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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Feb 10. 2020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격하게 날아온 엄마의 등짝 스매싱


나이가 들수록 어떤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점점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나이가 먹을수록 일부러라도 유연하고 넓은 사고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만 행동이 말처럼 쉽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 집에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시는 여사님이 한 분이 계신다. 바로 미모의 50대 여성인 우리 엄마다. 간혹 엄마와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 엄마가 이렇게나 깨어 있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부모님 댁에 찾아와 같이 식사하고 전화도 자주 하는 게 자식 된 도리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소릴 하고 있어? 아는 언니가 그랬어. 본인은 아들, 딸 다 결혼시켰는데, 자식들 1년에 딱 4번 본대. 설이랑 추석 그리고 언니랑 형부 생일, 이렇게 4번. 이제 자식들 다 내보냈으니 출가외인이라 생각하고 부부 둘이서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고 그렇게 한대. 나도 자식들 결혼시키면 그렇게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도 각자 바쁘면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정도이니, 젊은 사람인 나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간혹 TV에서 외국인과 결혼한 후 한국에서 사는 부부들 이야기를 같이 보며 대화할 때도 확 트인 마인드로부터 나오는 이해도 높은 발언들이 나로 하여금 “우리 엄마 대단한데! 저걸 받아들일 수 있어?”라는 말을 절로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이게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닌 내 자식 이야기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연애에서의 부담감 때문에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당사자인 우리 커플은 슬금슬금 ‘진짜 결혼 준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주변 또래들은 다 시집, 장가 가는데 표면상으로는 아직 남자 친구조차 없는 딸이 걱정되었던 엄마는 딸에게 말하지 않고 딸의 남자 친구 감을 찾아다녔다. 엄마가 보기엔 성실하고 외모도 준수하고 직업도 괜찮은 남자가 몇몇 있었고 나에게 만나보라고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TV를 볼 때면 부모들끼리 정략결혼을 시키는 드라마나 억지스럽게 소개팅 자리에 앉아있는 남녀를 보며 “서로가 좋아야지, 저렇게 앉혀 놓는다고 안 될 일이 되나!”라며 혀를 끌끌 차던 엄마가 혼기 꽉 찬 딸에게 남자 친구 감을 소개하는 모습이라니. 언행불일치가 따로 없었다. 한 번은 곧 결혼하는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말의 물꼬를 텄다. 



“엄마, 나는 남들처럼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고 웨딩드레스 몇 벌씩 갈아입고, 결혼식 당일에 인형처럼 앉아서 사진만 막 찍히는… 그런 결혼식 하고 싶지 않아. 줄인다고 줄여도 그 과정에서 허례허식이 너무 많고… 솔직히 남편 될 사람이랑 마음만 맞으면 결혼식 안 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가족들이랑 주변 친한 지인들만 따로 불러서 밥 먹고…” 


“뭐라고? 얘 미쳤나 봐. 무슨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 사고 치고 결혼해도 당당하게 부른 배 안고 웨딩드레스 입은 채 결혼하는 세상인데, 네가 뭐가 못나서? 결혼식은 당연히 해야지!” 


결혼한 아들, 딸자식 내외는 1년에 4번만 봐도 충분하다던, 만남은 자연스러워야 된다던, 결혼식의 허례허식은 없애야 한다던 ‘깨어있는 엄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역시 사람은 남의 이야기일 때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를 취하다가도 내 이야기가 되면 손바닥 뒤집듯 쉽게 입장을 바꾸는 걸까? 부모에게 손을 벌려 결혼하면, 당연히 부모가 원하는 대로 맞춰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손을 벌리지 않고 결혼할 때도 부모의 완강한 뜻을 거스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다른 무엇보다 평범하지 않은 별난 취향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를 항상 괴롭게 만드는 내가 정말 미워질 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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