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Feb 03. 2020

아이를 갖게 된 후 찾아오는 공포들

내 아이가 날 원망하게 되지 않을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내 집을 가지고 결혼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금수저는커녕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우리 신랑도 금수저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어머니 집에 얹혀살고 있다. 일찍이 이혼하신 시어머니는 27평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신다. 노인이 가족도 없이 오랫동안 혼자 지내면 치매에 쉽게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와 신랑이 시어머니 집에 얹혀사는 건 일종의 효도라고 볼 수 있다. 


많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어려워하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결혼을 하면서 시어머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치매 예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시어머니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주눅 들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니까. 


신랑이 콘돔을 끼면 발기가 안 되는 바람에 연애 시절 우리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밤일에 임했다. 그러다 덜컥 임신해버렸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하게 되었다. 아기 낳을 준비를 해야 했기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출산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이제 슬슬 결혼식을 올려야 하지 않느냐고 신랑에게 눈치를 주고 있다. 웨딩해 같은 업체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나도 어서 드레스를 입고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신랑은 내 눈치를 피하면서 “응응, 그러자.”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하지 않고 있다. 


신랑은 은행원이다. 제1 금융권은 아니고 제2 금융권에 다니고 있다. 월급으로 볼 때, 나쁘지는 않은 직장이다. 시어머니는 경로당에 가시고 나는 집에서 아기를 본다. 나는 간호사다. 지금은 휴직 중이라 집안 살림에 필요한 돈은 신랑이 다 벌어온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 돈을 가지고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있으며 아기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모유 수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너무 힘들다


난 우리 아기가 부족함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 나와 신랑에게 사랑도 많이 받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사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집에서 내 젖을 빨고 있는 아기를 가만히 내려다볼 때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흐른다. 로또를 맞거나 은행을 털지 않는 이상, 우리 부부가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만약 이 아이가 음악에 재능을 보인다면? 만약 이 아이가 체육에 재능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 진로를 지지해줄 돈이 없고, 아이에게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걸 목표로 삼으라고 말할 것이다. 즉, 내 부모가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내 자식에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그런 나를 평생 원망하겠지


나는 내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있고 지금도 약간은 섭섭한 감정이 남아있다. 돈이 없어서 난 너무나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난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난 그 다짐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신랑도 마찬가지다. 그는 드라마 <미생>이 꼭 자기 인생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직장에 들어가고 보니 그게 자기 인생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사표가 몇 천 장이 있지만 우리 아기 때문에 참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애할 때 정말 잘생겼었다. 그런데 28살이 된 지금, 얼굴은 이미 30대 중반이 된 것 마냥 칙칙하고 몸에도 군살이 여기저기 붙고 있다. 신랑이 아침에 출근하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 그만두면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젖을 빨고 있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천사 같은 아가.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내 가슴을 물고 있는 이 생명체. 하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고, 이 아이는 악마와도 같은 사춘기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 나한테 이렇게 묻겠지. “엄마가 날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는데? 다른 집 애들은 어쩌고 저쩌고…” 지금 이 천사와 같은 아기는 순식간에 악마로 돌변하여 나를 심판대에 올려놓을 것이다. 나와 네 아빠가 널 얼마나 아프게 낳았는지, 나와 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키웠는지, 나와 네 아빠가 너를 위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포기해왔는지 말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그건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에요?”라고 말하겠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온몸에 소름이 와락 돋아났다. 


외동은 좋지 않다 생각해 아이를 하나 더 가지고 싶다. 물론 이건 편견일 수 있지만 내 경험상 외동들은 성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아이를 2명이나 키울 수 있을까? 지금 수입으로는 한 명도 풍족하게 키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마당에 2명을 키우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생각해보면, 꼭 가난한 집 부모들이 자식을 많이 낳곤 했다. 그래서 안 그래도 가난한 집안이 더 가난해져 버렸다. 그런 집에서 자라난 자식들은 대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나이가 들면 부모와 의절하기도 했다. 가난은 만악의 근원이다. 



남편이 일을 마치고 들어온다


나는 남편에게 내 생각을 말해야 할지 고민한다. 남편의 표정을 보니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온 것 같았다. 금융권은 정말 근무하기 쉽지 않다. 특히 우리 남편처럼 선한 사람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우리 남편은 원래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인생의 장난질에 빠져 이렇게 금융권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는 우리 아가와 놀아 줄 힘도 없다. 난 그를 이해한다. 요즘 TV를 보면 아이와 잘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던데, 이렇게 직장에서 시달리다가 온 아빠가 어떻게 아이들과 잘 놀아줄 수 있겠는가? 엄마가 슈퍼맨이 아니듯, 아빠도 슈퍼맨이 아니다.


나는 남편에게 내 고민을 말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이야기해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괜히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 나는 밥을 차려주고 과일도 깎아준다. 둘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 남편 모습에 성적 흥분이 되지도 않고, 남편 또한 밤일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내 성적 욕구는 스스로 해결하면 된다. 이런 날들이 길어질 것이다.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고,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며, 자식을 키우느라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사춘기에 우리를 원망하는 소리를 늘어놓으면, 아이에게 상처 받겠지만 자식이니까 사랑으로 보살펴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이혼하지 않고 계속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고, 운이 더 좋으면 자식이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다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운이 ‘아주’ 좋은 경우에만 그러하다.


나는 둘째를 갖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정부는 출산 장려를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쓰고 있지만 아무 소용없다. 그건 정부 잘못이 아니다. 경제 성장률이 이렇게 낮은 상태에서는 다들 애를 갖지 않으려고 한다. 개인은 정부보다 약삭빠르고 똑똑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난 이제 나를 포기하고 ‘나’보다는 ‘엄마’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신세를 한탄하면서, 어릴 적 꿈꾸었던 삶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살게 될 테니까.  


가끔은 죽고 싶다


하지만 자식을 낳은 이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엄마’로서의 정체성과 ‘나 자신’으로서의 정체성 모두를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TV에 나오는 몇몇 똑똑한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들은 모두 자식이 없고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식 낳아봐라, 그게 맘대로 되나…’라고 구시렁거리면서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며 마음을 달랜다. 


삶은 이렇게 계속된다. 남편이 있어도 외롭고, 아이가 있어도 외롭고, 돈은 언제나 부족하고, 다른 사람은 다 나보다 행복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 난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가 되려면 체념해야 한다. 난 지금 모든 것을 체념하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 웨딩해 콘텐츠 더보기 ▼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낳고 싶어

누구를 위하여 아이는 낳아지나

결혼 2년 차, 아이를 낳아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생에서 이별을 대하는 몇 가지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