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들의 웃프고 찌질한 농담, 난 그게 불편하단 말이다.
추석 연휴를 오롯이 휴식으로 보낸 에디터는 세상 편한 자세로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 예능에서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게스트에게 결혼 예정이 없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혼자 사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결혼을 생각할 거라는 덧붙임과 함께.
이 대답 뒤에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가
“근데 결혼하면 여자친구가 집에 안 간다던데, 진짠가요?”
“방금 상상했는데 너무 무서운데? 내 집에서 여자친구가 안 나가.”
라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이런저런 농담이 오갔고, MC는 아직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안돼서 그렇게 느끼는 거라며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티비귀신으로서, 예능은 예능으로 보는 사람이고, 그들이 예능에서 나온 사소한 발언들을 시시콜콜 캐내어 논란을 반강제적으로 만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궁금했던 예능계의 컨셉이 있었다. 바로 '유부남 조크'. 요즘은 결혼 생활에 관련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부부가 출연해 아직도 알콩달콩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예능에서, 사석에서도 유부남들이 총각에게 하는 조크들이 많이 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뉘앙스가 주를 이루는 이 조크들은 꽤나 타율이 좋은 웃픈(?) 상황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A: 오늘 다 같이 술 한잔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B: A씨 집 좀 들어가세요! 원래 그렇게 불러도 안 나오더니, 결혼하고 나서 그렇게 사람들을 챙기세요.
A: 저는 저희 가정을 사랑합니다! 깔깔깔깔
하는 식이다. 부부가 당연히 1년, 2년이 지나면 사랑하는 남녀가 아니고 가족이 된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로맨틱하지 않다고 할 정도로, 몽상 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유독 '유부남 조크'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이것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진 않지만, 농담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공감'을 바탕에 두고 있으리라.
그래서 본인의 지인 중에 와이프 눈치를 보다 겨우겨우 나와서 유부남 조크를 날리고 황급히 들어가던 인간을 붙잡아 급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지인의 결혼 배경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그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6살 어린 여자친구와 이쁜 결혼을 했다. 내 주변 사람들 중 첫 남자 유부남이었고, 어느 날 갑자기 청첩장을 들고 찾아와 청첩장을 받고 2주 뒤에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전에 언급도 안되었던 결혼이라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결혼식에서 결혼 말고 그 부부 사이에 축복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그것이 뭐가 흠이랴. 그 둘이 행복하게 살겠다고 선언했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는 평범한 부부이다. (물론 우리 친구들은 그 녀석을 도둑놈 xx로 부르긴 했지만).
그가 했던 “유부남 조크”는 우리 머스마 모임을 항상 빵 터트렸다. 추석에 본 예능 이후에 이 글을 쓰고 싶어 하던 내가 그 “유부남 조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 녀석(이후 그): 이거 신원 보장 확실한 인터뷰 맞나?
조단(이후 조): 아!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를 해주려 하는 건가?
그: 그런 건 아닌데… 괜히 뭔가..
조: 알겠다. 뭐 우리가 그 정도 우정은 있는 사이니까. 오늘 했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은 게 있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내가 라디오 애청자가 된 것 말하는 건가?
조: 사실 약간 단순하신 분이라 라디오고 나발이고, 음악도 평소에 잘 안 들으시는 분인데, 라디오 애청자라고 하니까 인상 깊을 수밖에 없었다. 자초지종 좀 이야기해달라.
그: 아니... 뭐 이건 분명 신상보호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내 와이프와 우리 가정을 사랑한다. 나는 쉴 때마다 내 딸 사진을 보고 힘을 얻는다. 이건 진심이다.
조: 알았다. 안다, 그 진심.
그: 사실 많은 결혼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도 있는데, 뭔가 나만의 생활이 없어진 기분이다.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다가, 다시 쉬러 가는 곳에 또 사람들이 있는 기분이다. 그게 절대 내 아이와 와이프를 보기 싫다는 뜻은 아니다.
