결과를 조회했었다. 결과에 몇 번이나 새로고침을 눌렀던지...!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고 웃기기도 하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기다리고 있을 남편 생각이 꽤 빨리 났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떨어졌어..."

- "아 진짜?"

"응. 2점 차인데, 0.1점으로도 떨어지는 시험에 2점 차는 뭐.. 아까운 것도 아니지 뭐."

- "2점?? 아 그래도 너무 아쉽다. 내가 일찍 퇴근하고 얼른 집에 갈게. 잘 쉬고 있어."


지금 여기서, 다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 보자.

그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은 어떤 말로 나를 위로하면 좋을지 고민을 꽤 많이 한 눈치였다.


- 시험에 떨어진 건 정말 아쉽지만, 그건 결과고. 우리 인생을 그 결과에 맞게 다시 설정하면 되는 거야. 우리 인생의 목표가 합격은 아니었잖아. 그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거지. 쿠키는 회복탄력성이 좋으니까 그 시간을 또 잘 견뎌낼 것 같아. 응원해.


나는 꽤나 이성적인 편이어서, 감성적인 위로는 나에게 위로가 아니었다. 감정을 살펴주는 것 말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편이 나에겐 더 와닿는 위로법이다. 이를 몇 년 동안 학습한 남편은 정말 그 진심이 나에게 와닿을 정도로 나에게 맞는 위로를 해주었다. 다음날, 나는 바로 내가 왜 불합격하게 되었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과목별로 그동안 공부했던 과정을 살펴보며 실패원인을 분석하고, 깨달은 점 식으로 기록하였다. 생각하고, 글로 적어보니, 납득이 갈만한 결과였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험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을 뿐.

이번 수험을 통해서, 살면서 갖고 있었던 시험에 대한 염증은 털어버린 것 같다. 하루하루는 열심히 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내가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노력해 본다.



고마운 마음을 감당해 보는 노력

나는 책임감이 높아서일까. 상대방에게 받은 마음에 대해서는 꼭 보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편이다. 그런 마음들이 짐처럼 느껴져서 돌려줘야만 마음이 편한 스타일인 것 같다. 근데, 결혼을 하면서는 내가 보답하려고 해도, 나의 노력으로 보답되지 않는 것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것 같다. 어쩌면, 원래 있었지만, 이제 내가 깨닫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험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남편의 시간을 내가 쓰고 있다는 생각. 수험생활 동안, 모든 스케줄은 나의 공부계획표대로 흘렀던 것 같다. 고마움이 커질수록 마음 한편은 무거워졌다. 그래도- 합격하면 그런 시간들이 보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장면은 내 생각대로 그려지지 않았고, 나는 남편에게 또다시 고마운 마음을 전해받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받았던 고마운 마음을 온전히 감당해 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마음의 빚을 지는 것만 같아, 주기도 받기도 두려워했던 어린아이 같은 감정을 마주할 때인 것 같다.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

시험결과 발표가 6일 정도 지났다. 나는 정말 회복탄력성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잘 자고, 다음 일을 계획한다. 그런 나의 모습을 신기해하면서도 응원해 주는 남편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웃으며 또 그렇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먼 훗날, 우리의 세계에서 나의 수험기는 <도전>챕터에 한 페이지로 기록되고, 그리고 그 챕터는 우리의 수많은 도전들로 채워지겠지.



결혼을 하니, 나의 도전은 남편과 나, 우리의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옆을 묵묵히 바라봐주는 상대방의 마음 또한, 도전의 또 다른 형태일지 모른다. 나를 응원하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에필로그-

다음 연재로는 수험생활동안 공부했던 부동산 전반에 대한 내용을 남겨보려 해요. 그냥 지나가기엔 수험생활이 아까워, 글로 남겨보고 싶어요. 아 - 그리고, 공부했던 것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시험을 다시 준비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렇다고 이 공부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었어요. 불합격이 제 인생을 멈추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또, 삶을 지속하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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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