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Nov 18. 2019

차라리 너희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좋겠어.

난 널 사랑해, 네 부모님보다 더.


너희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좋겠어. 미안해, 이 말은 진심이야. 난 이런 불경한 생각 때문에 죽고 나서 지옥에 갈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상관없어. 어차피 난 지금도 지옥을 살고 있으니까. 난 있잖아, 너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우리는 함께 임용시험을 봤고 같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어. 그 과정 속에서 너는 내가 압박감에 잡아 먹히지 않도록 도와주었고, 어쩌면 꽤나 괜찮은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줬어. 알잖아, 나 아이들이라면 질색하는 거.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거.


그런데 난 어쩔 수 없이 너의 아이를 가지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조그마한 대학 운동장을 함께 걸을 때면 더욱더 말이야. 주말에 기숙사를 나와 너와 함께 밤을 보낼 때면 더욱더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아이들이 달라 보이는 거 있지? 교대에 온 것이 어쩌면 내 소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운동장에 나온 가족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예쁜 가정을 이루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회초리는커녕 사랑만 주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네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나도 너에게 같은 말을 듣고 싶지만 이젠 너무 늦어버린 거겠지?



인생이 살 만한 게 아니라는 걸 난 일찍이 알고 있었어. 나는 언제나 생각했지. 태어나지 않았으면 훨씬 더 좋았을 거라고. 희망 같은 건, 긍정적인 생각 같은 건 자신을 속이는 사람만이 가지는 거라고. 근데 나 정말 깜짝 놀랐어. 대학생이 되고, 직업을 갖게 되고, 그리고 옆에 네가 있게 되면서 나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네가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아주 쉽게 생각했어. 우리 둘 다 공무원이니까 어머니 병원비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영화 같은 거 보면 남자 친구의 아픈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여자들이 나오잖아? 왜 그런 거 있잖아. 여자는 정말 순수한 눈망울을 하고 남자 친구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고, 남자 친구는 그걸 감동에 차서 바라보는 장면. 아픈 어머니는 희미한 목소리로 “내 딸아…” 이렇게 말하고. 네 어머니가 아프다고 했을 때, 나도 그런 여자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구나, 너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구나 하는 생각도 솔직히 했어. 내가 얼마나 속 깊은 여자인지 드디어 보여줄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미안해. 나는 못하겠더라. 어머니는 이상한 말들 – 누나! 엄마! 가자! 밥! 같은 아무 맥락도 없는 말들 – 을 계속해서 늘어놓는데, 한 두 번은 좋게 받아줄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 지쳤어. 너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하잖아? 누가 초등 교사가 쉬운 직업이라고 했는지 정말 궁금해. 그 사람을 찾아내면 살인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튼 난 네 어머니께 살갑게 대하지 못했어. 분명 티가 났을 거야. 화장실에 한 번 같이 갔는데 대변도 못 가리시는 걸 보고 정말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파! 아파!”라고만 말하는데 정말 저렇게 사느니 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 우리 반에 있는 문제아를 다루는 게 네 어머니를 다루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어. 이 모든 게 너에게 티가 났을 거야. 그렇지? 분명 그랬을 거야. 나는 영화 속 순수한 여자 주인공이 되기에는 성격이 너무 안 좋은가 봐.



너는 나에게 이별을 말했어. 어머니 때문에 나에게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고. 지금처럼 지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것 같다고.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어머니를 요양원에 집어넣을 수도 있는 거잖아? 나도 알아. 몇몇 노인들은 요양원에 들어가기를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걸. 자식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는 걸. 하지만 네 어머님은 정신이 온전치 않아. 그런 생각도 못 하실 거야. 내가 옆에 있어봐서 하는 소리야. 똥오줌도 못 가리신다고. 그리고 너도 그걸 알고 있잖아?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돼. 요양원에 내야 하는 돈 때문이야? 우리 둘이 받는 월급을 합치면 그 정도는 낼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래, 아마 사랑 때문이겠지. 네가 네 부모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거겠지. 나도 이해해. 하지만 난 네 사랑을 온전히 모두 가지고 싶어. 그게 네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나를 향한 네 사랑이 멈추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래, 이기적이지? 나도 알아. 나도 알아, 내가 지옥에 갈 거라는 걸. 그런데 난 정말 널 사랑해. 네가 쓸데없는 고통을 겪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난 차라리 네 부모님이 죽었으면 좋겠어.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웨딩해 구경하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사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다자연애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꽉 막힌 걸까?

누구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년 전의 나에겐 없던 그 '예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