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나는 게이인 것 같다.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나는 그 말이 은근히 좋았다. 왜냐하면 난 언제나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나은 성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고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성기를 자르고, 가슴에 실리콘을 집어넣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난 죽어도 내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는 신념을 굳게 가지고 있다. 나는 그저 여자들처럼 꾸미고 싶을 뿐이다. 옷과 화장을 통해서 어느 날은 예쁘고, 어느 날은 섹시하고, 어느 날은 귀여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여자들이 부러울 뿐이다. 나보다 못생긴 여자애들도 화장으로 여러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걸 보면서 밤에 몇 번 울기도 했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얼굴이 예뻐도 화장 같은 걸 하고 다닐 수가 없었으니까.
난 여자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인기가 많다. 이 인기는 5살 무렵 내가 다녔던 어린이 집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오히려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 감당하기 벅찰 정도다. 나는 여자에게 큰 관심이 없어 누군가와 사귀어본 경험이 극히 드물다. 중학교에 다닐 때 한 번 ‘사귄다’는 것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이마저도 2주를 넘기지 못했다. 난 그녀가 도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보고 날 좋아한다는 건지, 나랑 사귀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녀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너 나 좋아하는 거 맞긴 해?” 그녀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했고, 그녀는 울었다. 그걸로 우리 관계는 끝났고 나는 학교에서 여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도 그들에게 관심 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여자애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 몇몇 남자애들도 가끔 나를 괴롭히긴 했지만 그건 더욱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들에게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집에 가서 몸무게를 재고 55kg 위로 넘어갔는지 확인하는 것과 머릿결, 피부를 세심하게 살펴 내가 원하는 대로 외형을 가꾸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나의 인기는 다시 회복되었다. 다만, 고백을 거절하면 꼭 나를 싫어하게 되는 여자들이 계속 있어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고백받는 것이 너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 의류 디자인을 전공했다. 적성과 잘 맞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가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래도 여러 가지 옷을 마음대로 입어볼 수 있는 핑곗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의류학과 학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사람들은 내가 캠퍼스에서 치마 입고 다니는 것조차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축제 안 갈 거야? 아이유도 온다는데.” 과 선배가 물었다.
“네.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왜?”
“사람 많은 곳이 싫어요.”
“나도. 티켓은 있는데 가기 싫어.”
어쩌다 보니 나는 그녀의 집에 가게 되었고 섹스도 했다.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섹스에 흥미를 느낀 적이 없었고 사정을 할 때도 기분은 좋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오르가슴’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준영 같은 부류의 연예인들을 보면 여자와의 섹스에 환장하는 것 같던데, 나에게는 그 정도 열정이 없었다. 선배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남자가 어느 정도 박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우리는 사귀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1년 3개월을 함께 보내고 있다. 다행히 그녀는 박력 있는 남자보다는 나처럼 조금은 연약한 남자를 더 선호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함께 화장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메이크업을 봐주고, 옷도 사러 다녔다. 과에서도 우리가 사귄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남들이 우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짜증 났지만, 뭐 사람들은 원래 남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내가 감내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섹스를 더 잘하면 좋을 텐데. 나도 헬스장을 끊어 볼까 봐.”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특히 베드신을 보면 남자들의 박력이 장난 아니었다.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마. 야만인들이나 헬스장에 가는 거야. 아니면 멍청하거나. 차라리 요가나 등산을 하는 게 어때? 맨몸 운동도 괜찮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고 나는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요가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몸 선이 예뻐졌고 유연성이 좋아지면서 거울 앞에서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섹스는 여전히 별로였다.
수능이 끝났고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후배들이 들어온다는 건 전혀 기쁜 일이 아니며, 난 그들에게 특별히 잘해주어야 하는 그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가 없다. 다들 후배라고 하면 밥도 사주고 그러던데, 나는 누군가에게 밥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단 하나도 없었다. 너무 어색하고 불편하니까. 하지만 신입생 환영회에서 한 아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발기라는 것을 해보았다. 고환에서부터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쳤고 그것은 그대로 내 고추로 이어져 완벽하게 빳빳해져 버렸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게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이건 사랑이다’라는 목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그 아이는 남자였는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남자들처럼 등도 넓고 키도 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이도 엄청 하얬다. 나는 그 아이의 입 속으로 내 혀를 집어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렇게 그 아이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주체할 수 없이 서버린 내 생식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숨이 가빠졌고, 허벅지에 힘을 꽉 주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꽉 힘을 주었는데 갑자기 사정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게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고, 정말 어디선가 ‘이게 바로 사랑이야’라는 목소리가 다시 내 귀에 울려 퍼졌다. 이게 사랑인가? 그럼 내가 저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인가?
좋아한다는 것은 뭘까? 사랑한다는 것은 뭘까? 그것에 대한 어떤 정의를 하기 전에 몸이 먼저 본능적으로 사랑을 알아차린다고 해보자. 내가 발기를 하고 사정을 한 것이 그 아이를 사랑한다는 증거라고 해보자. 그럼 도대체 내가 무엇을 고민한단 말인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도 마음이 떨리고 발기가 되고 그대로 사정을 할 정도라면 내가 더 이상 뭘 고민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나는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분명 황당해할 것이고 어릴 적 내게 거절을 당한 여자아이들이 그랬듯이 나를 증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제야 내 성 정체성을 찾았다고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진실은 추하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것이다. 거짓은 아름답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이다. 거짓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그게 곧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하나뿐이다.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할까? 그 아이도 게이가 맞을까? 오직 그것만이 지금 나의 관심사이며, 그 아이에게 거절을 당하면 그제야 나는 나를 스쳐간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