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나요? 왜 워킹맘 주재원은 없는거죠?”
숨 돌릴 새 없이 업무를 쳐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를 챙기고, 자려고 누웠는데 낮에 후배와의 커피타임에 했던 대화가 자꾸 생각이 난다. 워킹맘. 이제는 친숙한 단어지만 그 말 속에 숨은 부담과 고충은 여간 친숙해지기 어렵다.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더 잘할 수는 없는걸까. 그렇다면 나의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걸까. 몸은 두 개가 아닌데… 바닥으로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쉴 새 없이 이쪽저쪽으로 움직여야 하는 줄타기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회사에서는 여성직원들을 주재파견 보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 주재원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혼이거나, 기혼이더라도 아이가 없이 단신 부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24시간, 365일 회사업무에 매진 해야하는 영업 주재원이라는 타이틀은 남자직원들도 버거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지만, 워킹맘 주재원은 선호하지 않았었다.
회사에서 꺼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사실 워킹맘 자신들도 육아와 가족이라는 제약 조건 때문에 지레 먼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워킹맘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내가 계발하고 싶은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떠오르는 샛별같이 능수능란하게 일을 척척 해내던 여성후배들이 임신-출산-육아로 인해 본인들의 꿈을 포기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며 선배로서 희망의 끈이 되고 싶어서 주재원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재 파견을 가기 위해서 회사에서 수행 능력을 먼저 검증받아야 하는 기간동안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만큼 힘들었지만, - 부서장님은 파견 확정까지 정말 갈 생각이 있는 거냐고 몇 번을 물으셨다 –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힘들고, 내 커리어를 위해 배우자의 커리어를 몇 년 동안 포기시켜야 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몇 배는 더 부담되었다. 아이는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친구도 없는 곳에 가야했고, 배우자는 육아휴직이 되지 않아 퇴직을 해야 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친정엄마 찬스를 활용하고 어떻게든 엄마들과의 유대관계를 쌓아서 육아 대응이 되었는데, 해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내 배우자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새벽에 악몽을 꾼 듯 벌떡 깼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워킹맘들이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 중 하나는 일하는 엄마라서 다 챙겨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주재원을 가면 다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 못챙기게 된다. 그러면 어떡하냐고? 배우자와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알아서 한다고 100%가 되는 것은 아니고 성에 차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꼭 모든 것을 “엄마”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좋았던 점은, 배우자가 아무리 해도해도 티가 안나는 집안 일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게 되니 집안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것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사분담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더불어 아이와의 유대감도 높아져서 이른 바 “아빠육아”가 되게 된다. 아이는 엄마만의 케어가 아닌 다소 투박할 수도 있는 아빠의 육아를 경험하고, 양성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면서 - 나의 뇌피셜로 아이의 성향과 뇌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업무적인 면을 보자면, 한국에서의 워킹맘들은 아이 케어를 위해서 자의든 타의든 리더의 역할을 회피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주재원이 되면, 조직과 사업을 책임지고 이끄는 국내에서는 해보기 힘든 현장의 업무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 경험은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보면 리더를 해보고 현장을 아는 사람과 해당 경험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다녀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본인 커리어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아이가 어려서 손이 많이 갈 때에는 회사에서 전면으로 나서기 어렵겠지만 아이가 좀 더 크고 나면, 커리어적으로 다시 뛰고 싶은 때가 오는데, 그 시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워킹맘이 해외 주재를 간다는 것은 일반인이 주재를 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직접 다녀와보니 가족 간의 유대감 측면이나, 개인 커리어 측면에서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마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