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블랙독
어느 날, 호프 아저씨는 집 앞에 호랑이만 한 검둥개가 나타났다며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경찰은 꼼짝 말고 집 안에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번엔 호프 아주머니가 일어나서 찻잔을 떨어뜨리며 말합니다. 집 앞에 코끼리만 한 검둥개가 있다고요. 호프 아저씨는 알고 있다며 불을 다 끄라고 하죠.
다음에는 애들 라인이 일어나서 티라노사우루스만 한 검둥개가 있다며 소리칩니다. 곧이어 모리스가 일어나서 곰 인형을 떨어뜨리며 소리치고 가족들은 이불 밑에 숨게 됩니다.
이때, ‘꼬맹이’라고 부르는 막내가 나타납니다. 꼬맹이는 검둥개가 볼까 봐 숨어 있는 가족들에게 겁쟁이라고 하면서 현관문을 벌컥 열고 나갑니다. 문을 열고 큰 검둥개와 마주한 꼬맹이는 나를 잡아먹으려면, 먼저 나부터 잡아야 한다면서 나무 밑으로 달려갑니다. 달려가면서 꼬맹이는 노래 하나를 만들어 부릅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따라오고 싶으면 덩치를 줄여라.”
꼬맹이는 꽁꽁 언 연못으로 가서 얼음 위를 달리며 계속 노래를 부릅니다. 꼬맹이는 놀이터로 들어가고 검둥개는 여전히 꼬맹이를 따라갑니다. 마침내 집 앞에 온 꼬맹이는 고양이 문을 통과해 집 안으로 쏙 들어가고 점점 작아진 검둥개도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제야 호프 아저씨네 가족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고 작은 검둥개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리석었어. 꼬맹이만도 못하다니.”
“넌 정말 용기 있는 아이야. 저렇게 덩치 큰 무시무시한 녀석과 당당히 마주하다니.”
“무서워할 거 하나도 없어.”
블랙독은 집 밖에 나타난 큰 검둥개를 마주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첫 페이지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안개가 자욱한 숲 속 장면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자욱한 안갯속, 바닥에는 곰인지, 무언지 모를 발자국도 함께 볼 수 있지요. 선뜻 길을 나서기엔 두렵고 무섭기도 합니다.
블랙독은 두려움 일 수도 있고, 싫지만 마주 해야 하는 일이나 과제일 수도 있고 우울감일 수도, 불안이나 공포일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버스나 지하철, 사람 많은 곳에서 곤란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식은땀이 나면서 눈앞이 노랗고 곧 기절할 것처럼 숨이 막혀왔습니다. 수없이 타고 다녔던 익숙한 지하철, 버스인데도 심호흡을 하고 긴장하면서 탔습니다. 결국 증상이 나타나면 급히 내려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공황장애였습니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괜찮다고 헤쳐나갈 수 있다고 버티면서, 실은 괜찮지 않았나 봅니다. 괜찮지 않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어쩌면 나 자신도 속이면서 지내다가 결국 공황이라는 커다란 블랙독이 찾아왔습니다.
공황증상은 심리적인 것에서 온다고 합니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호흡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실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야 할 때면, 타기 전부터 벌써 블랙독이 나타나서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마음속에 있었던 작은 블랙독은 반드시 증상이 나타날 것과 그 이후에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는 일까지를 선명하게 눈앞에 펼치며 몸집을 불려 나갑니다.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블랙독에게 사로잡히면 지하철을 타야 하는 순간, “안 되겠어, 할 수 없어.” 라며 뒷걸음질 치게 됩니다. 몇 번의 지하철을 보내고 나서 사람이 적은 칸을 보고, “그래, 가보자, 길지 않은 시간이니까 해보자.’ 할 수 있다고 되뇌고 약의 힘을 빌리기도 하면서 블랙독을 조금은 잠재울 수 있게 됩니다.
어쩐지 나약한 모습인 것 같아 가끔 화가 나기도 합니다. ‘까짓 거, 해보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은 거야’ 그렇게 용기 내어 도전했다가 실패해서 포기한 적도 있고 그럭저럭 잘 해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도하기 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블랙독을 마주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안에서 자꾸만 몸집을 불리는 블랙독이 나타났는데요. 그림책에서 무섭고 크게 그려진 검은 개를 마주하고 가슴이 철렁했고, 점점 작아지는 검은 개를 보면서 공황증상이 가라앉는 것처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유독 처음 접하는 상황이나 과제에 있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이해하지 못하고 ‘뭘 이런 걸 갖고 힘들어하니,’ 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함께 보면서 두려움을 같이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을, 누군가는 마음의 준비와 도전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블랙독은 크거나 작을 수도 있고, 자주 만나거나 가끔 만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우리 인생에 블랙독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