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순우리말)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함.
출처: 우리말 샘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화요일이다. 연말이라는 단어를 줄곧 써왔던 12월도 어느새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다. 한 해를 잘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요즘,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배웅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마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마중은 순우리말로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한다는 뜻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단어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면에서 마주치게 된다. 사계절에 맞춰 피는 꽃과 나무, 고향에 방문하면 우릴 반기는 강아지, 그리고 연재되는 날에 맞춰 올라오는 글까지.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닿은 것들을 언제나 마중하며 살고 있다.
마중의 반대말은 배웅이다. 떠나가는 손님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나가서 작별하며 보내는 일을 말한다. 반대 관계에 있는 마중과 배웅은 어쩐지 반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위하고 반기는, 애틋한 마음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 같은 느낌. 끝맺음을 잘 지어야 다가올 무언가도 잘 맞이한다는 말처럼, 2025년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우리가 보낸 시간을 잘 배웅하고 앞으로 다가올 하루를 반갑게 마중하자.
매주 화요일, 나의 글을 마중하는 남편
내가 브런치 첫 연재를 시작한 날은 2025년 9월 2일이다. 꼬박 4개월이 지난 지금, 나의 글을 가장 사랑하고 기다리는 애독자가 생긴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우리의 세계>의 1호 애독자는 남편이다.
사실 남편은 책이나 기록 같은 글자에는 영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글보다는 그림에 취미가 있는 남편이 화요일을 꼬박 기다리며 내 글을 읽는 건, 나에게도 꽤 신기한 경험이다.
처음부터 남편 보라고 쓴 글은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재미로 이야기하는 '파국의 조합'인 우리가 나눈 대화를 기록해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생각이 너무 다른 SF와 NT(MBTI에서 남편은 ISFP, 나는 INTJ)의 대화가 재밌었고, 그 안에서 내가 찾은 의미를 글로 남겼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을 우리의 글로 채워가니, 우리 관계에서도 브런치 덕을 많이 보았다.
나는 주로 화요일 오후 6시쯤 글을 올렸다. 마침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글이 올라가서였는지, 남편은 화요일마다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내 글을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다니. 훗날 누군가에게 설렘과 용기를 주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나에게는, 소정의 목표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약 3,500자 정도 되는 글을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는지.
"오빠, 뭐 해? 저녁 안 먹어?"
- "나 지금 중요한 거 하는 중이야. 오늘 브런치 올라왔단 말이야."
"퇴근하고 버스에서 읽으면 금방 읽는 거 아냐?"
- "버스에서는 못 읽어. 집중해서 읽어야 하거든."
글을 쓰고 퇴고를 거치기 때문에, 나는 내 글에 남편처럼 반응하기 쉽지 않다. 관계와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은 언제나 사탕 잔뜩 발린 말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글을 읽고 떫은 쓴소리도 자주 하는 걸 보니 이제 남편도 약간 T화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이젠 남편의 반응을 꽤 신뢰하며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좋은 말만 하는 것보다 쓴소리도 할 줄 아는 남편이 더 고맙고 좋다. 원래 쓴소리에는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니까.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싸움닭과 회피킹, INTJ와 ISFP가 서로를 마중하는 법
최근에 유튜브 '마인드밍글' 채널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봤다. 연애와 서사를 통해 관계 안의 나를 탐구하는 심리 콘텐츠인데, 센스 원탑인 SF와 따뜻한 로봇 NT가 파국의 조합이라는 내용이었다.
성격유형검사인 MBTI에서 현실·감정형을 SF로, 직관·이성형을 NT라고 한다. 왜 그렇게 MBTI를 자주 얘기할까 싶을 수도 있는데, 우리 부부는 MBTI를 통해 정말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사고회로가 정말 반대로 흘러가는 사람들이어서,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꽤 오랜 시간이 축적되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나보다 남편이 나를 이해하는 데 MBTI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남편에게 나는 정말 미지의 세계였다고 했으니까.
