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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머리 Mar 05. 2024

내모습 같아서 아픈,엄마가 된 메두사이야기

그림책- 메두사 엄마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부는 밤, 보름달 빛이 유난히도 밝은 밤, 긴 머리칼로 뒤덮여 산모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산파와 조수는 메두사의 출산을 돕습니다. 몇 시간의 진통 끝에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메두사는 사랑스러운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메두사의 딸 이리제는 엄마의 머리칼로 만든 둥지에서 낮잠을 자고, 긴 머리칼이 떠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엄마의 머리칼이 잡아주어 걸음마를 하고, 머리칼로 높은 곳에 올라가 보기도 합니다. 이리제도 메두사 엄마도 행복해 보이지만 어쩐지 이리제의 시선은 자꾸 밖으로, 세상의 아이들로 향합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리제에게 메두사는 엄마가 가르쳐 주겠다며 절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이리제가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는 공부보다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기 때문이라는 걸 메두사도 알고 있겠지요.

 메두사는 이리제를 직접 가르치고 매일 저녁 책을 읽어줍니다. 그런데 이리제는 날마다 창문으로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결국 메두사는 이리제를 학교에 보내기로 합니다.


다음 날, 학교 갈 시간이 되자 이리제는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를 보면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한다고. 엄마는 따라오지 말라고요.


학교에 간 이리제는 아이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수업이 끝나고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형, 언니, 오빠 누나,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시간이 됩니다. 

그때 뒤에서 이리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를 마중 나간 메두사가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타납니다.


“엄마!” 

환하게 웃으며 엄마에게 안긴 이리제가 보입니다. 뜻밖의 장면에 한참을 가만히 보게 됩니다. 

메두사 엄마도, 아이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신화 속에서 메두사는 신비한 힘을 가진 뱀 머리카락의 무서운 캐릭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메두사와 엄마는 왠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통 엄마들처럼 메두사도 출산의 고통을 겪고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가 됩니다. 엄마가 되면 이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낯설지만 신비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첫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아이 얼굴을 찬찬히 보던 날을 기억합니다. 

엄마가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작고 작은 아이를 보며 막막함과 두려움이 큰 순간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자르면서부터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던 나를 닮은 아이는 여전히 나와 하나인 것 같았습니다. 내 안에 있던 분신과도 같은 아이를 위해 세상에서 좋은 건 다 주고 싶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습니다.

대부분의 일은 계획하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기 마련인데 

엄마의 일은 노력해도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밤새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재우고, 열이 나서 온몸이 뜨거워진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간 새벽도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들로 때로는 울고 웃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메두사도 자신의 힘이고 능력인 긴 머리카락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합니다. 

 세상은 너무 위험하고 상처받기 쉬운 곳이기 때문일까요? 

메두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이리제의 세상을 채워주려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세상을 채워주는 메두사의 모습은 보통 엄마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보호에서 시작된 것이든 세상에 대한 불안에서 시작된 것이든 

엄마 품 안의 세상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아이는 분명 엄마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세상 속으로 가려할 때가 옵니다. 

그럴 때 메두사의 긴 머리카락처럼 잘라내야 하는 건 뭘까요? 

지나친 관심, 소유욕, 과잉보호, 걱정, 두려움, 완벽주의, 불안…….


계속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잘라낸 것들은 또 조금씩 자라겠지요.  

잘라내고 또 잘라내며 엄마도 성장하고 

아이도 어른이 되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부모는 가보지 않은 그 길이 길이 아니라 생각되기에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선택해서 가는 길이 꽃길이든 진흙길이든 아이만의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아이가 만나는 세상이 분명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을 다 해주던 엄마에서, 아이가 손을 내밀 때 잡아주는 엄마로, 

아이와 엄마만의 세상에 머물러 있는 엄마에서, 더 큰 세상에서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갈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넘치는 것들을 비워내고 잘라내고 무언가를 덜 하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을 끝으로 나의 우주와 또 다른 우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부모와 자녀의 만남 역시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는 일이다.

한 우주가 다른 쪽을 잡아먹어선 안된다. 

-       키티 크라우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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