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칼을 사용했다

성인 발달장애인 요리치료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길을 떠났다. 어디서쯤인가 길의 한 가운데서 비를 만났다. 비오는 거리는 걸음을 무겁게 했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다. 사월의 중턱에 봄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무는 푸름을 더해 가고 있다. 빌딩 숲을 지나 자연이 펼쳐진 사이로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부지런한 어느 누군가가 일구어 놓은 땅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 사이로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길에서 만난 비는 외이프를 바쁘게 만들었고 조심스런 바퀴는 미끄러지는 듯 움찔거린다,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낭만적이다. 이 빗길에 경적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지나가고 차들은 길게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다. 바깥세상은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지방으로 가는 길은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봄과 함께 시작하여 여름까지 이어 질 것 같은 이 여정이 지치지 않기를 바래보면서 오늘도 힘차게 빵빵 울리며 간다.


참여자의 모습은 여전히 밝았다. 관계자의 준비성은 넉넉했다. 내가 보내 준 품목보다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셋팅도 완벽하게 해 놓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해 놓으면 참여자가 할 게 없는데 말이다. 현장의 관계자는 복지의 개념으로 언제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그래서 이용자가 할 수 있는 역할도 해 주고, 할 수 없는 부분도 해 준다. 무조건 해 주는 이유는 있다. 하나는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함께 해야 하는 이용자는 많고 시간은 바쁘고 그래서 그 느림을 기다려 줄 여유, 내지는 시간이 모자란다. 그리고 이용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세심하게 알지 못한다. 병뚜껑은 열 수 있는지, 껍질은 벗길 수 있는지, 힘의 강약 조절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을 못하고 그저 못한다, 안되다고만 알고 있다. 또 하나는 이용자가 못하는 부분, 어려운 역할을 하나씩 가르치지 않았다. 이 가르치지 않은 부분은 단계별로 알려주지 않았고 그 단계라는 것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시도를 했으면 잊어버리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학습 내지 훈련을 시켜야 했다.


겨우 두 번째의 만남에 칼을 사용한다는 것은 과감한(?) 활동이다. 내가 두려워하면 사고가 난다는 것을 안다. 내가 자신이 있어야 한다. 첫 회기에서 본 이용자의 특징과 수준에서 칼 사용이 가능하겠다고 판단을 했고 그래서 플라스틱 빵 칼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관계자는 빵 칼을 구하지 못했다고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는데 확인을 못했다. 출발하기 전에 확인을 했어야 되는데 이건 나의 실수이다. 관계자는 기관에 있는 칼을 모았고 내가 가져간 칼을 합해 보니 11개가 되었다. 플라스틱 칼 2개, 과도 7개, 작은 주방용 칼 2개. 순간 내가 설정한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면 현장에서 빨리 계획을 수정해야한다. 칼의 모양을 보니 끝은 뾰족하고 손잡이와 칼날은 일자이며 아무튼 이용자가 처음 칼을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이용자의 수준을 믿어보기로 했다.


먼저 칼을 나눠 주기 전에 안전 교육을 했다. “칼은 위험하다. 칼은 위험하다”고 반복하고 “칼은 도마 위에서 재료를 자를 때만 사용합니다. 칼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도마 옆에 둡니다. 칼을 들고 옆 사람을 보면 안 돼요. 칼을 들고 옆 사람과 이야기해도 안돼요. 칼을 들고 돌아다니면 안돼요. 칼을 들고 장난 쳐서도 안돼요. 칼은 도마 위에서만 사용합니다, 칼은 도마 위에서만 사용합니다, 칼은 위험합니다.” 라고 설명한다. 단. 강사는 칼을 들고 설명하지 않는다. 칼을 들고 흔들거나, 옆 사람을 보는, 돌아다니는, 장난치는 흉내를 내면서 설명하지 않는다, 오로지 언어로만 설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강사의 몸짓은 이용자들이 모방하여 흉내를 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전 교육을 한 후 다시 이용자에게 물어 본다 아주 간단하게 강사가 칼은 하면 이용자가 위험합니다. 라고 대답하게 한다. 나는 접시에 담은 칼을 들고 이용자 앞에 서서 스스로 칼을 고르도록 했다. 이용자들은 다양한 모양의 칼을 보면서 신중하게 선택을 했다. 일률적으로 쫙 나눠 주는 것보다는 본인의 선택, 스스로의 선택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나도 이용자에게 칼을 나눠 줄때는 열 개의 칼 중에서 날렵한 칼은 기능이 좋은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먼저 제공하고 활동이 어눌하거나 느린 이용자에게는 그 중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이동을 한다. 한 번의 만남으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느냐? 물론 첫 회기에 다는 알 수 없지만 기능이 우수한, 소통이 되는, 지시 따르기가 가능한 정도를 체크하고 아주 느리거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정도는 파악을 한다. 그러니까 극과 극을 빨리 파악하고 일 대일로 눈 맞춤을 하면서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특성과 수준을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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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칼 사용을 잘 했다. 그 중 몇 명은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힘쓰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서 아주 쉬운 바나나 껍질을 벗기고, 힘이 조금 더 들어가는 오렌지 껍질을 벗기면서 양 손을 사용하는 방법, 양손의 힘 조절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오렌지는 위와 밑을 자르고 껍질을 잘 벗길 수 있도록 칼집을 하나만 내 준다. 이렇게 해 달라고 도움을 주시는 관계자에게 말씀드렸는데 칼집을 너무 많이 푹 넣어 주셔서 이용자가 껍질을 벗기는데 오렌지가 망가지면서 과즙이 뿜뿜 흘러 도마가 흥건하게 젖어 미끄러웠다. 나는 종이 타월을 들고 다니면서 도마를 닦아 주었다. 오늘의 활동목표는 과일 껍질을 벗기고 칼을 사용하여 자르기를 하는 것이므로 도마를 닦는 것은 별개이다. 여기서 도마 닦으면서 하세요. 한다면 이용자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헷갈린다. 껍질도 벗겨야 되고 자르기도 해야 하고 도마도 닦아야 하고, 어느 것부터 해야 되는지 허둥지둥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에게 한 시간 삼십 분 동안의 활동은 오로지 긴장이다. 물론 도움을 주는 관계자가 여럿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관계자도 알려 주어야 할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공익이 4명 있다. 공익에게 테이블 마다 이용자 옆에서 내가 한 말을 반복해서 알려 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용자 옆 자리에 착석해 줄 것을 요구했다. 공익이 말하기를 앉기 싫다고, 앉는 것 보다 서서 봐 줄 거라고 했다. 재료를 가져다주는 분만 서 있으면 되겠고, 옆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은 이용자와 눈높이가 같아야 되며, 서 있으면 이용자가 불안할 수 있으니 앉아 주었으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사실 이용자 열 분에 관계자가 공익을 포함해서 거의 7,8명이면 누가 이용자인지, 누가 관계자인지, 그리고 모두 서 있으면 금방이라고 퇴실해야 될 것 같은 불안감, 공익끼리 모여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것이 활동에 집중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수업을 진행하는 내가 불안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칼 사용하는 첫날은 나의 메시지 미확인 실수로 인해 진짜 과도를 사용했지만 아무 사고 없이 잘 이루어졌다. 플라스틱 칼과 작은 주방용 칼을 구입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다음부터는 내가 가져가기로 했다. 새 칼을 가져가면 너무 잘 들어 위험하고, 사용하던 칼을 가져가면 물론 소독은 하지만, 새 칼보다는 조금 안전하기는 하나 사용하던 것이라 마음이 찝찝하고 어떤 것으로 가져갈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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