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나는 돌입니다
그림책의 첫 문장은 짧지만 강렬합니다.
나는 내가 싫습니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데다가 꼼짝도 못 하는 바위.
나는 왜 하필 바위로 태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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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바위입니다.
나는 내가 싫습니다.
친구도 없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제자리에만 있는 나.
바위인 게 싫다고 말하는 바위가 있습니다. 바위는 못생기고 울퉁불퉁하고 꼼짝도 못 하는 자신을 싫어합니다.
바람을, 풀잎을, 꽃들을 부러워합니다. 친구도 없고 제자리에만 있는 게 불만입니다. 바위는 다른 무엇으로 바뀌길 원합니다. 친구도 많고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개미들을 부러워합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변할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을 때, 폭풍과 달빛, 별빛이 바위를 위로합니다. 하지만 폭풍, 달빛, 별빛이 바위에게 해주는 진심의 말들을 바위는 믿지 않습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빨리 시들고 개미는 친구가 많지만 혼자의 힘은 약합니다. 그에 비해 바위는 거센 바람이 불어도 오랫동안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지요. 바위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뜨거운 햇빛과 비를 맞고 눈을 맞고 폭풍을 견디고 수많은 낮과 밤을 지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요? 바위는 반짝이는 조약돌이 되어 바닷가에 있고 모래알 친구들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작게만 보이고 타인이 가진 것은 크고 빛나게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바쁜 회사 일에, 집안일에, 육아까지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여력도 없던 시기, 문득 갑자기 대학원 원서접수를 했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대단한 목적이나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 내 안에 있는 반짝이는 것을 찾고 싶다. 그림책을 더 알고 싶다,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가끔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코 끝이 찡해지기도 했거든요. 아마도 그때쯤 그림책 씨앗이 마음에 뿌려졌나 봅니다.
회사일, 집안일, 육아에 더해진 대학원 공부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는데요.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9시가 넘었고 아이를 목욕시키고 재우고 나면 새벽 네 시쯤 일어나서 과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는 쌍코피가 났는데 고 3 때도 해 보지 못한 경험이었죠.
큰 애가 세 살쯤 되면서 어느 정도 숨 좀 쉴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또다시 임신, 출산, 육아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둘째 아이가 생기면서 일도, 대학원 공부도 멈추게 되었는데요 아이가 하나일 때는 서툰 초보여서 힘든 점이 많았다면 아이가 둘 일 때는 손이 모자라서, 몸이 하나라서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두 아이를 목욕시키고 닦아주며 안아서 데리고 나오느라 정신없는 통에 큰 애가 갑자기 코피가 나고, 휴지로 콧구멍을 막아주고 여기저기 튄 핏자국을 닦고 있을 때, 작은 애는 벌거벗은 채로 거실에 똥을 싸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없는 순간들이었죠. 육아와 살림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못나고 부족하고 내가 하고 있는 노력들도 의미 없어 보이고 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그림책 스토리를 구상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자료도 찾고 뭔가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지, 그림책을 진짜 쓸 수 있을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다. 계속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준비하던 이야기를 고치고 다듬어서 그림책을 쓰게 되었죠.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긴 했지만 '안 되겠어,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결국 시간은 흐르고 지나갑니다. 나만 바위처럼 못나 보이고,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느리게 가더라도 자기만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 시간 안에서 꾸준히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다 보면 바위처럼 원하는 곳에 가게 됩니다. 언제 폭풍을 지났는지, 언제 어둠을 지나왔는지도 모르게 말입니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들은 금세 훌쩍 커서 내 일에 집중할 시간들이 생깁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며 준비하던 일은 경험이 되어 쌓이고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그림책을 보다 보면 멋진 그림과 글이 얼마나 많은지요, 대단한 작가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집니다. 꽃처럼 알록달록하고 구름처럼 몽글몽글 했으면 좋겠는데 바위처럼 못나고 부족해 보일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바르고 좋은 선택을 하는, 장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이디어가 많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꿈꾸며 배우며 노력합니다.
'할 수 있다!'라고 나 자신을 믿으면서도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곰팡이 같은 생각들을 꺼내서 햇볕에 맡려 봅니다. 못나고 조금 부족한 모습이어도 나 자신의 소중함을, 가능성을 믿고 사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돌은 움직이지 못하고 못나 보이지만 꽃이나 나뭇잎은 흉내 낼 수도 없는 단단함이 있습니다. 똑같은 돌이지만 어디에 집중해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돌이라면 어디에 더 집중하고 있을까요?
못나고 부족한 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 봅니다.
나는 돌입니다.
그래서, 인생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