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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11. 2019

10년 전의 나에겐 없던 그 '예의'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무렵, 거의 2년 만에 다시 연락이 닿은 친구와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이야기들이 우리 앞에 밀린 과제처럼 쌓여있었다. 우리는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날씨 덕분인지 모를 간지러운 기분으로 연트럴 파크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20대의 시작점에 알게 된 이 친구와는 참 많은 이야기를 공유했다.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학업 고민, 취업 문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청춘사업’까지! 대학 졸업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 우리 대화의 내용과 깊이는 그때와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주제는 여전했다. 점점 작아져가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의 안타까운 이야기며 불안정한 고용 상태와 이직 문제 그리고 결혼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진 사랑과 연애 문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 어렸던 우리의 그 시간이 떠오름과 동시에 깊어진 고민과 걱정을 들여다보니 ‘아 우리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앵무새 조잘거리듯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기울어가는 햇살 한 조각이 아직 남아있을 때쯤, 우린 각자의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버스를 탈까 걸어갈까 고민하다 따스한 햇살과는 달리 팔뚝을 타고 전해져 오는 한기가 기분 좋게 느껴져 먼 거리였지만 집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오늘의 대화를 곱씹었다. 독특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만난 날에는 꼭 그 날의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는 습관이 있다. 오늘의 대화를 머릿속에 되살려보니 나이가 나이인지, 추석 연휴가 막 지난 때라 그런지 우리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당시 나는 “딸들 얼른 치워버려야 속이 시원하지 원!”이라며 우리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말하시곤 하는 큰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추석 때 집에 내려가지 않았고, 친구 또한 비슷한 이유로 추석 때 여행을 떠났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던 우리는 연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생각해보면 20대 초, 중반에는 남자 친구와 싸우고 돌아서면 씩씩대면서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을 핑계로 남자 친구에게 서운했던 점과 그의 좋지 못한 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마구 이야기하며 뒤에서 험담을 해댔다. 울며 불며 친구들에게 험담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으면 친구들도 내 편을 들어주며 같이 남자 친구를 씹어주곤 했다. 나도 친구들이 남자 친구와 싸우거나 헤어지고 와서 울거나 화낼 때 같이 화내 주고 달래주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어렸고 서툴러 그랬다지만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또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순간의 감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험담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고 지금에서야 반성한다. 다시 오늘의 대화를 떠올려보니, 우리는 각자의 남자 친구에게 서운한 점이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커녕 사귀면서 소소하게나마 의견 충돌로 싸웠던 일조차 내뱉지 않았던 것 아닌가? 물론 “우리도 가끔 싸울 때 있지. 하지만 5년 정도 사귀고 보니까 바람을 피웠다거나 큰 거짓말을 했다거나 하는 문제만 아니라면 작은 건 그냥 넘어가게 되더라”와 같이 ‘우리 커플도 종종 다툰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다. 본인은 바깥에서는 가족 얘기,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꺼내지 않는데, 첫 번째 이유는 아무리 가족이나 연인일지라도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아서이며, 두 번째 이유는 어쨌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 얼굴에 침 뱉기’처럼 험담이나 부정적인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구와의 대화, 20대 초반의 나와 20대 후반이 된 나 그리고 인터넷에서 본 글을 모두 떠올려보니, 마치 흠잡을 곳 없이 똑바른 모양의 정삼각형처럼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오묘한 트라이앵글의 결론은 하나다. 나에게는 그 순간, 나쁜 사람이고 날 서운하게 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결국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헤어지지 않을 거라면 어느 정도 감내하거나 이야기를 통해 서로 맞춰나가는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문제 해결에 있어서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내 안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음으로써 누군가가 내 편을 들어주어 마음속 응어리가 잠깐 풀어질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나아가 혹여라도 싸운 남자 친구와 화해라도 하게 되면 뒤이어 올라오는 찜찜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누누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남이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좋은 점조차도 칭찬하지 말라고.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전달될 때는 항상 왜곡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도 흉보지 말라고 하는데, 하물며 내 연인에 대한 흉은 더더욱 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연인으로서는 끝까지 나쁜 사람일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기에… 억울해도 내가 선택한 그 사람, 인연이 끝날 때까지라도 그 흠, 조금만 더 내가 보듬고 감싸 안아주면 어떨까?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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