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잘 잤어?”
“아니. 너무 피곤해...”
“여보는 밤에 수유도 안 하면서 왜 피곤해?”
“그러게 말이야”
5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적이란 말이 있다. 아이가 있거나, 조카가 있다면 한 번은 들어본 그 말. 다행히 우리 아기는 신생아 시절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6~7시간 통잠을 잤다. 오히려 5, 6개월쯤부터 밤중에 여러 번 깼던 것 같다. 모유를 먹는 아기는 분유 젖병을 물지 못하는 아기가 많다. 모유를 먹는 법과 젖병으로 분유를 먹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방식에 익숙해진 아기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방법의 수유를 거부한다. 그래서 한밤중에 아기가 깨면, 남편은 할 일이 없다. 조심스럽게 아내를 깨우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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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밤중에 깨서 애기 젖먹이는데, 남편은 퍼질러 자고, 애가 울었는지도 몰라요.”
친한 친구의 아내가 친구를 흘겨보며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공감하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반대다. 아내는 아기와 함께 바닥에서 잠을 자고, 나는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기를 재울 때 눕수(누워서 수유하는 방법)를 하기 때문이다. 밤중에 아기가 조금만 찡얼거려도 나는 바로 잠에서 깬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잠귀가 많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기 바로 옆에서 잠을 자는 아내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아기가 울음을 터뜨린 뒤에야 아내가 일어난다. 가끔 내가 혼자 낮잠을 자다가 소리를 지르며 깬 적도 있다. 침대 위에 있던 하얀 베개가 떨어졌는데, 잠결에 아기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줄 알고, 몸을 날려 베개를 낚아채면서 소리를 지른 것이다. 원래 예민한 편이긴 하지만 아기와 함께 하니 더 예민해진 것 같다.
잘 쉬지 못한 탓일까, 왼쪽 허벅지부터 엉덩이 골반 위로 울긋불긋한 염증 같은 것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염증이 퍼져서 피부과를 찾았다. 대상포진이란다. 다행히 초기에 와서 주사를 맞고 일주일 만에 회복되었다. 절대적으로 쉬어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거의 누워서 지냈다. 거래처에 양해를 구하고 휴식을 취했다. 대상포진은 어른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 수두를 겪어서 수두에 대한 항체가 있는 성인에게는 감염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염증 부위의 진물이 아직 수두를 겪지 않은 아기에게 접촉하면 아기가 수두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아기를 안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했다. 그 부담은 온전히 아내가 짊어지게 되었다. 일주일 후 염증도 뻐근함도 가라앉았을 때 아내의 손목이 고장 나고 말았다.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다. 다음 날부터 아내는 열흘 가량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녔다. 한의원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방문해서 아내는 1시간 정도 침과 뜸을 맞았고, 나는 아기띠를 하고 아기와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열흘 후 아내의 손목 통증은 많이 잦아졌고, 결국 나는 작은방에서 혼자 잠을 자기로 아내와 합의를 봤다.
안방에서 아내와 아기가 노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기지개를 한번 켜고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다가 안방에 들어간다. 누워있는 아기가 나를 보면 소리를 내서 웃는다. 양팔과 다리를 격하게 흔들면서. 반갑다는 아침인사인가 보다. ‘잠든 새 내가 아빠인 것을 까먹지 않았구나’ 말도 안 되는 걱정에 안도를 하며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춘다 사랑스러운 것. 아침부터 행복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아내에게 잘 잤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물어본 후 아기를 안고 거실로 나간다. 아기를 내려놓고 나는 밀대를 잡는다. 나는 보통 아침에 바닥 청소를 한다. 밀대에 물 청소포를 끼우는 것으로 청소 준비를 마친다. 배구장에서 밀대로 코트를 닦는 사람들과 나를 견주어 상상하며 밀대로 먼지를 쓸고 다닌다. 집에 핸디형 청소기가 있지만 아내가 한 손으로 다루기에 무겁기도 하고 손목도 아프다고 했다. 내가 안 하면 아내가 나 모르게 청소를 하니까. 아내의 손목 걱정에 청소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방을 시작으로 서재 방까지 집안 곳곳을 쓸고 다닌다. 주방 쓰레기통 앞에서 밀대를 멈춰 쌓여있는 먼지를 살핀다. ‘윽, 오늘은 먼지 대박’ 먼지가 많이 모이면, 집이 더러웠구나 하고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알 수 없는 묘한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른 유익도 있다. 10분이면 끝나는 바닥청소. 그것을 하고 나면 아내가 칭찬을 해준다. 10분 청소하고 아내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가성비, 아닌 갓성비가 또 있을까.
