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마트 갔다 올게~”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이 될까. 어떤 아버지가 될까. 어떤 남편이 될까. 혼자 마트를 가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이었다. 10년 후에 내 모습은 어떨까?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10년 전에 나는 뭐 하고 있었지? 궁금해졌다. 계산해보니 10년 전의 나는 군대에 있었다. 빡빡머리 이등병, 그 머릿속에는 오로지 포상휴가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금의 나는 당시에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이 변해있었다. 아이가 있는 애아빠라니. 이 짧은 사색의 끝은 ‘앞으로 10년 뒤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10년간 세상이 바뀐 것보다 더 빠르게 세상이 바뀔 텐데.’로 마무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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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 모습을 예상할 수 없으니 근시안적으로 오늘을 즐기겠다는 마인드는 아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어떤 아빠가 되어있을까. 나는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할까. 우선은 지금 당장 부드러운 말로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 피곤하고 지쳐도 아기를 한번 더 안아주고 싶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기를 사랑하면, 결국 내가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10년 전 군 생활 때 시작한 말버릇이 있다. 아니 생각 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이 생각 버릇은 아침에 기상하여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할 때, 혼자 걷고 있을 때 많이 일어났다. 이 버릇은 9년이 지난 작년까지 계속되었다. 나의 이 지긋지긋한 생각 버릇은 ‘빨리 OO 했으면 좋겠다. 몇 주만 버티자, 몇 개월만 버티자.’였다. 눈을 뜰 때마다 이 생각 버릇이 내 모든 사고를 지배했다. 군인일 때는 빨리 전역하고 싶다, 752일만 버티자. 일을 할 때는 이번 프로젝트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3주만 버티자. 결혼 전에는 빨리 결혼하고 싶다, 올 해만 지나면 결혼해야지. 그런데 결혼을 한 이후에도 내 머리와 입에서는 ‘빨리 결혼하고 싶다’라는 말이 자주 튀어나왔었다.
나에게는 신기루 같은 현실 도피용 유토피아가 있었던 것 같다. 그곳에 가면, 그때가 되면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이제 행복할 거야, 평안할 거야라고 여겼던 유토피아. 때로는 전역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간판만 바꿀 뿐, 여전히 그 헛된 신기루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9년을 그 헛된 신기루를 향해 살아왔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곳을 가기 위해 희생해도 되는 날이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워커홀릭의 삶을 살았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일을 했고, 정시 퇴근하는 날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불편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몰라할 일을 찾아 나섰다. 대학원 1학기 무렵 교수님의 상담과 공부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제 나는 지금-여기(Here & Now)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연기 같은 미래를 붙잡는 것이 아닌 지금-여기, 내 발이 붙어있는 땅으로 생각을 돌렸다.
나는 어떤 아빠가 될까? 멋진 외제차를 타고, 아들의 질문에 척척박사처럼 모든 답을 해주고,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을 사다 주는 그런 아빠? 아니다. 나에게는 이런 것들이 또 다른 헛된 유토피아이다. 나는 다시는 그런 헛된 유토피아에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랑스러운 내 아내와 아들이 있는 우리 집에 살고 싶다.
지금, 여기 나의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