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Nov 24. 2020

카레

요리치료 프로그램 22 

카레의 배신 


카레와 자장을 만들때는 우리 친구가 조금 덜 좋아하는 채소를 넣는다. 

카레의 노란색, 자장의 검은색 소스와 어울려 어떤 채소인지 눈으로 구별이 잘 안되는 것을

좋은 의미로 이용한다. 간단히 말하면

요것조것 골고루 먹이고 싶어서 즐겨하지 않는 채소를

조금씩 넣어서 카레밥으로 자장밥으로 먹어 보게 하는데..... 




그 중에서는 미각에 탁월한 친구가 있어

입안에서 요리조리 돌려서 골라내거나 아예 식탁 위에 보란듯이 뺕어내는 친구가 있다.

이런 상황일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실 나도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는

잠시 당황, 아니 몹시 당황(그런데 절대 당황하지 않는 얼굴로..) 한다.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온갖 방법을 구상해 본다.

먹으라고 큰소리로 혼내 볼까,

'아니아니 그러면 더 안먹지 그리고 얘들을 혼내는 건 아니야

집에 가서 혼났다고 하면 요즘은 ........ 으..큰소리 안돼.. '


그 다음은, '먹기 싫어 그래 그럼 먹지마 해 볼까.'

그러면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매번 안먹으려고 밀어 낼텐데..

그러면 이 친구땜에 이 채소는 영영 사용 못하잔어. 그래 이것도 아니야. 


나의 귀는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해 열려 있고

나의 눈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그 무엇과

그 친구의 행동을 번갈아 가며 탐색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반응에 온몸의 기능을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나의 한마디가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에게도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짧게 아주 찰나, 순간적으로 몇가지의 방법을 두고 신중하게 고민한다.


나는, 나의 선택은 그냥 무관심이다.

그 친구가 울컥하며 올려 놓은 것에 대해 즉시 반응하지 않는다. 

선생님 올렸어요 이거 안먹을래요 하는 얼굴로

내 팔을 땡기고 나의 얼굴을 돌려 자기를 쳐다 보게 만들어도 나는

'응, 알았어' 라는 대답만 한다.


선생님의 반응이 즉각 나타나야 되는데 친구들은 엄청 당황한 얼굴이 된다. 

우리 친구들이 표현하는 부정적인 행동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부정적인 행동에

'안돼, 하지마, 안줄거야. 혼나' 등등의 부정적인 자극에 익숙해졌기에

서로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 친구들은

노란카레 속에 숨어 있는 얄궂은 채소와

선생님의 무반응 속에서도 열심히

자르고 썰고 볶고 끓이는 작업을 해 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뒤집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