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그 동화는 언제 만들 거야? 왜 안 만들어?”
“아.. 일단 급한 거부터 해야지. 끝나면 만들 거야.”
“그럼 지금 급한 거 끝나면, 다음에 오는 일은 안 급한 일이야?”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내가 말한 그 동화는 내가 학부시절 때 썼던 동화를 말하는 것이다. 아내의 삶을 보고 내가 느꼈던 내용을 주제로 이야기와 그림을 그렸다. 아내는 사람들에게 항상 웃는 얼굴이다. 아내를 너구리로 표현하여,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슬퍼도 항상 웃는 가면을 쓰는 너구리의 이야기를 썼다. 학부 과제로 했던 프로젝트였다. 아내는 그 파일 그대로 좀만 더 다듬어서 출판사를 찾아보자고 했다. 나는 그 정도 퀄리티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장 처리할 일들이 많다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몇 년의 시간이라면 마음만 먹었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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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본다. 어제랑 얼굴이 조금 다르다. 매일매일 아들은 자라고 있다. 기껏해야 몇 달 전 사진임에도 아들의 얼굴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그때는 마냥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까 별로인 것 같은 사진도 있었다. ‘제 눈의 안경’이라고 나는 아들바보 안경을 쓰고 있었나 보다. 여전히 지금이 제일 예쁜 것 같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 앞에, 다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못하면, 그대로 끝이다. 그걸 느꼈을 때 나는 모니터 옆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오늘 무얼 남길 건가.’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이 말은 아들을 생각하며 쓴 글귀이다. 내일 내가 죽는다고 가정할 때,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아들에게 네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아들이 장성하고 나름의 삶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아빠라면 이런 조언을, 이런 위로를 해줬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었다.
나는 이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삶이라는 양팔 저울에 한쪽에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추를 놓고, 다른 쪽에는 삶의 가치를 차례대로 놓아 보았다. 이전에는 쉽게 넘길 수 있었는데, 아기가 생기니 양팔 저울의 바늘이 요동을 친다. 아기가 없을 때는 ‘내가 죽으면 아내는 힘든 시간을 보내겠지만, 재혼하면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가 생기니 쉽게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를 저울 위에 올리니, 바늘은 너무나도 쉽게 움직여 버렸다.
그래서 그 엉덩이 무겁고 게으른 나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저울의 바늘이 내 엉덩이를 찌른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인스타그램에 나의 가정을 다룬 만화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그리지 말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사람의 전신을 그리게 되면 틀린 점이 바로 보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리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잘 그리지 않았었다. 아들 덕분에 나는 나의 틀 하나를 깨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올리면서 얻게 된 장점 중에 하나는 삶을 더 관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일상이 소재고, 나의 과거가 소재가 된다. 시간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잘만 흘러간다. 그런 속절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 나름의 작은 방점을 찍는 것이다. 나는 아기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을 때, 아기와 아내를 한 화면에 담는다. 아내는 꾸미지 않아 못생긴 자신을 왜 찍냐며 핀잔을 줬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둘을 같이 찍는다. 훗날 아들이 이 영상과 사진을 볼 때, ‘내가 이렇게 사랑받았구나. 나로 인해 엄마, 아빠가 이렇게 행복해하셨구나. 이때 엄마, 아빠는 이렇게 젊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위해 삶의 모습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주고 싶다. 동물 포스터부터 애니메이션 영상까지. 나의 아기 시절 사진을 보면, 빨간색, 주황색 색지 위에 그려진 동물들이 벽에 붙어있다. 아빠가 교육용으로 그려서 붙여주신 것들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보면, 아버지가 어린 시절 미니카 레일을 만들어준 일기가 있다. 스티로폼을 재단하고 붙여서 2층 구조로 된 미니카 레일이었다. 한 번에 4대가 달릴 수 있는 오리지널 아빠표 레일.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짐작이 된다. 그것을 만들기 위한 시간을 생각해보니, 초등학생이 된 내 아들을 위해 나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렇듯 아버지는 참 가정적인 분이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다. 사실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다. 내가 살면서 항상 봐왔던 모습이기에 그렇지 않은 것은 이상하게 느껴지니까.
이렇듯 아빠의 모습은 아들에게 참 많은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지금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 훗날 아들이 결혼을 할 때, 아기를 낳고 키울 때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아름다울 수 있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감사하게 살아가고 싶다. 아빠는 아들의 본보기고, 삶의 나침반이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