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1년에 한 번, 하기 싫지만 기어이 해내는 연례행사 같은 일이 있다. 바로 스케일링이다.
스케일링도 1년에 한 번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꾸준히 하고 있다. 보통 연초에 새 마음 새 뜻으로 시작하는 마음을 다지며 스케일링도 하는데,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코로나 백신 2차 접종도 끝냈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기에, 며칠 전 드디어 2년 만에 스케일링을 받고 왔다.
개인적으로 병원 중에서 가장 가기 싫은 곳이 치과다. 아파서 가는 곳이니 어느 병원이든 가기 싫은 건 마찬가지지만 사실 다른 병원은 거의 갈 일이 없다. 살면서 크게 아파본 적이 없고 잔병치레도 거의 없는 편이라, 아프다고 해봐야 가끔씩 찾아오는 두통, 소화불량, 감기 정도가 전부다. 이런 사소한 질환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약국에서 알아서 약을 챙겨 먹으면 금방 낫기 마련이다.
하지만 치과는 예외다. 당장의 치통은 진통제로 달랠 수 있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치료는 치과에 가야만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치료 역시 빨리 해야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치과에 가야 되는 상황인데도, 가기 싫은 마음 때문에 진통제만 복용하고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곤 했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점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표정을 하고 치과에 찾아가곤 했다.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치과에 가면 치료하는데 드는 돈도, 시간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낄 아픔도 몇 배로 커진다. 게다가 왜 이제야 왔냐고 진작 오지 그랬냐는 타박도 들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경험'을 수차례 하고 나서야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서 당장 아픈 곳이 없어도 1년에 한 번은 스케일링을 비롯한 정기검진을 받고, 조금만 이상한 느낌이 감지되면 곧바로 치과에 예약을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케일링은 정말 하기 싫은 일 중에 하나다. 무력하게 입을 벌리고 누워있어야 되는 것도 싫고, 치료 도중 수시로 뿌리는 물이 얼굴에 튀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싫은 건 뾰족한 기구로 치아 하나하나, 치아와 잇몸 사이를 긁어내는 그 느낌이다. 그나마 앞니 쪽은 참을만한데 어금니 쪽을 할 때는 신경을 건드리는 듯한, 뭐라 표현할 수도 없는 그 이상한 느낌이 나를 괴롭힌다. 안쪽이 아무래도 치석이 많이 생겨서 그런 듯하다.
정자세로 누워서 '언제 끝나나'하는 생각으로 양손을 부여잡고 있다가, 견디기 힘들 때는 손톱으로 손을 찍어 누르며 그 시간을 이겨낸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숨도 참다가 다 끝났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내쉬곤 한다. 치료 후에 손에 남은 무수한 손톱자국들이 나의 아픔을 대변한다. 억만 겁의 시간이 지난듯한 느낌이었는데 막상 일어나 보니 15분밖에 안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에 안 해서 그런지 더 한참 동안 한 느낌이었다.
물로 입 안을 헹구고 혀로 치아 하나하나를 느껴본다. 맨들맨들, 뽀독뽀독, 치아가 모두 깨끗하게 청소된 느낌이다. 마치 화장실 물 때, 찌든 때를 깨끗이 청소하고 났을 때의 개운한 기분과 비슷하다. 누워있을 때는 밀려드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욕을 했지만, (죄송합니다..) 매번 내 치아를 꼼꼼하게 잘 청소해주셔서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이렇듯 스케일링은 할 때는 정말 싫지만 다하고 나면 기분이 좋기에, 하기 싫지만 기어이 해내는 연례행사이다.
우리 마음도 가끔 이렇게 꺼내서 청소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우리 마음속에는 해소되지 않은 채로 부유하는 앙금들이 있다. 때로는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다가도, 가끔씩 일렁이는 물결에 다시 어지러이 떠돌며 내 마음을 뿌옇게 만들고야 마는 감정들이 그것이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 집착, 미움, 원망, 슬픔 같은 감정들. 이런 앙금들이 뒤엉키고 뭉쳐져 단단한 치석처럼 변하기 전에 꺼내어서, 마치 스케일링을 하듯 깨끗이 씻어내는 작업을 해야 될 필요가 있다.
그 앙금들을 꺼내어 마주 보고 청소를 하는 것은, 아마 화장실 청소나 스케일링처럼 하기 싫고 힘든 과정일 것이다. 마음을 돌본다는 것이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돌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어쩌면 시간이 있어도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방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속의 앙금들을 방치한 채로, 적당히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다 보면 결국은 문제가 생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우리 삶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기 싫은 스케일링도 하고 나면 개운하고 후련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마음도 꺼내어 청소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처럼 마음속에 그런 앙금들을 깨끗하게 씻어내야만 좋은 감정들로 채울 수 있다.
그러니 너무 늦지 않게, 앙금들이 단단한 치석처럼 변해서 더 힘들어지기 전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깨끗하게 씻어내자. 마음도 주기적인 스케일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