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소원을 품었다
2023년 7월 1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거실에 있었고, 아내는 부스스한 머리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몇 분 뒤 은아가 일어났고, 엄마를 찾 았다. 귀여운 목소리를 엄마를 찾는 은아와 빼꼼 문을 열고 화장실 안에서 웃고 있는 아내. 아침부터 작은 숨바꼭질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뜻밖의 귀여운 장 면에 흐뭇한 미소로 부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을 금방 끝날 숨바꼭질이 예상 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아내는 알 수 없는 묘한 미 소를 머금고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여보 화장실에서 안 나오고 뭐해?”
아내는 웃으며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이었다.
둘은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이게 뭐지? 무슨 상황이지? 셋째가 생겼다고?
나는 피식거리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셋째를 가지는 것이 소원이라는 아내와 달리 사실 나는 아내 만큼 셋째를 원하진 않았은데, 왜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까. 행여나 만약에 생기면 감사한 마음 으로 키우고, 아니면 다행이다 정도의 입장이었는데...
불쑥 찾아 온 셋째가 이렇게 기쁘다니…!
우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산부인과를 향하는 길,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동생이 생겼다고 말해줬다. 들뜬 수아는 남동생이면 좋겠다 고 말했다. 은아는 아기가 생겼다고 좋아하긴 했지만, 정확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주차를 하고 병원에 들어서는 길에 나와 아내는 다시 웃음이 터졌다. ‘여길 온 가족이 다시 오다니!’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여길 다시 올 줄이야’를 연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했던 것 같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은 것처럼 즐거웠다. 진료 대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산부인과에 온 이유를 설명해 줬다.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어. 병원에 아기 사진을 찍는 사진기가 있거든. 아기가 잘 있나 확인하러 병원에 온 거야.”
“이야! 재밌겠다!”
새로운 이벤트에 즐거워하는 두 아이들 이 사랑스러웠다. 간호사가 아내의 이름을 불렀고, 네 명의 온 가족이 올망졸망 진료실에 들어갔다. 또 다시 웃음이 나왔다. 소아과도 아니고, 산부인과라니.
모니터에 익숙한 화면이 나온다. 아직 태아가 너무 작아서 심장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기집 1.2cm.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작구나.
[아. 원래 이렇게 작게 시작하지.]
잊고 있었다. 수아가 아기집에 있었을 때, 은아가 아기집에 있었을 때를. 그때도 감사해하며 마냥 감격해 했었지. 그 흑백의 작은 녀석들이 자라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모니터 속 흑백의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초음파 사진과 산모 수첩을 받아 들고, 차에 올라탔다.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웠다. 어딜 가면 좋을지 아내와 대화를 하며,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나오려는 순간 수아가 말한다.
“엄마 축복해요”
잠시간 우리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감동하여 작게 흐느끼는 아내. 잽싸게 눈물을 훔치며 괜히 사이 드 미러를 보는 나. 5살의 수아가 엄마를 축복한다. 장남은 장남인 건가.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살펴보며,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나 보다.
“태명은 어떻게 할까?”
나는 떠오르는 이름들을 툭툭 꺼내 놓았다. 아내는 대답도 없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소원이.”
아내는 덤덤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아내의 오랜 소원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가진 소원이었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를 낳으면 그 소원이 좀 풀릴까 싶었는데, 커가는 아이 들을 보니 셋째에 대한 마음이 더 간절했다고 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섣불리 셋째를 가지자고 말하기를 꺼려 했다. 이따금 ‘몇 년 전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앱의 알람이 울릴 때가 있다. 갓난쟁이 시절의 수아와 은아를 보면 나도 모르게 추억 속에 빠지곤 했다. 지금도 예쁜 아이들이지만, 이때는 왠지 더 예뻤던 것 같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순수한 표정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짓곤 한다. ‘이젠 다시 보지 못할 추억’이기에. 이제는 크는 일만 남았으니까. 그럴 때는 나도 종종 셋째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셋째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그 반 대의 마음을 조금 더 앞서게 된 일이 있었다.
작년 겨울이었다. 오랜 친구의 가족과 함께 근처 파티룸을 빌려 놀았다. 아이들과 수영을 하고,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시선이 머문 곳이 있었다. 아기 쿠션에 곤히 잠자고 있는 친구의 막내 아들이었다. 태어난지 100일이 좀 지난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였다.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서로 아기 안아보겠다고 하시 는 어른들이 떠올랐다.
왜 이런 마음이 들까. 이런 낯선 생각이 머리를 맴돌자 모든 행동과 말이 조심 스러워졌다. 그러다 슬쩍 친구에게 물어봤다.
“나 아기 한 번만 안아봐도 돼?”
흔쾌히 승낙을 받고 정말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았다. 아직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 한 손으로 뒤통수와 목을 잡고 천천히 내 어깨 위로 아기를 안았다. 신생아 특유의 무게감과 부피감(?), 그리고 절대로 떨어 트리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내 온 정신을 각성시켰다. 아이를 안고 흔들 흔들 자연스럽게 옆으로, 뒤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 순간 내 안에 어떤 무언가가 말을 걸었다.
[어? 이 상황 뭐지?]
[음… 이런 긴장감으로 이 정도 무게의 아기를 안은 건 수아랑 은아밖에 없었는데…]
[아기를 안았구나! 그런데 지금의 수아, 은아는 훨씬 무거운데... 이 아기는 누구야?]
머릿속에 울리는 이 몇 개의 질문들이 내 머릿속 깊은 보물 창고의 문을 노크했다. 보물 창고의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수아의 신생아 시절, 은아의 신생아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아. 그래.. 그때 우리 수아가, 우리 은아가 이랬지..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했지…]
주륵감정을 통제할 틈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뭐야, 나 왜 이래’ 한 줄의 눈물은 두 줄이 되었고, 아내를 불러 아기를 건네줬다.
휴지를 찾아 눈물을 닦고, 잠시 간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이 주었던 행복과 추억이 내 온 몸의 힘을 빼앗아간 기분이었다.
마음속 저울이 아주 조금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몇 달 후 우리 집에 소원이가 찾아왔다.
손톱보다 작은 1.2cm의 집 속에 우리의 소원이 자라 고 있다.
소원아, 내년 떡국 먹을 때 건강하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