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납작만두 내가 다니던 여고는 대구에서도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여고는 대구에서도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다.
동으로는 백화점이 즐비했고 그 반대편에는 꽤나 큰 시장이 있었다.
우린학교가 끝나면 백화점파와 재래시장파로나눠져
군것질 또는 쇼핑을 즐기는 꿈많고 웃음 많은 여고시절이 있었더랬다.
단발머리에, 우린 3년내내 단발머리였다.
그리고 교복은 언제 어디서나 눈에 확 띄는 세라복에
허리 찔끈 동여 매는 벨트와 바지였다.
바지도 이름하여 몸빼 바지.. 잘 입으면 아주 세련되었지만
잘 못 입으면 그야 말로 재래시장 아짐마일바지로 통했다. 언제
어디서나 대구 바닥에서는 알아 주는 교복을 입고 시내를 혹은 시장을 누비고
다녔던 언니들이다,
그 잘 나가든 곳에는 우리의 간식, 먹거리가 있었다 일명 납작만두.
큰 팬에 기름으로 지져 낸 밀가루피에 속이라고는 잡채 서너줄기가 다 였는데도
우린 하루라도 놓칠래라 죽으라고 먹으러 다녔더랬다, 기름에 빠진 만두는
기름이 뚝뚝 훌러 내렸고 얼마나 바싹 구었는지 빠닥거리는 고소한 맛 그리고
간장맛에 못이겨 저녁 시간에는 교문을 빠져 나가
한 접시씩 시장바닥에 서서 먹고 들어와 야자를 했었다.
저녁시간에 교문 밖 나가지 말라는 선생님과 눈치 살피며 납작만두를 먹으러 가는
학생 사이에서 언제난 긴장이 흘렀지만 ..
지금은 아련하다 못해 웃게 만드는 추억이 되었다.
오늘 그 납작만두를 구웠다. 식용유를 두르고
바삭하게 구워 냈다. 만두 한입을 입에 물었다. 그런데 만두피가 너무 두껍다
이제 꼭꼭 씹어야 될 만큼 잡채 양이 넉넉했다.
누군가 그랬다, 추억은 추억으로 아름다운 거라고.
추억을 꺼집어 내어 현실에서 만나면 그건 추억이 아니라고.
그 옛날 까만 교복 단발머리 여고생이 추억의 음식을 불러 왔다.
그런데
그 때 그 소녀가 아닌데 어찌 그 맛을 기대했는지.
두툽해진 만두피 만큼이나 삶에 무디어 지고
넉넉해진 속만큼 살아온 시간이 더해 졌다.
지글거리는 기름 마냥 이제는 끓는 온도도 조절 할 수 있는
연륜은 추억이 현실이 될 수 없음을,
현실은 미래가 아님을 알아가고 있다.
시간은 나이와 비례하는 속도를 낸다고 했었지.
그래, 추억은 추억일 뿐, 어제도 추억이고
우리는 언제나 추억속으로 걸어 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