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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대디 Oct 29. 2020

19개월 아들의 선물

스트레스와 선물은 한 끗차이?

"똑, 똑, 똑. 아빠! 압...빠!!"


신나게 집중하며 일하던 흐름을 깨는 소리. '아들에게 노크를 알려준 게 잘못인가.' 속으로 궁시렁대며 문을 연다. 아들이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벌린다. 아들을 안아 올리고 거실로 나오니 거실 창으로 파란 가을 하늘이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오후였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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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비!”

19개월 된 아들이 이번엔 비눗방울 통을 가리키며 ‘비’를 외친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싶다는 소리다. 잠시 고민을 한다. '일 잘 되고 있었는데... 어쩌지... 에잇 모르겠다.' 날도 좋고 바람도 좋겠다, 나는 흔쾌히 아들을 안고 밖으로 나간다. 아들을 내려놓고 비눗방울을 불 포즈를 취한다. 아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잔뜩 기대가 가득한 표정. 속으로 흐뭇한 아빠미소가 번진다. 후~하고 바람을 분다. 여러 크기의 비눗방울이 뽀로로 나타난다. 아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비눗방울이 퍼져간다. 바람이 좋아 금세 하늘로 날아가버린 비눗방울을 멍하니 쳐다보는 아들을 보며 나는 비눗방울을 재장전한다. 그리고 한 번 더 후~ 바람을 분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비눗방울을 쫓아 뛰기 시작한다. 적절한 환호성은 놀이의 재미를 더 한다. 비눗방울은 자동차 범퍼에, 현관문 유리에, 아들의 머리 위에 살포시 자리 잡는다. 한참을 비누 방을 따라다니면 어느샌가 비눗방울을 즐기는 남자가 한 명 더 늘어있다. 비눗방울을 보며 소리 지르는 남자보다 조금 더 크고 이제 막 새치가 나오기 시작한 한 남자. 그 남자는 아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천천히 바람을 불어 최대한 큰 비눗방울을 불어 본다. 점점 커지는 비눗방울과 비례하여 아들의 눈과 입도 커진다. 덩달아 내 즐거운 마음도 커진다. 일에 대한 걱정은 비눗방울과 함께 어느새 날아가 버렸다.

비눗방울 놀이가 끝나면 산책을 시작한다. 나는 아들이 걸으면 함께 걷고 멈추면 함께 멈춘다. 19개월 아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지나가는 자동차와 어른들에게 빠이, 빠이 인사를 한다. 한쪽 구석에서 늘어지게 볕을 쬐고 있는 길고양이의 앞에 앉아 안부를 묻는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있는 콩알만 한 검은색 돌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고,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유심히 쳐다본다. 비 온 다음 날이었다면, 곳곳에 생겨난 물웅덩이 위로 첨벙첨벙 뛰어놀았을 것이다. 신나게 세상 구경을 하던 아들은 주차장의 카 스토퍼를 벤치 삼아 잠시 쉰다. 나도 덩달아 함께 한 숨을 돌린다.


아들과의 산책에는 목적이 없다. 목적이 없는 걸음에는 여유가 있다. 그저 아들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뿐인데 없던 여유가 생겨난다. 아들과의 산책은 온종일 집에서 일하는 나에게 재충전이 시간이 된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쳐다보며, 바쁘게 일하는 나에게 신선한 공기와 여유를 선물해준다. 이 순간만큼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것, 목적을 위한 신속한 행위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그저 아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사실 처음부터 아들과의 산책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몇 달 전 아들이 걸음마를 막 시작할 무렵, 서툰 아들의 걸음마만큼이나 산책 가는 나의 마음도 서툴렀다. 아들이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다. 지나가는 차와 강아지는 모두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불안한 마음은 아들에게 '안돼'를 외치기에 바빴다. 그리고 나 혼자 마음으로 정한 코스를 가는 것에 자체에만 집중했다. 산책을 마치고 빨리 집에 가서 멈췄던 일들을 처리하고 싶었다.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안중에 없었고 그저 정해진 산책코스를 완주했으니 됐다는 식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콩밭에 있다 보니 아들과의 산책은 항상 답답하고, 불안했다. 시간이 흐르고 아들의 걸음마가 늘듯 나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래, 맨날 컴퓨터만 붙잡고 있는 아빠를 아들이 운동시켜주고. 기분전환도 시켜주는구나.'

생각의 방향이 조금 바뀌고 나니 언제부터인가 아들과의 산책길은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아들이 나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고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이 주는 일상의 선물들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재미있던 비눗방울은 언제 거기 있었나 싶게 터지고 사라지지만, 비눗방울을 불며 놀던 행복한 기억은 오랫동안 남기고 싶었다. 오늘도 아들은 나에게 동심의 즐거움, 신선한 공기와 조금 느긋해져도 되는 여유, 그리고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준다.


매일마다 갑작스럽게 방 문을 두드리는 아들.

이제 나는 아들이 나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방문을 두드린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생각의 변화가 억지로 끌려나가는 아빠에서 매일 선물 받는 아빠로 나를 바꾸어 놓았다. 

요즘의 나는 행복한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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