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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키 Oct 27. 2020

30대 아재의 컴플렉스

숨겨왔던 나의...

의사 선생님 : 음.. 우리 아이 키는 1번이네... 

우리 부부 : 아... 

의사 선생님 : 부모님 키가 각자 어떻게 되시죠? 

우리 부부 : 둘 다 163cm에요. 

의사 선생님 : (계산기를 두드리시며) 음.. 그럼 아이의 예상 키는 170cm 초반 정도가 될 것 같아요. 물론 성장기 때 영양 상태에 따라 더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어요.


우리 아들의 영유아 정기검진 때 일이다. 19개월 된 아들의 키는 76cm로 전국 평균 1%에 해당하는 작은 키이다. 체중도 평균 8% 정도로 또래 아이들보다 적게 나간다. 인지 발달 부분은 또래보다 빠른 편이지만, 발육적인 부분은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이런 결과가 나올 걸 알고 병원을 방문했지만 씁쓸하고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다. 163cm의 키를 가진 나는 살면서 나보다 작은 성인 남자는 몇 번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키에 대해 그다지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지 않았다. 학창 시절 키는 작지만 제일 잘하는 운동이 농구였고, 친구들과도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연애도 몇 번 해보고, 고백도 몇 번 받아봤다. 키 때문에  대인 관계나 일을 함에 있어서 불리하거나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어딜 가도 존중받았고, 나는 항상 당당했다.  높은 곳에 있는 물건 꺼낼 때와 같이 물리적으로 불편한 것 외에는 키는 나에게 부끄러운 것이 아닌 조금 불편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키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편식을 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 영양가 많은 반찬보다 밥만 먹는다거나, 식사를 하다 말고 장난을 칠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은 조금씩 세어 나와 목소리와 표정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엄해지고, 표정은 굳어졌다. "밥 더 먹어야지. 어허! 장난치면 안 돼요." 아내는 나의 경직된 모습에 제동을 걸었다. "아이가 밥 먹는 시간 자체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게 더 중요해. 지금 안 먹는다고 엄하게 대하면 식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 더 클 때까지는 '밥 먹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의 말을 곱씹으며 묵묵히 저녁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아들의 발육 상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말과 행동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결국 아내와 이 문제로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다. 꽤나 오랜 대화를 했다. 나는 행여나 아들에게는 작은 키가 불편함 이상의 것이 될까 봐 걱정된다는 것과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게 미안하다는 것을 주로 이야기했다. 아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오빠가 아들의 작은 키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게 문제가 되는 거야. 외모보다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고 그것에 관심을 주기 시작하면, 아들도 외모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런데 오빠가 계속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들도 자연스럽게 '키가 작은 건 걱정스러운 일이야, 아빠가 내게 미안해하는 걸 보면 역시 키 작은 건 안 좋은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아내의 말에 반박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내 목소리와 감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작은 키가 나의 컴플렉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서 이만큼의 역동이 일어나는 걸 보면, 이건 컴플렉스가 맞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제 이 컴플렉스를 인정하고, 이 문제에 초연 해지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이 목표를 되도록 빠르게 이루고 싶다. 왜냐면 그것이 좋은 아빠가 되는 길임을 믿기 때문이다. 학력이 낮은 부모가 자식의 학력에 집착하고, 가난한 부모가 자식의 성공에 집착하듯이 나의 가 나의 자식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더 건강한 가치관을 주고 싶다면 먼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부모라면, 자신의 컴플렉스가 무엇인지, 그 컴플렉스로 인해 부부관계 또는 자녀와의 관계 속 어긋난 부분은 없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권한다. 컴플렉스가 있다면, 용기 내어 가족과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눠보길 바란다. 더 풍성하고 깊은 가족의 정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한결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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