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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치 Aug 31. 2021

맛있는 걸먹고 싶어.

오미자, 페어웰

다음 달은 이제 파견을 가는 날이어서 같이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과 마지막 날 페어웰 겸해서 밥을 먹는다.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먹고 싶은 건 없었다. 그냥 맛있는 거, 다른 생각 안 날 만큼 기분 좋아지게 하는 맛있는 게 먹고 싶었다. 비가 갑자기 많이 쏟아져서 비 오는 날엔 역시 파전인가.. 하면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런 식상한 음식 말고 다른 게 먹고 싶었다.


“기분이 안 좋은데 기분 좋아지게 하는 진짜 맛있는 거 뭐 없을까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본 게 얼마만 이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항상 좋은 것만 보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럼 피자 시킬까요? 떡볶이랑..?"


내 윗년차 선생님이 피자를 좋아하는 관계로 메뉴는 그렇게 정해졌다.


그렇게 훅 내 감정을 말하고 나니 한결 속이 좀 나아진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맛있는 게 뭐일까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항상 좋아하는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어릴 때 제일 많이 먹었던, 푸드코트에 가서 먹었던 철판볶음밥 밖에 생각이 안 나서 항상 그 음식만 이야기했다. 그러다 맛에 대해 여행 가서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옥 느낌 많이 나는 예쁜 카페에 가서 화과자와 음료를 시키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 전의 데이트나 여행 갔을 때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게 계속 핸드폰만 하는 모습에 더 말을 걸고 웃게 해주고 싶었다.

난 찍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따라 찍은 건데 찍어두길 잘했다 이렇게라도 기억할 수 있어서.

평소 신걸 좋아하고 건강음료를 좋아하던 내가 시켰던 메뉴는 ‘오미자차’ , 그녀는 그녀가 즐겨먹던 아인슈페너(비엔나커피)를 시켜 먹었다.


핸드폰만 보던 그녀가 내 오미자차를 맛보더니 떫은맛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미자가 왜 오미자인 줄 아냐고 물었다. 다섯 가지 맛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러면 단맛, 신맛 , 짠맛, 쓴맛..인데.. 하나는 뭐지??  

혀의 지도에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만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만 공부했던 것 같았다. 오미자의 다섯 번째 맛은 매운맛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떫은맛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맵거나 떫은 것은 맛이 아니다. 혹시나 해서 다섯 번째 맛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일본어로 우마미, 우리말로는 “감칠맛”이 그에 해당한다고 한다. 왜 조금 더 공감해 주지 못했을까.. 감칠맛, 떫은맛, 매운맛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대화를 하는 법을 잊은 사람인 것 같이 계속 이상한 길로 새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이별 여행에서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후 더 맛있는 걸 먹이지 못했다. 그녀는 잠을 푹 자고 핸드폰을 하고.. 누워만 있었다. 겨우 데리고 나와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도 먹는 둥 마는 둥.. 아쉬워서 숙소에서라도 뭘 먹을까 싶어 피자를 사서 왔는데 그녀는 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피자를 다시 오늘 먹었다. 다른 메뉴는 먹기 애매해서.. 피자와 떡볶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한식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나에게 정말 잘 맞을 정도로 밥을 잘 먹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느새 곱창, 떡볶이가 되어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사 먹을 음식이 아니었을 텐데.. 그녀가 좋아하던 곱창 떡볶이가 내게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제일 처음 그녀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났다. 파프리카.. 이게 매운맛인지 아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난 파프리카를 좋아했고 그녀는 싫어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그 이후론 내 입맛을 바꾸려고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내 입맛이 되도록, 내가 무엇을 먹든 그녀 생각이 나게끔..

그게 망고였다. 난 그냥 망고에 관해 호의적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별로 안 좋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 이후로 망고를 안 좋아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 말을 들은 이후로 망고를 잘 찾아 먹었다. 

이렇게 입맛이 바뀌나 보다. 


그래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던 오늘, 점심시간에 떡볶이를 반 이상 남기고 나서 보관하기가 어려워 전부 버렸다. 오후 3-4시 즈음되니 다시 그 떡볶이가 생각났다.


"선생님 떡볶이 혹시 남은 거 없죠...?"


있을 때 더 많이 열심히 먹어둘걸.. 다 없어지고 난 뒤에 찾으면 뭐해.. 

내가 떡볶이를 다시 찾게 될 줄이야... 정말 몰랐다.. 좋은 건 없을 때 더 찾고 싶은 건 매한가지 인가보다.. 

사랑이나 음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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