영상에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SF와 NT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방식이 아예 다른 사람들이에요."
분위기와 관계에서의 안정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SF는 맥락과 분위기, 관계의 안전부터 살핀다. '나 좀 봐줘. 내 얘기 들어줘.'와 같은 관계 신호를 원하는 편이다. 반면, NT는 내용과 논리, 진짜 의도를 확인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어서 '왜, 무엇이 문제야?'라는 말을 통해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 SF는 말을 아끼고, NT는 질문을 늘린다. SF 눈에 NT는 무례하고 눈치 없는 사람 같고, NT 눈에 SF는 속마음을 숨기고 회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정확히 우리였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한 순간 중 하나가 있다. 내가 아팠을 때였다.
한번은 내가 인후염에 걸려 목이 아프고 열이 꽤 많이 났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남편은 '괜찮아? 어떡해?'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괜찮아는 그만 물어보고, 차라리 병원 좀 알아봐 줘. 내가 지금 병원을 알아볼 정신이 없네..."
눈으로만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왜 자꾸 괜찮냐고 묻는지, 예전에는 이게 참 이해가 안 됐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실에 접근하려는 게 남편 입장에서는 비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게 싸움닭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진실을 알려고 하는 것보다 흐린 눈 하며 관계를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회피킹처럼 보여 속이 답답할 때가 정말 많았다.
어느덧 연애와 결혼 기간을 합쳐 약 8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마인드밍글 영상은 이렇게 조언했다.
"SF는 회피를 멈추고, 내 생각을 한 줄 더 말하세요."
"NT는 분석을 멈추고, 안전 신호를 먼저 주세요."
우리가 조금씩 연습해온 것들이었다.
남편(SF)은 이제 "그렇구나~"로 끝내지 않고, "나는 좀 다르게 느꼈어"라고 한 줄 더 말한다. 나(NT)는 "왜? 그건 논리적으로 안 맞잖아" 대신, "비판하려는 건 아니야" "지금 당장 답 안 해도 괜찮아"를 먼저 건넨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를 맞이하는 마중 연습을 해왔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끔 우리가 좀 더 성숙해졌을 때 만났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까 싶다. 가정법은 마치 우리에게 몇 번의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가정법은 가정일 뿐,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법. 성숙한 정도도 주관적인 기준이니, 남편과 나는 언제 만났더라도 길었던 파국의 시간을 지나왔을 것 같긴 하다. 서로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생각이 온전하게 받아들여졌을 때부터, 우리는 거의 싸우지 않게 되었다.
2026년을 마중하다
결혼, 이해, 귀엽다, 공감, 사춘기, 여행, 고맙다, 본성, 미감, 미완성, 수완, 지복, 관찰, 관심 그리고 마중까지.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고 화요일마다 쌓인 우리의 단어들이다.
기록을 좋아하는 내가 남편과의 대화와 단어를 엮어 써 내려간 글은, 어쩌면 남편의 감정을 기록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쓰인 글을 읽으며 남편은 "나를 봐주고 있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다.
화요일마다 남편은 "오늘은 무슨 이야기 썼어?"라고 물었고, 나는 "우리 이야기"라고 답했다. 그 짧은 대화가 쌓여 매주 화요일은 서로를 마중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르지만, 이제는 서로를 마중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간다. 2026년 화요일들도 기대된다. 우리가 어떤 단어로, 어떤 대화로 서로를 마중하게 될지. 그리고, 조금 더 다정한 사이가 되길 바래본다.
에필로그-
벌써 2025년의 마지막 화요일이네요.
한 해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겠죠? 기쁜 일, 힘든 일, 그냥 지나간 평범함 일까지도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드는 감정도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섭섭함일 수도, 후련함일 수도, 기대감일 수도 있겠죠.
어떤 감정이든 괜찮아요.! 그 감정들이 모여 2025년이 되었으니까요.
이제 2025년을 잘 배웅하고, 2026년을 마중할 시간이에요.
새해에도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봐요 .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