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 정리를 한다. 더 이상 입지 않을 옷은 세탁 후 정리해서 넣거나 드라이클리닝을 하기 위해 세탁소에 맡긴다. 그리고 옷장 안에 넣어두었던 옷을 꺼내 입기 전에 미리 다림질을 해놓는다. 계절마다 이런 일을 반복하며 '옷을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한다.
옷은 마음에 드는 것을 사기 위해 고를 때뿐만 아니라 관리하는 데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세탁, 드라이클리닝, 다림질, 보풀 제거를 통해 깔끔하게 유지하고 계절별로 꺼내서 입기 편하도록 정리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옷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들어진다.
옷을 적게 소유하면 인생을 고달프게 하는 문제 하나가 사라진다.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옷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자,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졸업 후 돈을 벌고 내 돈을 내가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기면서 옷을 사 모으는데 엄청난 돈을 소비했다. 인터넷 쇼핑에 맛을 들이면서 옷 사기는 스트레스 해소이자 즐거운 오락이 되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클릭 몇 번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 결과 즐겨찾기 목록에 쇼핑몰 개수가 점점 늘어나고,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새로운 옷이 올라왔나 둘러보는 것이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거나 월급날이 되면 장바구니에 담긴 옷을 결제하며 쾌감을 느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니 나에게 이 정도는 써도 된다고 합리화했다. 매달 사는 옷은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매달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즐거움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러 스타일의 옷을 입어 보면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색다른 나의 모습에 자기만족을 하며 세일 기간에는 '모험'도 자주 했다. 그러나 내 스타일이 아닌 옷은 처음 한 두 번 입고 나면 손이 잘 안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옷 개수가 늘어나면서 옷 방에 설치한 2단 행거가 옷 무게 때문에 가운데가 휘고 무너질 뻔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스타일의 옷을 많이 사고 시도해본 결과 이제 어느 정도 나에게 어울리는 색, 디자인을 알게 되었고 취향이라는 것도 생겼다. 그리고 무조건 옷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동안 옷 소비에 투자한 돈은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기 위해 지불한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옷 방에 행거 대신 붙박이장을 설치하고 옷을 많이 정리했다. 예쁜 새 옷장에 마음에 안 드는 옷을 더 이상 넣어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옷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다.
입지 않는데 걸려있으면 볼 때마다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막상 입고 나가면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이런 옷은 대부분 세일 기간에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충동적으로 구매한 탓에 나에게 어울리지 않거나, 질이 떨어지거나, 불편한 옷이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매일 다른 옷을 입는 사람보다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이미지화했을 때 적합한 옷, 나에게 잘 어울리고 입었을 때 기분이 좋은 옷들이 나의 스타일이 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의외로 사람들은 상대가 무엇을 입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 역시 모임을 가거나 친구를 만났을 때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다른 사람 눈을 신경 써서 항상 새로운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건강을 위한 간헐적 단식, 해독이 유행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과하게 추구할 경우 돈은 돈대로 들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활성산소, 독소로 인해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 면에서 가끔 단식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옷 쇼핑 역시 물론 즐겁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 들이는 노력, 시간, 돈을 생각하면 강제적으로라도 한 번씩은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낀다.
요즘엔 다년간의 쇼핑 노하우로 나에게 어울릴만한 옷 위주로, 소재도 꼭 체크하여 신중하게 구입하려고 노력한다. 마음에 드는 옷이 생겨도 바로 구매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다음에 다시 봤을 때도 확신이 생기면 비로소 결제한다.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옷이라면 계절마다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가치가 있는 옷인지 고민해본다. 손질에 들이는 수고를 생각하며 그 수고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애착이 생기는 옷만 소유하자는 생각을 한다.
지독하게 같은 스타일을 고집한 대표적인 인물로 스티븐 잡스가 있다. 그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가 연상된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그런 것은 아니다.
스티븐 잡스처럼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 매번 같은 차림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코디해서 입고 그날의 코디가 마음에 들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사람에게는 패션이 일상을 행복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옷의 가짓수에 집착하기보다는 나에게 잘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최소한의 옷으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나의 목표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옷들로만 채워진 옷장을 갖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입을 게 없어 뭘 입을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는, 눈에 보이는 아무 옷이나 꺼내 입어도 만족스럽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그런 옷장.
요즘은 매일 입은 옷을 다이어리에 기록으로 남기고, 그중 마음에 들었던 코디는 표시해가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런 기록의 장점은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네.. 작년엔 뭐 입었지?' 하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
작년 이맘때도 분명 옷을 입고 다녔을 텐데(옷을 벗고 다니진 않았을 텐데...) 미스터리하게도 해가 바뀌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험, 아마 다들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입었던 옷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한 줄로 메모를 해두는 게 찾아보기도 쉽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꿈꾸는 옷장을 갖게 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