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서 새벽까지

by 굿대디

“여보, 나 양수 터진 것 같아.”

“옷 입어. 출산 가방 어딨어?”


새벽 4시, 아내의 양수가 터졌다. 출산 예정일보다 일주일이 빨랐다. 당황한 아내는 작은 소리로 나를 깨웠고, 잠자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내는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 벌떡 일어날 줄 몰랐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선임 불침번의 아주 작은 소리에도 얼마나 벌떡 일어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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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차분하게 마음을 달래면서. 우리는 다가구 주택에 살고 있었다. 주차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었다. 평상시 우리 차 앞에는 주인집 아저씨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큰일이가 세상에 나올 상황이 되자, 나는 늦은 새벽이지만 염치 불구하고 주인집 아저씨께 전화를 드렸다. 밤 중에 죄송하지만 아내 양수가 터졌다고. 전화를 끊자마자 위층에서 난리가 났다. 우당탕탕. 서둘러 내려오신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병원을 향했다. 병원 가는 10분 동안 참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조산사 선생님이 출근하시려나. 병원에 근무하는 조산사는 우리 담당 선생님 밖에 없다고 했는데. 개인적인 스케쥴로 멀리 지방에 내려가셨으면 어떡하지. 큰일이가 엄마, 아빠 얼굴이 빨리 보고 싶었나. 예정일에 맞춰 나와주면 이런 걱정은 안 할텐데...


병원에 도착 후 아내는 환자복으로 환복하고, 태동검사를 했다. 출산 방을 배정받고, 안내를 기다렸다. 간호사 선생님은 우리가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조산사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일요일은 조산사 선생님이 출근하는 날이 아니기에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해가 뜨고 오전이 됐다. 그때까진 여유가 있었기에 사진도 찍고, 분만 촉진 운동도 했다. 졸음이 오면 잠시 잠을 잠자기도 했다. 오전 11시쯤 가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담당 선생님이 안 계셔서 불안한 마음에 당직 간호사에게 조산사 선생님께 전화연락을 부탁드렸다. 조산사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출산을 위해 힘을 내야 하니 밥을 먹고, 3, 4시간 파워워킹으로 계속 걷고 있으라고 하셨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산모가 계속해서 걷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출산 전 산모의 체력과 체중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아내는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당연하다. 당장 배가 찢어질 듯 아픈데 뭘 먹고 싶겠나. 그래도 사전 교육 때 이러한 상황을 미리 배웠던 내용이니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걷다가 인도 한 복판에서 아내는 걷다가 나를 꼭 껴안고 고통을 참아냈다. 나는 진통의 주기를 휴대폰에 기록했다. 15분마다 진통이 왔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가진통에서 진진통으로 넘어가려면 산모가 계속해서 운동을 해야한다고 하니 믿고 걸었다. 걷다 보니 작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게 됐다. 입구 화단에 개나리가 피어있었다. 큰일이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핀 봄에 태어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들어서니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들이 종종 보였다. 딸에게 킥보드를 가르쳐주는 아버지, 아들 손을 잡고 분리수거를 하러 내려온 아버지. 너무나도 보기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부러웠다. 훈령병 시절 자대 배치받은 이등병을 보는 느낌이랑 비슷했다.


아내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샌드위치를 사서 병원으로 돌아왔다. 어렵게 샌드위치 한 조각을 먹은 아내는 이미 많이 지쳐 보였다. 조산사 선생님께 연락해보니 저녁때쯤 도착할 것 같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그때까지 든든히 먹고, 계속 파워워킹을 하라고 했다. 지친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차마 걸으러 나가자고 하기 어려웠다.


