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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ug 08. 2019

그래서 너희 집에선 얼마를
도와주신다고?

결혼이라는 하나의 퀘스트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나니 결혼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리 가족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자주 나누기 시작했다. 


“아빠는 너한테 이 정도 금액을 도와주려고 해. 그쪽 어르신들 생각은 어떠니?”


도와주신다는 말에 감사함과 안도감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 죄송하기도 했다. 지원을 받지 않고 결혼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부모님의 지원 없이 직장 가까운 곳에 전셋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남자친구한테 한 번 물어볼게.”


사실 이런 질문을 남자친구에게 건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괜히 속물로 비칠 것 같아 며칠을 망설였다. 그러나 결혼 준비를 위해 누군가는 금전적인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는 타이밍을 재기로 했다. ‘결혼 준비 이야기가 나오면 슬쩍 이야기해봐야지.’ 어느 주말, 자연스럽게 남자친구의 입에서 결혼 준비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오래 망설였던 것과 다르게 마치 번뜩 떠오른 것처럼 그에게 물었다. 


“아, 근데 부모님한테 전세금 이야기는 해봤어? 우리 집에선 감사하게도 좀 도와주신다고 하시더라고.”

도와주신다는 말에 숙연히 고개 끄덕이던 남자친구는 ‘너도 물어봤냐’는 질문에 마치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 물어본 적 없는데?”

“우리가 현실적으로 예산을 짜 보려면 양가 의견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약간 망설이던 남자친구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한 번 여쭤보도록 할게.”



하지만 그 이후로 2주일이 넘도록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내가 답답한 것도 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내 방 문을 열고 “그쪽 어르신들은 뭐라시니?” 물어보는 부모님의 반복되는 질문에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또 한 번 기다렸다가 이 주제를 남자친구에게 어렵게 꺼냈다.


“참 저번에 그 전세금 얘기는 여쭤봤어?”

남자친구는 표정이 무거워졌다.

“나는 사실 그런 걸 여쭤보고 싶지도 않아. 부모님이 여유되시면 알아서 도와주시는 거고, 아니면 우리 힘으로 사는 거지.”


맞는 말이다. 당연한 얘기다. 누가 그걸 모르겠나.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구체화하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전체 예산이 잡혀야 집세로 얼마, 결혼식에 얼마, 신혼여행에 얼마를 쓸지 계획해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게 잡히기 전까진 웨딩홀도 스드메도 알아볼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도 집안에 손을 벌리고 싶지 않은 아들들의 자존심이라고 익히 들어왔던 터라 이해는 되었다. '자립심이 강한 내 남친! 든든하다~’고 생각하며 콩깍지 씐 팔불출 모드로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상견례 전까지 예산을 짜지 못한 채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간 속앓이는 나의 몫이었다.



대망의 상견례 자리. 양가 부모님들의 주도하에 상견례는 무난하게 치러졌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모두 궁금해했던 현실적인 부분들도 상견례 자리에서 윤곽이 잡혔다. 양가 어른들은 기분 좋게 돌려 말씀하시면서도 능숙하게 핵심을 때리는 스킬풀 한 대화를 이어가셨다. 그동안 왜 그렇게까지 속앓이를 했나 싶을 정도로 상견례를 끝내고 나니 많은 것들이 명확해졌다.


양가가 한 번 대면을 하고부터는 중간에서 말을 전할 때에도 조금 수월해졌다. 서로의 품성을 알기 때문에 의도를 곡해할 여지도 없었고, 모두가 가장 힘들어하는 ‘다 생략하자고 했지만 그래도 이건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래도 마인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게 평탄했던 건 아니었다. 나만 크리스천이었던 우리 집과 남자친구 빼고 모두 크리스천이었던 상대 집안 사이에서 결혼식 톤 앤 매너를 잡는 것 역시 힘들었다. 양가 어머님들 한복을 맞출 때도 누구 취향에 맞출 것인지, 같이 가야 하는지 따로 가야 하는지, 아무튼 어려운 미션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하루는 너무 힘이 들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무엇 때문에 양가 조율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힘든 지점을 찾은 결과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을 때 내가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양가로부터 ‘명확한 답변’은 어떻게 이끌어내야 할까? 남자친구와 내가 각자의 부모님을 도맡아 명확하게 의견을 말씀하실 때까지 전담 마크를 하는 것이다. 내 부모는 내가, 네 부모는 네가. 뉘앙스에 의문을 품지 않도록 아주 정확한 의도를 캐치해서 올 것. 이 약속을 하고부터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줄어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무사히 결혼식 퀘스트를 깰 수 있었다.


결혼 준비가 평생 함께할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결혼식’에 포커싱 되어있다는 사실이 물론 아쉽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지금 당면한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단기 목표를 ‘무사히 결혼하기’ 하나로 세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첫 관문이다. 이렇게 돈독해진 협동심은 결혼 후에도 빛을 발한다. 그 힘들다는 결혼식을 치렀으니 웬만한 건 척하면 척이다. 그러니 결혼 준비라는 하나의 퀘스트를 잘 해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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