프리랜서로 전향하기 잘했다고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병원에 가는 것이 쉽다는 것이다. 나는 막 태어난 아기에게 그렇게 많은 예방 접종을 하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소아과에 아기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평일 아침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병원을 방문한다. 병원 외에도 각종 매장이나 마트를 갈 때도 평일 아침 시간을 이용하면 사람도 없고 한적하게 볼 일을 볼 수 있어 좋다. 나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특별히 외출할 일정이 생기면, 그에 맞춰 일의 진행 속도나 시간을 배분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오전은 외출을 하고 오후와 저녁시간, 밤 시간에 일을 해도 마감을 마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하루 일과 중 내가 아기를 보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할 때
- 일하다가 지쳐서 잠시 쉴 때
- 아내가 아기랑 꺄르르 거리며 신나게 놀 때
- 아내가 샤워나 반신욕을 하고 싶을 때
- 아기 응가량이 많아 기저귀를 차고 넘쳐 아내가 도움을 청할 때
- 아내가 화장실을 갈 때
- 아내가 잠시 낮잠을 자고 싶을 때(이때는 보통 전날 밤 아기가 많이 깼을 때다)
- 저녁식사 이후 아기 목욕을 시켜야 할 때
(이제는 좀 컸다고 목욕통에 물 받는 소리만 들어도 웃으며 몸을 좌우로 흔든다.)
아내와 아기와 함께하는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날로 자라는 아기의 얼굴, 엎드리고, 뒤집고, 기고, 앉는 모든 과정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음이 축복이다. 대단하지 않고 소소한 일상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 삶에 힘이 되고 기쁨이 된다.
나는 잠깐잠깐 아내가 숨을 돌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아무리 집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주양육자는 아내이고 나는 보조의 역할을 할 뿐이다. 아내가 잠깐 자리를 비우고 나 홀로 아기를 한, 두 시간 봐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 시대에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다. 결혼 전에 독박 육아와 관련한 기사나 댓글을 보면, ‘자기 앤데, 왜 그렇게 억울해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보니 얼마나 힘들까, 왜 산후우울증이 오는지 조금은 공감을 할 수 있게 됐다. 어른들 말에 ‘애를 볼 바에 밭일을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00% 공감하는 말이다.
아기와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 사회의 일 중심적인 생활 방식에 분노하게 되었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의 아픔이 있기에 일의 중요성이 커진 것은 이해한다.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제적 성장을 일궈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는 아빠들 중에는 소수이긴 하지만 일부러 퇴근을 늦게 하는 아빠들도 있다. 신생아일 때는 만지기 부담스러워서 힘들다, 걸으면 걸어서 힘들다, 뛰면 뛰어서 힘들다, 말을 못 할 때는 소통이 안돼서 힘들다, 말이 트면 시끄럽게 조잘거려서 힘들다 등등 아이의 발달단계 별로 핑곗거리가 산더미다. 반면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기를 보고 싶어 한다. 정시 퇴근해서 육아에 지친 아내를 케어하고, 잠든 아이의 얼굴이 아닌 ‘아빠 왔다’라는 소리에 현관으로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사회 구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씁쓸하다. 가정이, 부부가 건강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 아이는 자라면서 이 지독한 경쟁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선행학습과 사교육, 강화된 수행평가와 생활기록부, 봉사활동까지 바쁘고 정신 없어질 아이에게 쉴 곳은 가정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런 토대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회사 모니터 밑에, 자동차 대시보드 위에 있는 가족사진으로 오늘도 안간힘을 짜내는 이 시대의 아빠들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보내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