저녁이 됐다. 아내는 기력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여전히 진통 간격은 13분에서 15분 간격이었다. 저녁이 다 되어 기다리던 조산사 선생님이 오셨다. ‘조산사 선생님은 휴일에도 이렇게 갑자기 병원에 불려오는 일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휴일에도 와주신 선생님께 감사했다. 뭐 좀 먹었냐는 질문에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은 단호하게 뭐라도 먹으라고 설득했다. 아내는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샌드위치 두 조각을 힘겹게 먹었다. 억지로 먹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파왔다. 조산사 선생님은 길이 어두워서 위험하니 백화점에서 더 걸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진통 간격이 3-4분 간격이 될 때까지 걸어야 한다고 했다. 열심히 파워워킹으로 걸어야 진통간격이 줄어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남들처럼 하면 안 되나. 자연주의 출산하자고 할 때 내가 말렸어야 했나’ 별별 생각이 다 올라왔지만, 아내가 꾹 참고 걷겠다고 하니 그저 아내의 곁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백화점에 들어섰다. 진통 간격이 7분까지 줄어들었다. 매장 안을 하염없이 걸었다. 태어날 아기한테 엄마가 이렇게 고생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힘겹게 걷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얼마 전에 이때 찍은 영상을 다시 봤는데, 지금 봐도 눈물이 나온다.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아내가 엘리베이터 앞 소파에 몸을 기댔다. 아내에게 가서 유도분만 주사 맞자고 권했다. 버틸 만큼 버틴 아내는 그러겠노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출산1.jpg 엄마, 아빠도 준비됐어.. 큰일이도 힘내자!




밤 9시 반 나는 애타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아내와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유도분만 주사와 태동 검사를 같이 진행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태동과 진통을 나타내는 그래프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이 진통 그래프가 종이 끝까지 올라가면, 그때 애기 나오는 거예요.”

“지금도 많이 아픈데 지금은 얼만큼이에요?” 누워있던 아내가 물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만큼이요.”


유도분만 주사는 시간에 맞춰 약의 강도를 조절하며 투여되는 방식이었다. 이대로 자연주의 출산은 포기인가 하고 있었는데, 조산사 선생님이 출산방법은 그대로 자연주의로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예정대로는 할 수 있겠구나 안심하면서도 그럼 진작에 유도분만 주사 맞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의구심이 들었다. 아내의 진통의 주기가 더 짧아졌다. 아내가 많이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자연주의 출산 방은 가정집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침대가 있고, 온돌바닥이다. 산모가 충분히 이완할 수 있도록 익숙한 분위기로 조성해놨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아내가 누었다. 불은 최소한의 조명으로 비상구 표시등만 보일 정도로 어두운 상태에서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침대의 밑부분을 붙잡고 진통의 시간을 견뎌냈다. 나도 자세를 잡고, 아내에게 호흡과 이완을 주문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고, 애를 써도 아기가 나오지 않았다. 전날 새벽에 양수가 터졌기 때문에 몇 시간이 더 지나면 위험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이때, ‘결국 수술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모두가 지쳐있던 그때, “이제 아기 머리가 많이 보여요. 타이밍에 맞춰 힘주세요!” 조산사 선생님이 말했다. 조산사 선생님과 나는 아내에게 잘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2019년 3월 25일 새벽 4시 9분. 드디어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시꺼멓게 숱이 많은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엄청난 감동이 몰려와 눈물, 콧물 다 뺄 줄 알았다. 그런데 23시간의 힘든 사투로 지칠 대로 지친 아내와 나는 그저 ‘아, 이제 끝났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내 손으로 열 달간 아내와 아기를 연결해준 탯줄을 잘랐다. 힘겨운 과정을 견뎌낸 아기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엄마의 품에 안겼다. 아기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평안히 안겨있던 아기가 내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둥거리며 눈을 떴다. 넌 이렇게 생겼구나. 아기를 자세히 뜯어봤다. 너무나도 가냘픈 팔다리와 작은 몸. 아직 초점이 맞지 않아 헤매는 눈, 작지만 오똑한 코, 양수에 젖어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까지 모든 것이 신기했다.


곧이어 캥거루 케어를 했다. 내 가슴 위에 안긴 아기의 심장이 무척이나 빠르게 뛰었다. 기분이 묘했다. 너무나도 조심스럽고, 신기하고 약간 두려운 감정도 들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리 없는 아기는 너무 지쳤는지 내 가슴 위에서 잠이 들었다. 아직도 그 무게감이 생생하다. 나는 조용히 속삭이듯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네 아빠야. 잘 부탁해. 우리는 이제 한 가족이야.”



출산2.jpg 내가 네 아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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