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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25. 2019

철면피의 청첩장

차라리 초대를 하지 말아 줘!


출퇴근이 따로 없는 프리랜서라지만, 나에게도 행복한 시간은 분명 있다. 마감을 마친 후 개운하게 샤워를 한 후,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아쉽게도 술을 못 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캬~ 하는 일은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패드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이다. 그런데… 늘 그렇듯 수많은 인생사에 ‘그런데'가 붙으면 갑자기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화면 전환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카톡!’ 반갑지만은 않은, 손목에서부터 어깻죽지까지 소름이 오소소 솟아나는 불길한 느낌의 카톡 알림음과 함께 불안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행복과 불안은 1초 차이로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xx님이 oo님과 회원님을 초대했습니다]
“꺄~~~ 다들 잘 지냈어? 진짜 오랜만이다ㅠㅠ 그동안 연락도 자주 못 하고… 미안해! 고등학교 때 이후로 진짜 오랜만에 연락한 듯?”


카톡방을 만들어 oo와 나를 초대한 xx의 호들갑 어린 인사와 함께 단톡방에 메시지가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섣불리 확인하기가 두려웠던 나는 미루고 미루면서 올라오는 대화들을 메시지 미리보기를 통해서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아직도 1이 안 사라진걸 보니 ㅁㅁ는 바쁜가 보다~”라며 의도적으로 나를 불러내는 듯한 메시지를 보고 더 이상 메시지 확인을 미룰 수 없어 대화에 참여했다.


“오랜만이다~ 다들 잘 지냈지? 내가 마감 때문에 조금 바빴어ㅎㅎ 그런데 무슨 일이야?”

“드디어 나타났다!ㅋㅋㅋ 잘 지냈다니 다행~ 다른 건 아니고 나 곧 결혼해! 청첩장 주려고 하는데 다들 언제 가능해?”



오 마이 갓.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하나 둘 떠나가는 친구며 언니, 오빠, 동생들 결혼식에 한창 불려 다니고 있었고, 오랜만에 온 친구 연락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사를 나누자마자 바로 본론부터 꺼내는 이 친구의 패기에 순간 관자놀이가 찌릿했다. 그래도 먼저 연락이 왔고, 그동안 사느라 바쁘고 딱히 접점이 없어 연락하지 않았을 뿐,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을 끊은 것은 아니었기에 내 입장에서는 다소 ‘어쩔 수 없이'였지만,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대망의 날, 약속 장소에 나가 밥을 먹으며 간단한 대화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청첩장을 건넸다. 청첩장을 받아 들고 집으로 온 나는 그 날부터 친구의 결혼식 전날까지 축의금을 얼마나 할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결혼식에 갈지 말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나름대로 큰 결단을 내렸다.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고, 그간 한 번도 연락이 없다가 필요한 때만 나를 찾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애초에 청첩장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왕 청첩장 받으러 가서 밥까지 얻어먹었고, 한때 어울려 지냈던 친구였기에 5만 원 정도로 간소하게 축의금을 내기로 했다. 무엇보다 결혼식 장소는 사는 곳에서 2시간, 왕복으로는 4시간 걸리는 거리였기에 가는 시간과 비용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라는 생각을 덧붙여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후 축의금은 청첩장을 받을 때 함께 만났던 친구에게 부탁해 전달했다.



남의 좋은 날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았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기적인 마음, 계산하는 마음이 샘솟았던 것은 사실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다른 사람에게 밉보이기 싫어서, 괜한 트집거리를 주고 싶지 않아서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인드로 결혼식에 참여해서 정성껏 축의금을 내고 사진도 찍어주고 축하의 말도 듬뿍 해주고 왔으리라. 하지만 많은 결혼식에 참여하면서 이골이 나서 그런지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되어도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될 생각이 없으면 나의 노력은 아무렇게나 취급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버렸다. 그래서 이런 일에 있어서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게 되었다. 물론 어떤 이유를 들이밀더라도 내 나름대로의 합리화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혹시 궁금해할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결혼식 이후 그 친구에게는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름대로 축의금은 전달했지만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결혼식 전에 못 가게 되어 미안하다고 따로 연락하고,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도 ‘못 갔지만 다른 친구를 통해 결혼식 예쁘게 잘했다는 얘기 들었다, 축하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연락도 했다. 그간의 소원했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친구가 결혼식 이후에 굳이 나에게 연락을 따로 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에 안 가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쉬운 일이긴 하다. 돈이 아깝지는 않다. 그렇기에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축의금으로 준 돈 때문에 이 친구를 부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일 때문에 서로 관련 없이 살던 한 사람이 ‘굳이' 내 인생에서 걸러지는 것은 참 아쉽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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