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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04. 2019

조건 맞춰보는 게
뭐 그리 나쁜가요?

자, 우리 이제는 솔직해지자. 나도 조건 따지는 남자, 여자라고.


얼마 전, 요즘 애용하는 넷플릭스에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사실 이 영화는 대학 시절,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개봉하자마자 봤던 영화였다. 고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비는 시간에 봤던 영화인지라 첫 30분 정도만 얼핏 기억이 나고 나머지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은 깜깜했던 것으로 회상한다. 결말이 다가올 즈음에 다시 눈을 떴고, 그렇게 시작과 끝 내용만 알게 된 채로 보고 나왔던 영화를 거의 5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맥주와 간단한 과자를 옆에 끼고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나는 첫 부분부터 살짝 놀랐다. 내가 기억하는 5년 전 이 영화의 첫 장면과는 시작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하긴, 5년이면 기억이 많이 왜곡될 기간이기는 하다.


여하튼 영화는 남자 주인공 월터가 ‘e-하모니’라는 매칭 사이트를 통해 짝사랑하고 있는 회사 동료 셰릴에게 ‘윙크(이 사이트 상에서 상대에게 관심을 표하는 수단)’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윙크를 보내기 전, 월터는 셰릴의 프로필을 살펴보는데, 여기에는 이름과 나이는 물론이거니와 결혼 경험이 있는지, 이혼했다면 자녀가 있는지 등 아주 상세한 것들이 기입되어 있다. 물론 너무 개인적인 정보라고 생각되거나 이런 정보까지 기입한다면 상대방이 내게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예를 들면 이혼하고 자녀까지 키우고 있다던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던가 하는 것 등- 기재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높은 매칭 성사율을 누리고 싶다면 가급적 ‘모든 문항’을, ‘솔직하게’ 기입해야 한다. 그게 ‘가본 곳’, ‘해본 것’과 같이 비교적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인 질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여기까지, 이 영화를 채 10분도 보기 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커플 매칭 사이트나 데이트 어플에서는 상대방의 조건을 따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함에도, 왜 현실에서는 내 이상형이 어떻다고 언급하거나 구체적으로 키는 얼마 이상이어야 하고 연봉은 얼마였으면 좋겠고, 가족관계는 어땠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면 까다로운 사람에, 주제도 모르고 조건만 따져대는 사람이 되는 걸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지인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20대 초중반 때처럼 일단 마음에 들면 만남을 지속하면서 천천히 조건을 염탐해가는 일이 흔하지 않다. 보통 사업이나 주식에서 말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리턴이 더 큰 법이다’라는 말이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도통 통하지 않는 셈이다. 사람들은 연애와 사랑에 있어 ‘세기의 사랑’과 같은 큰 리턴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 누구나 하는 그 정도의 연애,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세대가 생각하는 그 ‘평범한 연애’의 전제조건이 바로 ‘삶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하고 경제적 조건이나 신체적 조건이 나보다 낫거나 적어도 나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이상형 하나쯤은 새기고 있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뿐 ‘적어도’(‘적어도’ 키는 170cm 이상이어야 해, ‘적어도’ 연봉은 3천만 원 이상이어야 해, ‘적어도’ 소형차 한 대쯤은 있어야 해 등등…)라는 기준을 가지고 연애 상대를 탐색하고 있다. 그건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버스에서건 잘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건 연애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나가고 있는 운동 동호회에서건 마찬가지다. ‘이 사람하고 사귀게 된다면 영화 취향이 맞으니까 영화관 데이트를 많이 하겠군’, ‘나는 해산물 요리를 좋아하는데 이 사람은 해산물 알러지가 있다니… 외모랑 성격은 내 스타일인데 식생활이 너무 안 맞아도 사귀기 힘드니까 안 되겠다’라고 하며,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조건을 비교하고 김칫국을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조건을 따지는 일은 언제 어디에서나 -심지어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카페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고, 이 젊은이들 또한 카페 안의 다른 젊은 이성을 두리번거리며 외모와 차림새를 보며 조건을 따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비난받을 일도 비판받을 일도 아닌, 아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도로 자연스러운 ‘조건 맞춰보는 일’이 성대를 울리고 입 밖으로 튀어나가 공기를 타고 다른 사람의 귀에 전달되는 순간, 혐오스러운 일이 된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현상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나만 그런 건가? 아니면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 모두 ‘나는 조건 따위는 보지 않아’라고 하며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자, 우리 이제는 솔직해지자. 나도 조건 따지는 남자, 여자라고. 사실은 나도 스마트폰에 소개팅 어플 몇 개 깔려있고, 이 어플에서 좋은 등급 받아서 똑같이 좋은 등급 받은 이성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스스로의 행동을 부끄러움 없이 솔직하게 인정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연애 그리고 사랑으로 조건 따지는 일은 더 이상 남 눈치 봐야 하는 일도, 혐오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일도 아니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아주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일이자 우리 모두에게 연애와 사랑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아주 쿨한 방식이 될지도 모른다. 자, 이제 마음껏 드러내자, 내가 원하는 연애 상대방의 조건을!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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