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서 지루한 인간이라는 징표를 보여주는 것인 걸까
20대라는 ‘여러 가지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 때에 살고 있음에도 종종 ‘고지식하다, 보기와는 다르게 막혀있는 구석이 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연애 방식이 있었다. 지금도 나라면 이렇게 연애하지는 않겠지만, 다행히도 현재는 어떻게든 ‘이해는 하고 있는’ 상태이다.
언젠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 유독 친하게 지냈던(물론 지금도 굉장히 친하다) 한 친구와 단 둘이 만났던 적이 있었다. 보통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사회생활이며 인간관계, 연애 같은 주제에 열을 올리며 못 만난 기간 동안 이야기보따리에 곱게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그렇게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을 때, 친구는 “나도 한 사람이랑 오래 사귀고 싶다”는 말을 푸념하듯 꺼내놓았다. 당시 나에게는 3년 정도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고, 이전의 연애에서도 난 1년 미만으로 만난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 번의 연애가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편이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참을성이 별로 없을뿐더러, 좋자고 하는 연애에서 왜 내가 원치 않는 정도의 배려까지 해가면서 상대방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연애가 막 시작되어 서로 좋아 죽을 때, 매일 출근 전 잠깐, 퇴근 전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만남을 이어가는 연애 극초반에는 ‘저절로’ 이해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연애 한 달을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이해해줘야 하지? 그것도 내 속상함마저 눌러가면서...’라는 생각으로까지 번지게 된다며, 본인 연애의 힘든 점을 털어놓았다. 친한 친구이자 곁에서 이 친구의 대부분의 연애사를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내가 가장 처음으로 한 생각은 친구가 연애에 있어 이런 힘듦, 외로움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본인과 비슷한 연애관을 가진 사람을 만났더라면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진심으로 나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 앉아 생각해보니 이 친구의 연애관이 다소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물론 친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이건 진심이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난 그 포인트를 친구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친구는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의 타지 생활로 언제나 외로움에 몸서리쳤고, 그 외로움을 연인이나 친구로부터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는 것이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다. 본인의 외로움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에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건전한 방법(항간에서 추천하는 동호회 나가기, 취미 만들기, 운동하기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을 찾을 수 있어야만 사람에게서 오는 외로움, 내면에서 오는 외로움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친구는 인간관계, 그것도 연애에서 오는 관계로부터 자신의 외로움이 해결되기를 바랐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운 그녀에게 남자친구의 해외 출장이나 야근 등으로 인한 바쁨 혹은 가족 경조사 등으로 인해 주말에 만날 수 없는 일이 간혹 생기는 것은 ‘참아주기 어려운 일’, ‘외로움을 느껴가면서까지 배려할 생각이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가 원할 때(즉, 외로워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랄 때) 남자친구가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일이 2, 3번 정도 반복되면 그가 옆에 있어주지 못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인연의 끈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이게 바로 내가 이전까지 줄곧 의아해했던, 누구보다도 사람 좋은 그녀가 한 달에 만나는 사람이 3번도 넘게 바뀌는 이유였던 것이다. 그녀는 친구 관계에서는 배려심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친구였지만, 연인관계에서의 여자친구로서는 어쩌면 50점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한 달에 만나는 사람이 몇 번씩 바뀌는 것도 그녀에게는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연애사에 대하여 타인이 왈가왈부할 권리는 당연히 없다. 요즘 세상에서는 내가 했던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긍정적인 조언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음에도 내뱉어버리면 꼰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40-50대 기성세대 중에서 젊은 사람들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조언이랍시고 마음대로 잔소리를 해대는 것을 꼰대라고 했다면, 이제는 나이를 불문하고 타인의 영역을 개념 없는 말로써 침범하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를 꼰대라고 부르니... 나도 젊은 꼰대가 될까 걱정되어 친구를 위로하는 것 외엔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친구의 연애 방식을 분석하고 조언이라는 것을 해댈 수 있겠는가? 고작 오래 사귄 남자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는 이유로?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가볍게 만나는 남자가 한 달에 3번 바뀌면 어떻고 5번 바뀌면 어떤가? 자유롭게 상대방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는, 자유연애의 정점을 찍는 ‘썸’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단어가 있는 세상에서 말이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언젠가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젊을 때 많은 사람들을 가볍게 만나보고 오래 사귀는 남자친구는 가급적 만들지 말라고, ‘남자친구’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남자 ‘친구’니까 친구처럼 지내되 그 관계에 속박되지는 말라고. 나는 ‘남자친구’라는 말 그 자체가 주는 무게감에 주목했지만 엄마는 ‘친구’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솔직히 굉장히 놀랐다. 50대에 접어든, 결혼 경력 30년 차의 엄마에게 요즘 사람들보다 더 과감한 연애관이 존재했다니, 그것도 내 생각과는 정반대의 연애관이라니…
요즘 엄마 세대들은 본인들이 20, 30대 때에는 겪어보지 못한 해방감을 딸 세대가 누리는 것을 보고 걱정하거나 우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러워하면서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점을 떠올려보면 엄마와 난 친모녀 사이지만 연애, 사랑에 대한 가치관에 있어 이렇게 거리감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종종 사람들에게 듣던 ‘어떤 때는 조금 막힌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아’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훅 와 닿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 엄마의 말을 떠올릴 때면 ‘젊은 꼰대, 중년의 인싸’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만 느껴지면서 ‘그 친구와 우리 엄마의 눈에 비친 나의 연애관은 어떨까? 한 남자만 몇 년을 만나며 연애하는 건 요즘 세상에서 지루한 인간이라는 징표를 보여주는 것인 걸까?’라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