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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명한 투자자 May 24. 2021

떨이로 나온 주식이 있다고?

그레이엄의 선물, 청산가치 투자 전략

성공투자의 열쇠는 좋은 기업의 주식을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훨씬 낮을 때 사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워런 버핏의 주주서한, p.148-


떨이로 나온 주식?

떨이. 팔다가 남은 물건을 다 처리하기 위해 아주 싸게 파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식시장에도 떨이로 나온 주식이 있다면 믿겠는가?


기업이 망했을 때 남은 돈, 청산가치
청산가치란 기업의 소유주가 기업을 포기할 때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을 뜻한다.
-증권분석, p.612-

회사가 망하면 실제로 얼마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이를 알려주는 것이 청산가치다.


상상해보자. 삼성전자가 망했다. 일단 통장과 금고에 있는 현금은 모두 회수가 가능하다. 그런데 영업을 하면서 생긴 외상값이랑 재고는 제값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외상값은 못 갚는다는 사람이 나올 테다. 재고는 헐값에 처분해야 빨리 현금으로 바뀔 것이다.


공장의 건물과 기계도 처분해서 돈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건물이 오래되어서 제 값을 못 받을 수 있고, 기계는 산다는 사람이 없어서 고물상에 넘겨야 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는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해서 맨 마지막에 남은 돈이 청산가치다.


사실 회사가 망했을 때 받을 가격 수준에서 증권이 거래되면 안 된다. 망했으면 상장폐지가 되어야지 왜 거래가 되느냔 말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 가격보다 낮게 거래되는 주식이 있다.


생각해보라. 실제로는 반듯한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기업이 망했을 때의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다면?

진짜 엄청나게 싼 것이다.

이게 떨이로 나온 주식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주가가 청산가치보다 낮고, 자산이 축날 위험이 없으며,
과거에 높은 수익력을 보였던 주식이라면 진정한 염가 주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증권분석, p.624-


진정한 염가 주식

주가가 싸다는 의미는 다음 두 가지 경우의 수를 포함한다.

1. 쓰레기 기업이라서 싸다.

2. 좋은 기업인데 싸다.


만약에 좋은 기업의 주식인데도 불구하고, 미스터 마켓이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는 기업이 망했을 때나 받을 가격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라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당장 사겠다.

대박 기회니까!

책을 읽고 나는 그림과 같이 생각했다. 청산가치에서 사서 장부가치에서 판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5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이론을 세웠으니 실전으로 검증해야 할 시간이었다. 일단 PER과 부채비율이 낮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지난 5년간 대체로 증가한 국내 기업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장부가치와 청산가치를 구했다.

엑셀을 이용해 계산한 결과

이때가 작년 4월 하순이다. 매도한 시점은 같은 해 11월이다.


20.4월 ~ 20년 11월 국내 주식 1개 종목 수익률

수익률 113%

내가 처음으로 전략에 따라 행동한 결과였다. 돈을 벌었다는 것보다 혼자 힘으로 공부하고 전략에 따라 투자를 실행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전략을 그대로 따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머리가 좋지 않으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기질이 있다. 나는 전략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


그레이엄 또다시 만세!




내가 겪은 문제점

당연히 이 전략에도 문제가 있다. 내가 겪은 문제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주가가 장부가치보다 더 오를 수 있다.

둘째, 이 전략은 소형주에서 잘 통한다.

셋째, 내 생각에는 좋은 주식 같았는데, 실제로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


문제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1. 실제로 내가 매도한 주식은 더 올랐다.

모든 기업의 주가가 장부가치와 청산가치 사이에서 요동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변동성을 기회로 삼아서 계속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실제로 내가 투자한 기업의 주가 차트다. 팔고 나서 최고 33,400원까지 올랐다. 그런데 솔직히 이 문제에는 해결방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를 모르니까 말이다.


2. 소형주에서 잘 통한다는 것은 대형주에 비해 거래가 어렵다는 말이다.

청산가치 전략은 중/소형주, 그러니까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의 주식에서 잘 통한다. 그런데 이게 단점이다. 소형주는 거래량이 부족해 매매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략이 대형주에도 통할 때가 있는데, 그건 시장이 폭락했을 때다. 그렇지 않고서는 주가가 청산가치에 도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난관이었다. 많은 돈을 소형주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3. 진짜 망할 기업을 골랐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도 내가 고른 기업이 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 내가 숙고해서 고른 기업이 상장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 망할 때 가격에 거래되다가 실제로 기업이 망해버리면 완전 낭패다.


나는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관리를 배울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왜 이걸 알려주냐고?

이쯤에서 의심이 밀려온다.

진정한 전략가는 전략을 공개하지 않는 법인데, 이걸 다 알려주는 것을 봐서는 사기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초판은 1934년에 나왔다. 그 이후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다. 실제로 동네 도서관에 가면 책에 스카치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서 표지가 너덜거린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부자가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살을 빼는 방법은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살을 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너무 자만했다. 잊지 말자. 나는 3000만 원을 잃은 사람이다.


(참고: 청산가치 ≒ 유동자산가치 = 유동자산 - 부채총계 - 우선주 자본금 - 무형자산 // 증권분석, p.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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