조: 알겠다. 벌써 몇 번째 똑같은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약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한 기분인가?
그: 그렇다. 사실 우리는 신혼을 즐기기 전에 이미 우리 딸아이와 함께하게 되어서, 아들, 친구, 남자로서의 나는 익숙했지만 남편, 아빠로서의 생활을 급하게 적응해야 했던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건 내 와이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도 못 다니고 육아준비를 했으니까. 그게 내가 남편, 아빠로서 더 빠르게 적응해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조: 그럴 수도 있겠다. 집에 가서 와이프를 두고 혼자 있는 거는 진짜 도둑놈 xx 되는 거니까.
그: 그렇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잔다. 또 와이프와 함께 육아하다 보니 이제서 아이가 돌 지나고 혼자서 졸리면 들어가 잘 정도가 되니, 요즘 들어서는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갖고 싶어 졌다.
조: 그래서?
그: 아니.. 그냥… 퇴근하던 길에 듣던 라디오를 다 듣고 들어가야지 하니까 한 30분 정도는 주차해놓고 혼자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생겼다. 이게 절대 내 와이프를…
조: 알겠다! 이렇게 계속 똑같은 말 하는 게 더 웃기다. 그럼 라디오만 듣고 있나?
그: 아니 뭐 그냥.. 들으면서 가끔 하던 게임 조금 깔짝댔다가, 의자 뒤로 넘겨서 누워도 있다가, sns 좀 들여다보고.. 그냥 들어가면 다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모드(mode)를 바꿔야 하니까. 그 차에 있는 시간은 그냥 별생각 없이 나로서. 별거 안 한다. 그냥 혼자서 멍~
어느새 그 녀석은 핸드폰 게임을 하고, 누워서 빈둥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유부남이 되어있었다. 그의 모든 것이 오롯이 아이를 위한, 부인을 위한 것이 되었던 치열한 신혼이었던 것이다. 그 녀석 이름은 온전히 그 자신의 이름으로만 불리기에는 조금은 철없던 나이에 가족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결혼의 진짜 모습일 수도 있다. 많은 기혼자들은 자신이 지워지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취미를 가지려 하기도 하고, '누구 아빠', '누구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똑순이 엄마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 상경하자마자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일 욕심도 내서 돈도 많이 벌었고, 야무지게 많은 자기 욕심을 채우며 평생 살 수도 있는 여자였다. 그녀가 우리 자식들을 만나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엄마들이 자식들이 힘들어하는 거 알면서도 왜 그렇게 대학에, 입시에 그렇게 우리 세대를 밀어붙였는지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전업주부로서 잊히던 자신의 모습을 자식들에게 기대셨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욕심내게 되고, 집착하게 되고, 다그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나에게는 조금 불편했던 '유부남 조크'가 어쩌면 결혼에 대한 비아냥이 아니라, 먹고살기 힘든 우리네 사람들 한풀이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 복지가 좋은 어느 나라에 이민 가서 사는 지인은 아이를 셋을 낳고도 축구 클럽팀에서 주말마다 축구를 하고, 와이프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사치스럽게 느껴지지 않게 이야기할 때, 그 녀석은 못났고 이 친구는 멋진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많은 부분에서 우리 부부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이런 이야기는 이 글을 읽을 예비 신랑 신부들에게 결혼이 이렇게 힘들다고 훼방 놓는 것이 아니다. 아니, 에디터보다 그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잘 준비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이제는 우리 부모님이, 내 친구들이 이렇게 가진 웃픈 고민들을 들으면서, 옆에 있는 내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해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적는 것이고, 우리 세대에 대한 응원이고, 같은 세대로서의 푸념이며, 그럼에도 그 길을 걷기로 약속한 당신들에 대한 찬사이다.
나는 언제나 진심으로 당신을 응원한다. 당신들이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결혼에 대한 마음이 천천히 나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