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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an 22. 2020

매일 저녁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

밥을 먹는 행위에 대한 소고

남편과 식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남편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따순밥을 함께 먹으면 우리가 '연대'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라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저녁을 차린다. 대부분 필자가 먼저 퇴근해 저녁을 차리지만 다행스럽게도 요리하는 즐거움이 커 요리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 


다용도실을 보니 할머니가 주신 고구마가 수북하다. 오늘은 고구마를 듬뿍 넣은 닭볶음탕을 하는 게 좋겠다. 할머니가 손수 가꾼 정직한 땅에서 나온 고구마 몇 개를 세척했다. 알이 튼실한 게 크고 알찼다. 장석주 시인의 시를 빌려 '이 한 알의 고구마에는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들어갔을 테지..' 곱씹으며,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쌕쌕 숨을 고르며, 돌담을 짚고 내려와 밭에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쪼그려 앉아 알알이 딸려오는 고구마를 포대자루에 차곡차곡 넣으셨다. “저희가 캘게요, 할머니 쉬세요.”라고 말해도 할머니의 일손은 멈추질 않았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우리 집 냉장고에 건강한 식재료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잊고 있었다. 따순밥이 주는 힘을 


음식에는 저마다 맛이 있고 어떤 맛에는 향수(鄕愁)가 깃들어져 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 시절 추억이 생각나는 것처럼, 현재 먹는 음식이 나의 건강을 나타내는 것처럼 무엇을 먹고 있는지는 너무나도 중요한 행위다. 그러나 따순밥이 주는 힘을 잊고 있었다. 


사실 자취 초기만 해도 요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터라 어설픈 대로 열심히 요리를 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재미있었다. 호기심에 많은 요리를 해볼 수 있었고 지인을 초대해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했다. 그렇게 1~2년 시간이 흘러 더 이상 혼자 해 먹는 밥이 재미없었다. 밖에서는 혼밥 만렙을 찍어가고 있는데 집에서 먹는 혼밥은 이상하게 맛이 없었다. 그렇다고 매 끼니 함께 먹을 누군가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점차 직접 만드는 요리보다는 시켜 먹거나 회사에서 해결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요리의 즐거움을 다시 찾은 건,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정확히는 집 밥 먹는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다. 보글보글 잘 익은 닭볶음탕 냄새가 집안 곳곳에 퍼진다. 이제 남편과 마주 앉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필자가 직접 준비한 저녁식사


다시 식탁에서 식사를 시작하다 


“닭이 너무 잘 익었는데, 너무 맛있다. 힘들었겠다.”란 한마디에 하루의 고단함이 씻겨 내려간다. 이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늘 ‘고맙다’ 말하는 남편의 마음이 필자의 요리를 더 즐겁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우리는 매일 저녁을 직접 만들어 식탁에 앉아 먹었다. 그러다 몇 달 전 잠깐, 거실에서 TV를 보며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우리의 시선은 오로지 TV를 향해 있었고 대화는 거의 나누지 못했었다. 실로 체감이 될 정도로 우리의 대화는 많이 줄어들었다. TV를 보느라 정신없어 의미 없는 말만 허공 속으로 탁탁 사라지기도 했었다. 


별일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습관이 되는 건 싫었다. 다시 식탁에서 식사를 시작하며 우리는 TV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고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더 많아졌다. 소소한 하루 일과부터 중요한 계획들까지. 서로의 말이 힘을 받으니 허공 속으로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부부 사이도 더 좋아짐을 느낀다. 많은 부부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을 정도이다. 우리는 오늘도 따순밥을 먹으며 맛있는 대화를 나누고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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