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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답게 산다는 것

by 글짓는약사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두 살배기 조카가 있다. 장난기 가득한 눈과 웃을 때 보이는 앞니가 귀여운 아이다. 멀리 사는 탓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거의 매일같이 영상통화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혀 짧은 소리로 겨우 단어만 말하던 아이가 요즘에는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할부지 없어?"

영상통화를 할 때면 매번 할아버지를 찾는다. 얼마 전까지는 그냥 '할부지'를 외쳤는데, 이제는 제법 똑똑한 발음으로 문장을 구사하며 할아버지를 찾는다. 애타게 찾던 (외)할아버지가 화면에 나오면 환하게 웃으며 기뻐한다. 그래서 (외)할머니랑 이모는 조금 서운하다.




조카가 할아버지를 가장 좋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끔 집에 올 때마다 마냥 예뻐해 주고 무슨 짓을 저질러도 혼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에서는 못 먹는 새로운 과자 맛을 알게 해 주었으니 좋아할 수밖에.


아빠는 조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크림 맛 웨하스'를 주며 마음을 얻었고, 얼마 전에는 '짱구'를 떠먹여 주며 친분을 쌓았다. 벌써 그런 과자를 먹이면 안 된다고 우리가 말려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맛있는 과자는 할아버지와 손자를 끈끈하게 엮어주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조카의 마음속에는 할아버지가 가장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만하다.


그런 조카에게 얼마 전부터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일명 '호~놀이'

즐겁게 영상통화를 하다가도 화면에 할아버지만 보이면 갑자기 손가락을 내밀며 아픈 척 연기를 하는 것이다. 온 얼굴에 인상을 쓰며 어찌나 리얼하게 연기를 하던지, 처음에는 진짜 다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깜찍한 연기였지만.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다는데 어디서 배운 걸까? 아님 전생에 배우였을까?ㅎㅎ)


애절하게 아픈 연기를 하다가도 할아버지가 화면에 대고 '호~' 해주면 금방 방긋 웃는다. 재미를 붙였는지 한쪽 손에 이어 다른 손도 내밀고, 볼도 내밀었다가, 마지막엔 발까지 쑥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귀엽던지 다 같이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어쩌다 영상통화를 못한 날이면 자기 전에 '할부지'를 그렇게 찾는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호~놀이'를 해야만 잔다는 것이다. 두 살배기 조카도 할아버지의 '호~'에서 자신을 향한 애정을 느끼나 보다. 내가 하도 신기해하니까 엄마가 "너희도 어릴 때 다 저렇게 하며 컸어."라고 말씀하셨다. 희미한 기억조차 없지만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보다.




순진무구하게 자신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요구하던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 그런 마음을 숨기는데 익숙해진다.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을 속에 숨긴 채, 괜찮은 척하며 다들 어른이 되어간다. 나 역시 한 명의 온전한 어른 역할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때때로 '어른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상은 우리에게 '어른이라면 응당 이래야 된다'라고 가르치지만 잘 모르겠다. 어른답게 살기 위해서는 과연 그래야만 되는 걸까? 다들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그저 '어른인 척'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호~놀이'를 할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사소하지만 소중한 그런 시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씩씩하게 살아나갈 힘을 얻기도 할 테니까.


우리 마음 깊은 곳엔 아직 '호~놀이'를 하던 어린아이가 자라지 않은 채로 있지만 살아가는 일이 바빠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도 때론 누군가에게 속 마음을 내보이며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어른답게 살기 위해서 아닌 척 숨긴다.


나는 가끔 어른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솔직한 내 마음을 내보이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웃으며 '호~'하고 불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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