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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28. 2019

당신은 눈이 높아서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닙니다

똑똑해서 그런 거죠

“여자 친구가 집에 있는 것만 좋아하고, 도통 나가서 데이트하려고 하지 않아.”


“여자 친구와는 잘 지내냐?”라는 나의 질문에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이 한 대답이다. 얼마 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더니, 사귄 지 몇 주 되지 않아 헤어지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나와 다른 사람과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 말 앞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라는 말이 붙었다. 



그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이만큼 연애 경험이 늘어나다 보니 어떤 스타일의 이성을 원하는지, 어떤 연애 스타일이 맞는지 등을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해 나만의 리스트가 완성되었고, 그에 벗어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게 행복할리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느낌이나 첫인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20대 때나 가능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도 20대의 전유물 같은 것이다. 내 친구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여가 시간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보내고 운동과 여행을 좋아한다. 반면 구 여자 친구는 전형적인 집순이 스타일로, 회사 외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만났으니 맞지 않았던 거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맞춰봤을지도 모르는데, 친구는 시간 낭비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친구의 선택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잠깐 호감을 가질 수는 있어도, 연애를 넘어 결혼으로까지 이어질 확률은 나이가 들 수록 점점 낮아진다. 더더욱 ‘아무나' 만날 수 없게 되는데, 흔히 이런 걸 두고 ‘눈이 높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사실 눈이 높은 게 아니라, 나랑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 너무나도 잘 알아서다. 마침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결혼이 늦어질 뿐. 그런데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이도 많은 게, 눈만 높다'라고 뒤에서 후려치기 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나도 싱글 때 들어본 말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지금처럼 혼자 살기 좋은 때가 없다. ‘혼족’ 같은 신조어도 만들어지고, 이를 겨냥한 상품이나 서비스 역시 얼마든지 잘 나오는 시대다. 결혼 안 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안 맞는 사람과 맞춰가며 무리할 필요가 없다. 



친구 A에게는 항상 소개팅이 끊이지 않는다. 예쁘장하고, 직업이 괜찮고, 결혼을 하고 싶어 해서 그런지 주변에 남자 소개해준 다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소개팅해준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친구는 항상 자신만의 조건을 먼저 따진다. 그리곤 “나 눈이 높아서 시집을 여태 안 가는 건데”라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그 친구가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조건 안 맞는 사람과 시간 낭비하기 싫은 심정도 이해가 간다. 벽을 쳐두어서 주변에서 ‘아무나' 막 들이대는 걸 막는 효과도 되고. 


가끔 최악의 소개팅녀 혹은 소개팅남 사례로, 첫 만남에 집은 몇 평인지, 재산이 얼마인지,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 차는 무엇인지 등을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 소개팅 남녀를 욕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들은 결혼하기 위한 제 1조건 혹은 가치를 돈으로 정하고 있다. 오히려 그렇게 확실한 기준을 가진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행복해질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한 서너 달 만나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정보를 하루라도 빨리 알아서 시간 낭비하기 싫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지 않나. 그만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뭔들 못하겠나. 그런 사람한테 맞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물론, 나라면 그런 사람을 죽어도 만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결혼해보니 돌다리를 무진장 두들겨보고 해도 후회가 없을 수 없는 게 결혼이라는 것을 알게 돼서다. 마케팅에서 많이 하는 건데 결혼에 앞서 SWOT 분석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 요인을 구분>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다른 조건도 문제지만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 안 맞는 사람하고 사는 것만큼 최악인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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