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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09. 2019

돈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나도 너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물론 모든 것이 내 잘못일 것이다. 서른을 1년 앞두고 – 아니 정확히는 4개월 앞두고 – 아직까지 아르바이트나 전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말이다. 할 줄 아는 게 딸딸이 밖에 없어서 오늘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집에 가서 딸을 칠 것 같다. 그리고 그 피곤함에 못 이겨 잠에 깊이 들기를 바란다. 영원히 잠들면 더 좋고.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고.


“미래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여자친구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친구였던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 떠나갔다. 여자가 30살이 되면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나 보다. 그래,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이겠지. 나이가 너무 많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면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가정을 원하던 그녀가 29살에 내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 건 지극히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상은 오히려 나다. 나는 그녀가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시덥지 않은 말만 내뱉었다.


“글쎄. 아직 그런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난 결혼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했으니까.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미안한데 나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어. 직장도 지금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곳이 전부라 은행에서 대출을 해 줄지도 잘 모르겠어. 다음 시즌에는 꼭 취업에 성공할게. 취업을 하게 된다고 해도 딱히 재산이 많이 불어날 것 같지는 않아. 너는 혹시 모아둔 돈이 많아? 결혼 자금을 마련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집을 사고, 또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만큼? 나는 그 정도는 없어. 그래서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



뭐 이렇게라도 말해야 하는 걸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연애 상담사들이 서로에게 솔직한 관계가 제일 좋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내가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하고, 이런 나를 그녀가 떠나는 것 역시 똑같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연애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솔직함보다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간다. 요즘 일본 불매 운동 때문에 일본 맥주를 싸게 판다는 뉴스를 페이스북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일본 맥주를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일본보다 몇 배는 더 사랑한다. 일본 열도 전체가 방사능으로 오염되거나, 핵폭탄이 그곳에 떨어져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오늘 알바가 너무 힘들었으며, 그랬기에 지금 너무 맥주가 먹고 싶다. 그냥 싼 맥주를 먹는 것뿐이니까 나를 매국노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인스타그램을 켜고 그녀의 계정에 들어가 본다. 최근에 음악 페스티벌을 다녀온 모양이다. 그녀는 웃고 있다. 마음이 쓰리지만 적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병신이랑 있을 때, 그녀는 항상 걱정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무슨 걱정이 저렇게 많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다 나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처럼 능력도 없는 개 거지새끼랑 만나는데 걱정이 없을 수 없었겠지… 지금이라도 그녀가 자기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내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내 삶은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다.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고, 딸을 치고, 맥주를 먹고, 그러다가 늙어서 죽고. 뭐 이런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릴 적에 나는 멜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헤쳐가는 커플들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부러웠다. 나도 그런 짝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난 더 이상 멜로 영화를 보지 않는다. 실제 세상은 멜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만 가난하면 됐지, 왜 내 여자친구, 내 자식까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들이 왜 나와 함께 가난을 이겨내야 하는가?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잘 살면 된다. 가난은 나 하나로 족하다.


가난은 나 하나로 족하다. 그래, 정말 그렇다. 그러니까 가난한 주제에 다른 사람을 내 인생에 끌어들이려 하지 말자. 아무리 외로워도 남한테 피해 끼치지 말자. 가난하면 그냥 혼자서 살자.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휴대폰을 켠다. 굉장히 우울하기 때문에 딸을 쳐야 한다. 그리고 그 피곤함에 못 이겨 잠을 자야 한다. 빠르게, 빠르게 나는 내 성기를 흔든다. 제발 빨리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나도 너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로.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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