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위로하는 법(feat. 정기인사시즌)

열여덟 번째

by 쿠키

위로

(慰위로할 위 勞일할로(노))

1.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는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던 대로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해보지 않은 생각은 불편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에게 편한 생각을 따르고,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인지부조화’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을까? 인지부조화란 내 생각과 행동이 다를 때 생기는 불편한 마음으로,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싫어해서 생각을 바꾸거나 이유를 만들어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뇌는 인지부조화 상태에 놓이면 두 가지 생각 중 하나를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바꾸기보다 현실을 왜곡하거나 합리화하는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게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때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그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우리 뇌는 신경가소성을 통해 변화와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다. 성장마인드셋! 그걸 갖게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온화하고, 여유롭게 더 나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놈의 인지부조화로 남편과 나의 일상은 요즘 삐걱대기 바쁘다.


정기인사로 들썩거리는 회사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의 사내커플이었다. 지금은 내가 퇴사를 하고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났던 회사를 다니고 있다. 같은 회사를 다녔다는 점의 가장 큰 장점은, 그 회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내외부 사정도 쉽게 공유할 수 있고, 관리자들의 성향도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회사를 속속히 알고 있다는 점은 서로의 신문고가 되어주기 가장 좋은 조건이다. 우리가 다니던 곳은 공공기관이다. 정기인사는 1~2월이다. 요즘 상반기 인사로 회사가 꽤 소란스러울 시점이다.정기인사는 일년에 2번 있다. 거리라도 가까우면 좋으련만, 광역발령이 쉽게 일어나는 조직이다 보니, 인사발령이 날 때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작년까지 인사시즌에 별 탈없이 지나갔는데, 유독 올해는 남편의 한숨이 커지고, 그늘이 짙어졌다.

어제저녁이었다.

“쿠키야, 나 휴직하면 어떨 것 같아?”

-“휴직? 갑자기 웬 휴직?”

“아니, 자기 계발 휴직 있거든. 그거 지금 쓸까 봐?”

-“휴직을 쓰는 건 좋은데, 어떤 의미로 쓰려는 건지 물어봐도 돼?”

“아니, 회사에서 구조적으로 내 위치가 너무 안 좋아. 성과도 없이 내가 계속 갈려버리는 구조야.”

-“흠... 휴직을 너무 감정적으로 쓰는 거 아냐?, 휴직기간을 갖는 거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휴직은 횟수가 정해져 있는 거니까 감정적으로 말고, 좀 더 계획적으로 써보는 건 어때?”

인사시즌이 다가오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남편의 회사이야기를 듣고, 몇 시간을 대화를 나눴다. 남편이 휴직을 결정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단, 그 시간을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회사 구조에 화가 난 상태로 휴직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심을 다해 고민하고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는 어째서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저녁에 듣는 인터넷 수업이 있어 대화를 급하게 마무리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닥친, 인지부조화

수업을 마친 뒤, 운동을 다녀온 남편에게 다시 대화를 신청했다.

“오빠, 아까 내가 했던 말 이해했어?”

-“응, 이해했어.”

“그럼 고민이 좀 풀렸어?”

-“아니, 고민은 그대로야. 해결된 느낌은 없어.”

저녁 먹는 내내 대화를 집중해서 고민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고민이 풀리지 않았다니 허무했다.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그럼 오빠는 어떻게 했을 때 고민이 풀리는 거야?”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먼저 물어봤으면 좋겠어.”

“!!!”

남편이 휴직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문제라고 인지하자마자 나의 회로는 해결에만 집중되고 있었다. 감정적인 남편은 휴직 이야기를 꺼낼 때 감정적 위로를 원했지만 나는 문제 해결만 집중했다. 그렇다 보니, 남편이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나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남편을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의식적으로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이성적인 나의 뇌는 문제해결에 꽂혀, 불을 끄기 급급했던 것 같다.



공통사항

우리의 다툼은 매번 비슷한 모습이다. 감성적인 이해를 바라는 남편과 이성적인 논리를 바라는 나 사이에서 유사한 패턴으로 흘러간다. 서로를 이해를 못 한다며, 아니, 서로 본인이야기만 주장하고 있다며. 결국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나간다. 그렇게 새어나간 말은 상대가 듣기도 전에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조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연애 때보다는 싸우고 난 뒤, 냉전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애 때는 짧게는 1주일, 길게는 그 이상 가던 시간이 결혼 한 뒤부터는 3일, 1일, 3시간, 1시간... 점점 짧아지고 있다. 서로를 모른다며 싸웠지만, 우리도 모르게 서로에 대한 데이터가 우리에게 입력된 것이다. 휴직 문제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남편에게, 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란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으니까 직접 원하는 것을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물었다. 지침이라고 해야 할까? 남편은 그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우리의 다툼은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그럼, 공통사항을 말해볼게. 2가지야!”


공통사항이라니! 계약서도 아니고, 회사 업무도 아닌 우리 관계에 '공통사항'이라는 단어를 쓰는 남편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게 남편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건네는 진심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공통사항-

-하나. ‘~해’라고 말하지 않기.

-둘.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보기.


정말, 남편다운 공통사항이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꽤 컸지만, 일단은 참아봤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남편이 그렇다고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실천해 보기로 약속했다. 공통사항을 거쳐 휴직 문제이야기로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흘러갔다.

“그럼, 휴직이야기는 나한테 왜 꺼낸 거야?”

-“나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해보고 싶어서 이야기한 거지.”

“내가 말한 해결방안은...?”

-“해결방안처럼 안 느껴져... 내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같이 고민해 보고, 이야기해보고 싶어.”

이 이야기를 나눈 뒤, 그제야 남편은 좀 더 자세한 상황설명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렇게 남편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남편의 표정은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남편 스스로 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어젯밤 나는 '고민을 나눠준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만 고민이 풀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을 가만히 들어주고, 고민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내 사람에게 더 집중하기

인지부조화처럼 우리 뇌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 행동이 다르다고 인식하기 시작하면, 피곤해한다. 그 피곤함을 쉽게 없애기 위해 원래 나의 본성대로 행동하기 쉽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성장마인드셋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어쩌면 결혼한 부부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인 점을 인지하고, 서로에게 성장 마인드셋을 발휘해야한다. 만약,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더라도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잘못된 길을 한 번 들어서기 시작하면, 꽤 오랜 시간 다시 걸어와야 되는 것처럼. 그렇기에 오늘 또 글을 쓰며 반성한다. 남편과 대화할 때만큼은 공통사항을 적용해서 좀 더 집중해 보기로! 나의 말이 남편에게 위로로 들리는 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위로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에필로그-

위로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일이라고 하네요.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슬픔을 달래주는 일만으로 고민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이런 말인가 봐요.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그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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